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의 두려움, 그리고 얻는 것
처음 번역 작업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우연히 들린 루비 포럼에서 Agile Web Development with Rails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Rails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라서, 이 소식은 반짝 반짝 빛나는 제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웹상에서 번역 프로젝트 멤버를 모으고, 이야기가 오고 간 뒤에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향후 일정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출장 때문에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간 뒤 금요일 저녁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멤버들의 일정을 조정하다 보니까, Rails 번역 첫 오프라인 모임이 결국 금요일 저녁 강남 토즈에 잡혔습니다.
출장지에서 일을 마치고 부산 김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탔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보니까,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힘들었던지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오더군요. 박카스로도 쫓아내지 못하는 강력한 피로와 싸우면서, 김포공항에 내려서 강남 토즈를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가면 몸은 편한데, 금요일 퇴근 시간에 길이 막혀서 제시간에 가지 못할 건 뻔했습니다.
천상 제시간에 도착할려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죠. 김포공항에서 강남까지, 장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도 슬슬 귀찮아지더군요. 마음 속으로 그냥 가지 말까 하는 귀찮니즘이 고개를 들었지만. 약속을 깬다는 게, 제 성격상 맞지 않아서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귀찮니즘을 이겨내고, 첫 번째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확실히 처음 해보는 번역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번역 일도 쉽지 않고, 번역 중간에 멤버가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생겼고, 번역 기간이 길어지면서 2판이 나오는 불상사가 생겼죠. 그 덕분에 제가 맡은 부분은 거의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어쨌든 번역 멤버도 고생했고, 인사이트에서도 애를 많이 쓰셨기에, Rails 번역서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생각이 들어서, Rails 번역 작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의 결정 덕분에, 번역이라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작업을 해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책도 두 권정도 쓸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산 김해공항에서 서울 강남까지 가기 싫다는 귀찮니즘이 생긴 건, 사실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듯합니다. 즉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생기는 두려움 말이죠. 제 경험상, 마음 속에서 만나는 두려움은 진실된 얼굴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제가 경험했던 귀찮니즘이나,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자기합리화로 나타나죠.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할 일인 듯합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 하는 것이 멍청하게 보이거나 미숙하게 보일까봐, 실수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하는 일이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완벽함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배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배움이란 내가 어제 몰랐던 것, 그리고 내가 오늘 실수한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죠. 물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미숙한 인간으로서 멋진 일이지만. 단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거나 주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완벽해지려고 하지만, 그럴 수록 넌 더 성장할 수 없어(from 파이트 클럽)
물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걸, 배움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마음 속에서 피어 오르는 두려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당연한 거죠,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할 것을 생각하면, 괴롭기 때문이죠. 물론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두려움이 나를 삼키도록 둔다면, 두려움이란 내게 가장 큰 적이 되겠지만.
그런 두려움을 실패를 하지 말라는 신호로 생각하고, 두려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꾼다면. 즉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거나 끊임없이 연습하는 긍정의 힘으로 바꾼다면, 우리가 무서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두려움의 얼굴은,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끔찍하지도 않을 겁니다.
* 사실, 이 포스트는 조금 늦었지만 새해 다짐으로 제 자신에게 말하는 성격의 글입니다.


January 11th, 2010 at 3:07 pm
새로 시작하는 나에게도 좋은 글이네…고마워.
January 11th, 2010 at 5:16 pm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각했던 만큼 끔직하지 않았던 기억이 많이 있으면서도
늘 두려워하고 있으니, 너무 공감이 가네요~
January 11th, 2010 at 5:28 pm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두려움에 대한 느낌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January 11th, 2010 at 10:46 pm
친구.
자네를 위한 글이기도 하지.
mucly님
올해, 한해 건승하시길요. ^^
동인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좋은 일 가득히 생기시길 바랍니다.
January 13th, 2010 at 1:09 pm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제 블로그에도 담아갈게요. 물론 출처 표기하고 넣어갑니다.
January 18th, 2010 at 7:55 pm
출처만 표시해 주시면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