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파워포인트 블루스를 읽었습니다. 편집자나 저자나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여 참 좋았습니다. 프리젠테이션 젠이 잡스처럼 PT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은 한국형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잘 만드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직장생활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잡스처럼 PT자료를 만들었다가, “여기가 미국인 줄 아냐?”하는 핀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워포인트의 태생은 PT용 자료를 만드는 데 있지만, 한국에 토착하면서 보고서 만드는 대표적인 도구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간혹 보고서의 목적에 맞게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서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보고서를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채웠다가는 “당신이 만든 보고서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하는 핀잔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이브리드가 요즘 대세이듯, 대한민국 파워포인트는 보고서와 PT, 두 가지 목적을 충실히 달성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한 탓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듯합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파워포인트는 보고서와 PT 모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설명하거나 그림으로 대체한 내용을 파워포인트만을 읽고 파악하기란 힘들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 직장경험이 독특할 수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접한 대부분의 문서는 파워포인트였고, 정형화된 자료는 엑셀일 때가 흔했습니다. 가끔 워드 형식의 자료를 본 적도 있지만, 그 내용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식이라고 말할 게, 즉 문서형식으로 된 지식이 매우 적은데도, (제가 경험한) 조직은 대부분 잘 굴러가죠. 참 신기한 일인데요.

아마도 우리나라 회사는 매뉴얼로 대표되는 형식지보다 구성원 뇌리에 있는 암묵지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래서 간혹 조직에 여러가지 이유로 문제가 생겨서 암묵지를 소유한 경력사원이 대거 퇴사하고 대부분이 신입사원이나 회사물정 잘 모르는 경력직으로 채워져도, 조직이 굴러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잘 살펴보면,  그나마 체계적으로 정리된 암묵지를 보유한 경력사원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암묵지를 신규 입사자에게 Copy&Paste할 때가 잦습니다.

“개떡같이 그려도 찰떡같이 만들어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원이동이 잦은 설계부서에서 그리는 도면 품질은 대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개떡같은 도면’으로도 ‘찰떡같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설계부서에서 도면을 개떡같이 그려와도, 생산부서에 계신 분들이 방대한 암묵지가 있기 때문에, 도면의 문제를 바로잡거나 어느 경우엔 도면을 재해석해서 훨씬 좋은 제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세가 기울어 가는 조직에 남은, 굽은 나무 같은 경력사원들 그늘 아래에서 그나마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력직마저 나가 버렸을 때, 참 암담한 상황이 되는데요. 그래도 제 경험상 조직이 굴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회사에 돈이 도는 경우가 그런데요. :)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이죠.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다분한 문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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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4 Responses to “조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1. stagile Says: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를 재미있게 설명하신것 같네요. 알아듣는다와 만들어 온다!는 차이가 많이 있지만 서도.. 그럼 이런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화가는 죽어서 그림을 남기고 기술자는 죽어서 메뉴얼을 남긴다.” 우스개소리로 몇자 적고 갑니다.~

  2. yuna Says: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예요.
    (참담한 상황 많이 겪어봐서)

  3. tack Says:

    저를 봐도… 제 선배들을 봐도 암묵지? 라는 단어에 딱 어울리는 스타일이네요 ㅎㅎ
    덕분에 좋은 책 찾고 갑니다

  4. Hani Says:

    stagile님
    엔지니어들이 글쓰기에 신경 쓴다면,
    엔지니어링 문화가 한차원 더 업그레이드될텐데요.
    ^^

    yuna님.
    참담한 상황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

    tack님.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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