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독서노트] 사도세자의 고백

 

독서의 기쁨을 처음 알게된 것은 대학교 입학후다. 내가 다닌던 학교에는 중앙 도서관과 과학 도서관이 있었다. 중앙 도서관은 문과대 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많은 장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과도관(과학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공 서적보다도 무협지와 SF 소설이 더 많았지만 (만화방에서 찾아 볼 수 없던 무협지 전권이 2-3질씩 배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독서의 기쁨을 알게해 준 소중한 공간이었다.

만일 책읽는 기쁨을 중고등학교 때 알았더라면, 내 인생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가장 싫었던 과목은 국사와 세계사였다. 독서를 좋아했다면 국사와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커겠지만, 책읽기를 워낙에 싫어했기 때문에 국사와 세계사는 단순 암기 과목으로 분류하였다. 자연스럽게 국사, 세계사 수업 시간에는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에너지 보충의 시간을 이용했기 때문에 더욱 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과목들이 싫다고 해서 시험마저 망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평소에 국사와 세계사를 멀리하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내가 두 과목의 시험 공부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교과서 외우기였다. 특이하게 중고등학교 때 국사, 세계사 선생님들이 시험 내는 방식은 교과서 전체를 알고 있어야지만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문제를 출제하였다. 진짜 벼락치기였다. 국사나 세계사 시험 전날은 두 과목을 위해서 전력투구 하면서 교과서를 외웠다. 그리고 시험 때 쏟아내고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 버렸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기말 시험 때 중간 고사 범위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다. 죽음이었다. 과목 포기와 교과서 외우기 사이에서 줄 타기하는 심정으로 시험 전날 밤을 보냈다. 따라서 두 과목을 마친 날이면 기말 시험을 마친 기분이 들곤 했다.

국사와 세계사는 내게는 트라우마와 같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려고 “로마인 이야기”나, “삼국지” 같이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책을 읽어보았지만,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책장 한 곳에는 그동안 사모은 역사책이 많은 편이지만, 지적인 즐거움을 준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몇달 전 우연잖게 이덕일氏의 “사도세자의 고백”(humanist 출판)을 읽게 되었다. 역사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까지 다음 장에 펼쳐진 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명쾌한 문체와 더불어 흥미를 불러 일으키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흥미 위주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관계, 사도세자 죽음의 역사적 의의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 트라우마가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Leave a Reply

가끔 스팸차단기에 의해 코멘트(트랙백)가 막히나, 하루에 한번씩 정상처리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