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를 보고 생각난 아키텍트에 대한 단상
저도 2주 전쯤인가, 인셉션을 봤습니다. 아이디어는 참 참신한데,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참 간단한 영화죠. 하지만 상영 시간이 무척 길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 1주일 정도 인셉션에 대해서 생각했을 만큼, 생각할 게 참 많은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 아키텍트 역할을 맡은 아리아드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꿈 속의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현실과 다른 건출물이나 공간이 필요하고, 이런 것들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려면, 창의력이 넘치는 아키텍트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보라는 코브의 요구에, 아리아드네가 세상을 반으로 접는 장면에서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멋있더군요.
도시 계획이나 건축에서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건, 아마도 아키텍트일 겁니다.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에 돈을 대는 사람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아키텍트가 본질적으로 건축과 도시 계획을 통해서 어떤 철학을 펼치느냐에 따라서, 그 창조물이 달라지겠죠.
예를 들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좋아하는 아키텍트는 세상과 건출물을 단절시키는 형태로 공간을 창조할 것이고, 자연과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키텍트는 건축물이 자연과 잘 어울리게 만들겠죠. 아니면 권위적이거나 건축주의 명성을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은, 상당히 위압적인 스타일로 공간을 창조할 겁니다.
어떤 형태로 공간을 만들든, 그것은 아키텍트의 경험과 철학이 녹아 있는 창조물이고, 그 공간은 아키텍트가 죽더라도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동안 아키텍트의 정신적 DNA를 후대에 전할 겁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말이 참 많은 게 있습니다. 바로 아키텍처와 아키텍트입니다. 최근에는 아키텍처에 대한 용어에 대해서 공통 분모가 많이 생겼는데요. 그래도 아키텍처 그러면 개발자가 어떤 도메인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해서 일했느냐에 따라서, 그 정의가 참 달라집니다.
인셉션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공간을 만들 때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창의력을 사용하라고 하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제 경험상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웹 개발에 잔뼈가 굵은 아키텍트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를 만든다고 하면, 대개 자신이 경험한 웹 아키텍처를 생각하면서 구조를 만들 겁니다. 천재들의 창의력은 잘 모르겠으나, 범인들의 창의력은 대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죠.
어떤 한 분야에서(웹, PC베이스, 임베디드 등) 경험이 많은 아키텍트라도 새로운 분야에서 이전 분야에서 효과적인 아키텍처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전 경험을 토대로 공부를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새로운 분야에서도 아키텍처를 만들겠죠. 그래서 아키텍트는 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유로, 이 바닥에서 열심히 일하는 엔지니어는 모두 아키텍트의 반열에 오르고 싶어 하겠죠.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반영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통해서, 자신의 사고 DNA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 싶어하기 때문에요.
* 꼬랑지: 직업 성격상 다른 조직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볼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키텍처가 없는 조직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는, 구성원 가운데 누구도 어떻게 동작하는지 큰 그림에서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더군요. 그런 소프트웨어에 무언가를 추가하는 일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August 11th, 2010 at 4:57 pm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반영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통해서, 자신의 사고 DNA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란 얘기는 개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합니다.
August 12th, 2010 at 3:15 pm
세상은 그래서 통하는 것 같습니다.
August 13th, 2010 at 2: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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