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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번역은 반역인가?

 

번역서를 읽으면서 분통을 터트린 경험은 누구가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IT관련 서적의 경우, IT붐이 불면서 번역되는 외서가 급증했지만, 양과 질의 괴리 때문에 한동안 번역서를 읽는 것보다는 차라리 원서를 읽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질 낮은 번역서의 일차적인 책임은 번역가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장미의 이름 등을 번역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번역가 이윤기氏의 어른의 학교를 보면 번역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번역가에게 오명은 숙명입니다. 내 눈에 들보가 들어 있는 판에 남의 손톱 밑 가시 걱정이라니 당치 않지요.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이 사전 안 찾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뜻에서 하나만 소개합니다. 나는 십수 년 전 어떤 소설 한국어 번역판에서 “그는 자기의 루거를 불태웠다.”는 문장을 읽고 웃었습니다. 원문을 확인할 것도 없이 ‘He fired his Luger’일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루거’는 독일제 9밀리 권총 상표명입니다. 따라서 그 문장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권총을 쏘았다.’가 맞습니다.

이윤기氏와 같은 경험을 다들 한번 씩 갖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번역서의 1차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번역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상익氏의 ‘번역은 반역인가’를 읽고 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번역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저질의 번역서들이 출판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설명했다. 시장 진입을 법적으로 통제하는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지식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 받는 시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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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번역가의 1년 소득은 어느정도 될까? 책에서는 김용옥 교수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저는 올해(1990년) 일곱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렇게 무리를 한 것은 제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이 너무 비좁아 80평짜리 집을 하나 봉원동에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벽 때문에 도박판에 돈을 대느라고 그렇게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 저는 올해 건축비 대느라고 죽으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의 아무것도 모르는 교수 자식들이 절 만나면 뭐라 하시는지 아십니까? ‘야, 넌 교수 때려치우더니 돈 벌었더구나. 책 내기만 하면 얼마나 돈이 쏟아지겠니?’ (그러나) 제가 내는 책들은 인문과학 서적이며 이문열씨 소설과는 그 자릿수가 다릅니다. 인문과학 서적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히트쳐야 만 부면 주저앉습니다. 참 실망스럽지요. 사천 원짜리 책 만부면 그 10퍼센트 인세가 사백만원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일년에 다섯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도 제 수익은 이천만 원, 팽팽 놀아 처먹는 교수새끼들 일 년 월급도 되질 않습니다. 제 어깨는 떨어져나갑니다. 이 주길노므새끼들이 날 보고 베스트셀러 작가 부자라는 겁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이 받아 처먹고 있는 월급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가를 좀 알아라 하고 외치고 싶고, 정말 이 시대의 지성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번역서가 아닌 저자가 직접 쓴 책인 경우에도 김용옥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인세가 매우 적다. 우리나라 번역작가의 소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본문 요약)보통 정가의 6%가 번역로로 지불된다고 한다. 정가 2만 원짜리 책을 한권 번역했는데, 초판을 2천 부 찍고 인세가 6%라면 번역자에게는 240만원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2001년 민주노총이 제시한 표준 생계비를 4인 가족 기준 월 305만 7,972원이라고 제시했다고 하니, 매달 한권씩 번역 작업을 해도 4인 가족 표준 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르는 형편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지식 노동자의 대우가 좋은 시장이 어디 있게냐만은, 번역 시장이 이렇다 보니 능력 있는 인재들이 번역 시장에 끌어 들일만한 유인책이 없다. 투철한 사명의식과 학자 정신이 있는 번역가들이 적은 수입이지만 열심히 번역 문화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때부터 번역국을 두어서 국가적으로 번역 사업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왠만한 서양 서적은 일찍이 번역이 완료되었다. 따라서 구지 영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서적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영어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거 같다. 이에 반해 조금이라도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말로 번역된 참고 서적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양질의 텍스트를 공급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수들의 몫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들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번역서의 대부분은 대학원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번역된 것을 모아서 출판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번역의 수준도 낮다. 이런 교수들의 번역에 대한 수준 낮은 인식이 오늘날의 번역 문화를 생산해 내었다고 지적한다.

‘번역은 반역인가’는 우리나라의 번역문화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음지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번역가들이 있기에, 그 어려운 외서를 읽지 않아도 우리나라말로 쉽게 수 많은 텍스트를 접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2 Responses to “[독서 노트] 번역은 반역인가?”

  1. powerusr Says:

    아..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글에서도 밝혔듯 번역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글값’이 너무나 쌉니다. 물가 반영이 전혀 되질 않죠. 그렇다보니 외고가 많은 잡지의 경우 전문성과 글재주를 동시에 갖춘 필진을 갖추기가 정말 너무너무 힘듭니다. 글의 질 또한 높지 않구요. 참.. 문제네요.

  2. Hani Says:

    powerusr님//
    외서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번역비는 많지
    않은 편이더군요.(제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했을
    때 번역비와 시급 차이가 무척 큽니다.)
    변변치 않은 돈이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번역 작업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보람과 새로운
    정보를 업계에 알려주고 싶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우리나라 번역비는
    무척 싼 편이거 같습니다. 워낙 출판시장이 작아서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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