누끼마녀와 아웃소싱
잡지 ‘디자인’ 7월호에서 재미난 컬럼 하나를 읽었습니다.
누끼를 기가 막히게 잘 따는 여성 디자이너 한명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포토샵에서 누끼를 따는 일반적인 방식인 ‘패스(path)’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메뉴를 독창적으로 사용해서 누끼를 땄죠. 고슴도치 털 같은 고난위도의 대상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정밀하게 누끼를 땄습니다. 전 그 여성 디자이너를 ‘누끼마녀’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편집팀의 디자이너도 누끼를 잘 땄지만 품질을 조금 더 높이려고 누끼마녀에게 외주를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누끼만 따는 외주는 처음인지라 얼마를 줘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디자이너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일을 했고, 품질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누끼마녀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일을 해치웠죠. 그녀는 고수였기에 그 일이 우스웠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신한테 누워서 떡 먹기니 공짜로 해주시오’라고 말할 수 없겠죠.
디자인 7월호 컬럼 가운데 편집해서 실음
컬럼에서 제가 인용한 부분을 읽으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컬럼에서는, 아웃소싱될 수 있고 돈도 제대로 못받는 실무를 하지 말고, 정치나 기획처럼 폼나고 아웃소싱될 수 없는 업무를 지향하는 게 디자인 분야에서 흔히들 하는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컬럼을 쓰신 분은 이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문제는 너도 나도 그렇게 폼나고 상위의 일을 했을 때,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열정 바이러스라는 책에서, 봉준호 감독도 이 컬럼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 자신은 디테일에 치중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신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한국 영화 산업이 전반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봉감독이 추구하는 디테일이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즉 조명이든, 편집이든, 의상이든 실무를 담당하는 스패프들의 역량이 그만큼 높아졌기에, 봉디테일표 영화가 가능했다는 뜻이죠.
실무를 맡다가 비즈니스를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 실무의 중요성을 망각하십니다. 물론 고객하고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 조직에서 무척 중요하지만.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면, 비즈니스를 지속하게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 즉 품질을 망각해서 조직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습니다.
저도 앞으로 조직에서 실무를 하기보다 일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많이 할텐데, 지나치게 높게 올라가서 현실감각을 잃었을 때, 다시 중력을 느끼려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필요한 듯합니다.


September 24th, 2009 at 9:39 am
페이징 예외 처리를 다루면서……
적합한 소프트웨어 설계(design)를 위해서는 기술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함께 사용자 요구 사항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각주:1] 예전에 경험한 일이 떠오른다. 대량 데이터 조회 …
November 28th, 2009 at 9:50 pm
yuna의 …
하하 누끼 마녀! 이 글을 읽으니 십몇년 전 초보 디자이너 시절이 생각난다. 누끼만 6개월을 따고 나니 거기서도 뭔가 철학 비스무레한 게 얻어지더라. 나중엔 작업 시간과 최종 이미지 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