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모정(母情)과 부정(父情)은 근본적으로 다를까? 물론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겠지만, 정이 형성되는 형태는 다르다. 부정은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물론 갓 태어난 자식을 품에 앉은 아버지는 북받쳐 오르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똑같겠지만, 자식을 품에 앉는 그 순간부터가 자식과 아버지로써의 정서적 공감의 시작이다. 이에 반해 10달을 뱃속에서 품었다가, 세상 무엇보다도 심한 진통 끝에 자식을 품에 앉은 어머니의 감정은 어떨까? 물론 남자이고 미혼인 관계로 그 정서적 상태는 드라마, 소설 그리고 약간의 감수성이 묻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심정이 들것이다. 즉,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자신의 일부분인, 혈육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럼 부정이 깊냐? 모정이 깊냐?는 의문이 든다. 정확한 답은 부모들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간혹 패륜아와 무정한 부모들이 뉴스거리가 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는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부정은 아버지가 얼마큼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깊이가 차이 날 수 있지만, 모정은 혈육의 정이기 때문에 그 출발선부터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부정과 모정의 차이점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가끔 모정이 어떤 것일까라는 막연한 느낌이 실제적인 체험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1년 내외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다. 입사한 후 지금이 14번째 프로젝트다. 자식으로 따지자면 지금 품 안에 앉고 있는 자식이 14번째 자식이다. 지금까지 수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면 꼭 자식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애정이 많이 가는 프로젝트가 있는 반면,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정이 안가는 프로젝트가(힘든 것을 떠나서…) 좋게 평가받는 경우도 있었다. 자식이 부모 마음처럼 안되는 것처럼 프로젝트도 팀장 마음대로 안되나 보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처럼 프로그래머와 Software는 혈육의 정이다. 내가 짠 알고리즘이 보드 위의 전류를 따라 흐르고, 내가 만든 GUI는 얼굴로써 사용자와 대화를 한다. 어머니가 출산의 고통을 겪는다면, 프로그래머는 모니터를 쳐다 보느라고 굽은 등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이래 저래 생각해 보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프로그래머는 꼭 필요한 존재임에 틀림 없다.
아무튼 출산을 며칠 앞둔 이번 프로젝트는 노산에 해당한다.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코딩이라는 작업이 체력전이 되었다. 7년전까지만 해도 며칠 철야에 밤새 코딩을 해도 다음날 가뿐히 일어났는데, 이제는 8시간만 IDE를 붙잡고 시름하면 온 몸이 쑤시는게 안 아픈 곳이 없다. 이 때쯤 되면 뜨거운 욕탕이 그리워진다. 팀장이지만, 불가결하게 코딩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심신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그러나 곧 출산할 자식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노력하자는 생각도 드는 것은 이 직업이 천직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