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고수, 컴퓨터와 연인 사이가 되다.
90년대 중반 한참 영화 붐이 불기 시작할 때, 영화 좀 봤다고 하는 사람은 유럽 영화를 찾아 다녔다. 헐리우드에 대항하는 시대정신의 표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외세를 외세의 힘을 빌려서 물리친다는 이상한 민족주의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런 시대 정신 운운할 필요없이, 유럽 영화가 인기있었던 것은 식상한 주류 허리우드와 홍콩 느와르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먹거리(?, 돌 던질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의 기호라는 측면에서 먹거리라 표현했다.)의 출현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 당시 인기 있었던 유럽 감독으로는 “퐁네프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레오스 까락스, ”삼색 시리즈”의 키에슬롭스키, 출신만 유럽이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지만 “장미의 이름으로”의 장자크 아노 정도가 생각난다. 그 중 가장 보석 중에 보석은 레오스 까락스였다. 처음 본 까락스의 영화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이하 소년)” 였다. ‘소년’을 처음 본 것은 96년으로 기억한다. 내용을 알아서 본다기 보다는 유행반, 재미반으로 보았다.

<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포스터, 시커멓게 복면을 두른게 알렉스다. 지금 생각에 류승범이 데니 드방(알렉스 역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 알렉스와 미레이유는 실연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통해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실연이라는 공통 분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를 못하고 상처만 주다, 미레이유의 자살로 영화는 끝난다. 내용이 우울한 편이었는데 흑백영화였기 때문에 더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소년’ 관람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제목만 보고 애정 영화인 줄 알고 낚여 들어온 중년 커플이 뒷 좌석에 앉아서 영화내내 투덜 거렸다. 순진한 마음에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영화 내내 꾹꾹 참었던 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으로 남는다.
오랜 기억 속에서 이 영화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어렴풋이 남녀 관계의 핵심은 “이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은 열정에 이끌려 사랑을 시작하고, 이 열정은 눈을 멀게 만들어 상대방을 세상 최고의 존재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열정의 불길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이성의 눈이 대신할 때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 때부터 둘 사이의 관계는 위기에 빠지고, 잦은 말다툼은 싸움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남남으로 자신의 길을 가게 만든다. 연인끼리 싸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은 이해 부족이다. 좀 풀어서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화성, 금성 시리즈 책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남자와 여자는 무척 다르다. 말 많은 남자도 진심으로 여자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말 없는 여자도 남자를 이해 못할 때가 있다. 이런 다름을 극복하여 열정이 식은 연인이 오래되고 행복한 연인 사이로 바뀌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나는 사랑보다도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진심으로 아는 것이 남녀 관계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나 살 빼야지?” 할 때 남자가 “그래 너 살 빼야겠다. 그리고 요즘 너무 많이 먹더라” 대답하는 순간 여자는 삐진다. 남자 입장에서는 사실을 이야기해 준 것인데, 여자가 삐지니 미칠 노릇이다. 그런데 실상 여자는 남자한테서 구체적인 솔루션을 원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쁘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 것이다. 더 깊게 보자면 남자 친구의 관심을 끌고 싶은 의도에서 “나 살 빼야지?”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나도 남자지만) 남자는 무척 단순하고 때로는 유치함을 넘어서 얘다. 지나가는 이쁜 여자만 있으면 고개를 돌린다. 사실 남자는 시각적으로 이쁜 것을 보면 정신이 거기에 쏠리기 때문에 방심하게 된다. 이 때 여자가 “자기 내가 이뻐, 저 여자가 이뻐”라고 물으면, 방심한 상태에 근본적으로 남자는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저 여자가 좀 이쁜거 같은데”라고 답한다. 사실 남자는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고, 이와는 달리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난 더 이상 너에게 관심이 없어”라는 말로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말의 의도와 이해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자연스럽게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이런 남녀의 심리 관계를 꾀뚫는 선수(?)나 남녀간의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나는 이런 이치를 깨닫자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약간 넓어졌다. 즉, 세상의 반이 여자이니 그 만큼 세상을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서는 남녀관계만 이야기했지만, 인간관계의 핵심은 대화를 넘어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아는 것이다. 따라서 말 한마디에 노여워 하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그 이면에 상대방이 뜻하는 바를 이해할려는 노력을 항상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컴퓨터와의 대화인 프로그래밍에도 적용된다. 이와 관련된 post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프로그램도 하나의 언어다. 컴퓨터와 나와의 의사 소통이자, 다른 프로그래머와 시스템을 두고 나누는 대화 내지는 독백이다. 여기서는 컴퓨터와 프로그래머와의 의사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컴파일 에러나 링크 에러를 마주칠 때가 있다. 초보 프로그래머는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적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하고 에러 메시지에만 목 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와 많은 의사 소통을 해 본 고수는 동일한 에러 메시지를 대하고도, 진정 컴퓨터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찾아 낸다.
물론 이런 고수와 초보의 차이를 나누는 것은 단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커플을 관계 좋은 연인으로 바꾸는 것의 핵심이 이해와 사랑이듯이, 고수와 초보를 나누는 것은 컴퓨터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사랑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열정이다. 물론 열정보다는 이해에 많은 논의의 초점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 없는 이해는 메마른 관계다. 사랑할 것이 없어 컴퓨터를 사랑한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컴퓨터가 좋듯 싫듯 하루에 3할 정도의 시간은 컴퓨터와 보낸다. 물론 컴퓨터를 단순한 인터넷 단말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컴퓨터는 단순히 컴퓨터일 뿐이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고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서 대화 상대인 컴퓨터를 열정적으로 다루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