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애국가 사건”과 관련된 생각 하나

대통령의 연인, 원제는 “The American President”로써 95년 작품이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대통령으로 나오고, 아네트 베닝이 대통령의 애인으로 나왔다. 클린턴에 우호적인 헐리우드가 클린턴의 재선을 위해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나왔을 정도로 마이클 더글라스가 맡은 배역은 클린턴가 유사한 면이 많았다.

시드니 웨이드(아네트 배닝 분)는 환경 협회의 로비스트다. 화석 연료를 감축하기 위해서 백악관을 들린 그녀는 우연잖게 대통령을 씹고 으례 그렇듯이 그 뒷담화를 대통령이 듣게 된다. 문제는 대통령이 홀아비라는 사실이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딸 하나에 수절하고 있는 잘생긴 대통령이다. 모든 로멘스 영화의 공식이 그렇듯이, 시드니와 대통령은 지속적인 만남을 더해 가고 둘 사이에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재선거를 앞둔 상대편에서는 대통령과 시드니 사이를 눈치 채고, 시드니의 뒷조사를 하였다. 재수 좋게도 시드니가 젊은 시절에 반전 데모를 하면서 성조기를 불태운 사진을 발견하고 이를 공개하였다. 언론에서는 시드니와 대통령의 사이를 부각 시키고 부적절한 관계라는 거센 비난을 한다. 모든 비난을 침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은 시드니가 국회의 20%의 동의를 얻어내면서 화석 연료 동의안을 가결시킬 조건을 만족하자, 측근들의 재선을 위한 권유로 시드니와 할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 즉, 시드니는 그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만일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의 재선에는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상황이였다.

당시가 이라크와 미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크루즈 미사일로 이라크에 폭격을 하던 시점이였다. 영화에서도 이라크에 폭격을 하면서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라크 폭격에 대한 이유는 너무나도 정당했다.(이것은 오늘 post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한다.) 그리고 성조기를 불태운 사건때문에 언론에 난타를 당하던 시드니를 위해 폭격 후 처음으로 대통령은 침묵을 깨고 연설을 하였다.(주저리 주저리 썼지만 이 부분이 오늘 post에서 내가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의 대사였다.)

“오늘 나는 인류의 가치를 구하기 위해 가슴 아픈 선택을 했습니다. (…중략…) 내가 오늘 어려운 선택을 한 것처럼 나의 연인 시드니도 젊었을 때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우리 미합중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성조기를 불태웠습니다. 물론 성조기를 불태운 행위 자체는 용서가 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언컨데, 미국이 반드시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서는 성조기를 불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조기 그 자체보다 성조기가 나타내는 그 가치를 소중히 지켜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용기를 지지합니다.

이후 스토리는 말하지 않아도 드라마다. 지지율의 극적인 반전으로 대통령은 재선에 당선되고, 물론 시드니와도 좋은 관계로 끝나게 된다.

일단 밝히건데, 오늘 post의 목적은 “윤도현의 애국가 사건”을 평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애국가 사건이 나타내는 비본질적인 문제,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겠지만… 과연 애국가는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라는 물음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함이다. 비록 영화지만 내 생각은 더글라스의 대사와 거의 일치한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너무나 난해하다. 즉, 어떤 이에게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일 수 있으며, 무정부주의자에게는 전복시킬 하나의 시스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 로크, 루소등의 사회계약설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가는 국민의 행복과 안위를 위한 가치 체계이다. 따라서 애국가를 경건히 다루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애국과와 태극기가 나타내는 우리나라의 이상과 국민의 행복이다.

※ 윤도현의 애국가 사건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듣기 좋은 편곡의 애국가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신성한 애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견해는 “별 상관없다”입니다. 그것이 예술적 창작성에 기초하건, 상업적 목적의 창작성을 노렸건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반대로 비평의 자유도 보장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post를 쓴 목적은 앞에서 밝혔듯이, 우리가 진정 수호해야할 것은 국기봉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애국 조회 때 부르는 애국가가 아니라, 그것들이 나타내는 우리 나라의 가치 체계와 국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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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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