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서 빠져 나오기
유치원 때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습니다. 보통 첫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아련하고 풋풋하기 마련인데, 수영장의 첫 경험은 아련함보다는 죽음의 공포를 처음 맛 본 곳으로 기억됩니다.(거창하게 죽음의 공포라고 말은 했지만, 가끔 우울할 때 그 때를 생각하면 당황스러워 하는 어린 제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모 식구들과 어린이 회관 내 수영장에 놀러 갔습니다. 수영장에 가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풀로 달렸답니다. 어린이 수영장이기 때문에 익사의 위험은 극히 없었으나, 수영을 못해서 허리 춤에는 튜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영장을 2~30cm 앞에 두고 점프를 했는데, 발이 꼬이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고꾸라진 상태로 물에 들어갔습니다.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튜브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물만 조금 먹고 끝날 해프닝이었지만, 튜브 때문에 꼼짝할 수 없더군요.
빠져 나올려고 발버둥 칠수록 애꿎게 물만 먹었습니다. 아! 죽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처음 느껴 보는 불안감이 밀려 오더군요. 생명을 향한 몸부림은 배우는게 아니더군요. 필사의 노력으로 빠져 나올려고 했지만 물만 마셨습니다. 짧지 않은 7년의 시간들이 눈 앞을 스쳐 가더군요. 무엇보다도 집에 두고 온 마징가Z, 독수리 오형제 피닉스호 등등… 가깝게 두고 아끼던 장난감과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물론 물 속에 있어서 눈물이 흐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으니 눈물이 맞겠죠.
정다운 것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오른쪽 발이 무언가에 걸리는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순간 몸이 하늘로 올라가더군요. 옆에서 아이랑 놀고 있던 아저씨가 튜브에 박힌 채 허우적 되고 있던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영원과 같이 느껴졌던 시간은 고작 몇 초였습니다. 그렇게 물 속에서 빠져 나와 어머니에게 달려 갔습니다. 어머니 품 속에서 울고 있는 저에게 영문도 모르시는 어머니가 물으셨습니다.
어머니 : “Hani야! 무슨 일이니?”
나 : “엉 무으.. 엉엉…물…에.엉엉…바.빠졌었어….”
어머니 :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뚝…”
괜찮다고 진정 시키시는 어머니 품 속에서 제 수영장의 첫 경험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끝도 모르는 물 속으로 빠지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물론 어른들은 한참 키 클려고 꾸는 꿈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지만…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은 수영장의 기억을 상기 시켜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지는 꿈을 꿀 때마다, 공통적인 상황은 물에 더 이상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 수록 더 깊게 빨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몇 번 꾸고 나서 어떻게 하면 물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수영으로 헤엄쳐 나오는 것입니다. 수영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람은 숨을 들이 쉰 상태에서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에 뜹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힘을 빼고 숨을 들이 쉬는 것만으로 물에 뜰 수 있습니다. 이것말고도 물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무척 많을 겁니다. 꿈을 꾸지 않을 때는 물에서 안전하게 빠져 나오는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낼 수 있었지만, 꿈만 꾸면 모든 것을 잊고 발버둥만 치게 되더군요.
그러다 고2 때 쯤 물에 빠지는 꿈을 다시 꾸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물 속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필사의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건 꿈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발버둥을 멈췄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은 물에 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꿈에서는 물 속에서 빠져 나왔을까요? 불행하게도 물 속으로 끌려 가는 것은 똑같더군요. (-,.-) 그런데 평소와 다른 것은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의 기분은 불쾌함이 아니라 상쾌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물에 빠지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길게 수영장 이야기와 꿈 이야기를 한 것은 요즘 제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견하지 못했거나 예견한 경우에도 위험이 닥치면 당황해 하고 피하기 위해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물론 생명을 담보로 한 경우에는 숨 돌릴 여유조차 없겠지만, 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에게 닥친 위험의 순간은 짧습니다. 물론 위험은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위험이 주는 스트레스가 단순히 거북스럽다는 이유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또다른 위험을 부르거나, 위험을 벗어나는 올바른 처방이 아니기 때문에 소용 없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구비 구비마다 수 많은 위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위험에 대한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위험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오늘 post의 주제는 平靜心 이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평정심!!이 필요할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