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제조 성숙도 모델의 딜레마 (CMM dilemma)
오늘 Post는 지금으로 부터 몇 백년 전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공공 사업을 실시하던 조선 중기 아니면 말기. 지금의 건설교통부의 역할을 하던 공조에 공사 규모와 건수가 늘어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그 중 한가지는 망치에 관한 것이었다. 공사 증가로 납품받는 망치의 개수가 많아지자, 불량 망치의 비율도 높아졌다. 공사 도중 불량 망치가 망가지면서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는 인부가 속출하였다. 따라서 인부의 부상으로 납기를 제때에 맞추지 못 한 공조판서는 임금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는 일이 종종 생겼다.
며칠 전 청계천 공사에서 불량 망치 문제로 납기가 지연되자, 공조 판서는 또 한번 임금에게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이에 분개한 공조 판서는 공조 신하들에게 망치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조 판서의 명을 받은 공조 신하들은 망치 품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하였다. 수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지만, 그 중 공조 신하들의 마음에 들은 것은 망치 제조 연구소의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이었다.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은 망치를 만드는 대장간의 프로세스를 1에서 5까지의 5단계로 분류하여,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1레벨은 망치 제조 시 아무런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아 망치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고, 최고 등급인 5단계는 망치 제조 프로세스가 가장 최적화 되고 성숙되어서 높은 품질의 망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납품 받는 망치의 품질을 전수 조사하기 보다는 망치를 납품하는 대장간의 프로세스를 측정해서 간접적으로 망치의 품질을 보증 받겠다는 계산이었다.
공조 신하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은 공조 판서의 재가로 실행 되었다. 공조에 망치를 납품하려는 대장간은 최소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의 3단계 이상을 획득해야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기존에 망치를 납품하던 대장간에는 일대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인증 붐이 일었다.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망치 제조 연구소의 심사가 있어야 했다. 때아닌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인증 붐으로 망치 제조 연구소는 망치 제조 업계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서 작업이었다. 기존에는 주문 받은 망치 종류에 맞는 거푸집을 찾아서, 쇳물을 부어 만들어진 망치 머리에 나무로 된 손잡이를 다는 것으로, 망치 만드는 것이 끝났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따라 망치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각 공정마다 산출물로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예를 들어 주문을 받은 후 주문 받은 망치를 제 때에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분석한 주문 대응 분석서를 만들어야 했다. 예전에는 단순히 그날 만들어야할 망치 개수에 따라서 몇 개를 추가적으로 만들지 대장장이 사이에 간단한 대화로 끝낼 수 있었던 업무였지만,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를 획득하기 위해선 반드시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왜냐면 인증 심사관은 증거로만 심사를 할 수 있었고, 프로세스를 잘 따른다는 증거로 문서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를 획득하는 대장간이 하나 둘 씩 나왔다. 공조는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을 빠른 시간 안에 보급하기 위해서 3단계 획득한 대장간의 망치만을 공급 받았다. 또한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는 마켓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조 독점 공급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일반 장터에서도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 인증 대장간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따라서 일반 장터에만 물건을 납품하던 대장간들도 할 수 없이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를 취득해야 했다. 갑작스런 인증 심사 요청으로 모든 인증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된 망치 제조 연구소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자신들이 직접 인증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증 업체를 인증해 주는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망치 제조 연구소는 일일이 대장간을 상대하지 않게 되었고 돈은 전보다 더 많이 벌게 되었다. 따라서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인증을 하는 업체는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인증은 대장간이라면 당연한 것이 되었고, 잘 나간다는 대장간들은 서로 더 높은 레벨을 얻기 위해서 경쟁 아닌 경쟁을 하였다. A대장간과 B대장간은 망치 제조 분야에서 1,2위를 다투는 사이였다. 두 대장간 중에서 A대장간이 업계 최초로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5레벨을 획득하였다. 문서 작업이 많긴 했지만, A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은 대장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5레벨의 대장간에 다닌다는 Pride도 생겼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A대장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B대장간은 단지 3레벨에 머물러 있었다. 자신의 대장간에 만족하던 B대장간의 대장장이들도 으시대고 다니는 A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을 보자, 왠지 자신의 직장이 초라해 보였다.
그러던 중 B대장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B대장간의 사장이 망치를 만들지 않고 장도리라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B대장간의 대장장이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의 인증 레벨은 한 가지 제품에만 부여되는 특징이 있다. 즉 쇠망치를 만드는 대장간이 3단계를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나무망치를 만든다고 해서 나무망치 제조 분야에도 3단계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나무망치에 대해서는 별도로 인증 심사를 받아야 했다. 물론 쇠망치 3단계를 획득한 대장간이 나무망치에서 인증을 받는 것이 쉽긴 했지만, 별도의 인증 심사를 받아야 하는 고통이 따라야 했다.
물론 이런 인증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망치 제조 연구소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쇠망치를 만드는 것과 나무 망치를 만드는 것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인증도 별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의 본질은 제조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성숙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쇠망치를 만들던 대장간이 3레벨의 수준이라 해도, 나무 망치를 만들 때는 그 성숙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B대장간이 기존의 망치를 만들지 않고, 장도리를 만든다면 힘들게 취득한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3단계는 없어질 판이었다. 듣자 하니 장도리라는 제품은 망치에 못을 뽑는 도구가 붙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망치와는 완전히 달라 1레벨도 취득하기 어려울거 같았다. 대장장이들은 사장에게 가서 따졌다.
대장장이A : 사장님. 망치를 안 만들고 앞으로 장도리라는 제품을 만든다구요?
사장 : 내. 앞으로는 장도리로 제품 생산을 전환할려 합니다.
대장장이B : 아니 지금 제 정신이에요. 옆의 A대장간은 5레벨을 따고 난리인데 장도리를 만들면 어떻게 하자는 거에요?
대장장이C : 맞아요. 장도리를 만들면 지금껏 애써서 얻은 3레벨도 인증 취소 될 수 있단 말이에요.
사장 : 내. 저도 그 점은 알고 있어요.
대장장이A : 그걸 아시는 양반이 장도리를 만들자고 합니까? 더 노력해서 4레벨도 따고 5레벨도 따야지.
사장 : 자~ 다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제 얘길 들어 보세요. 지금 망치를 만드는 잘 나간다는 대장간 중에 3레벨이 아니 곳이 있나요?
대장장이들 : 없죠.
사장 : 바로 그거에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3레벨을 취득하고 말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무엇보다도 망치 시장은 포화 상태입니다. 즉 제조 원가 싸움인거 아시죠. 중국산 저가 망치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망치 시장은 더 불투명합니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무리 망치를 잘 만들면 무엇합니까? 팔 시장도 없고 이윤도 나지 않는 시장인데요. 따라서 제가 장도리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함이에요. 앞으로는 망치 시장은 장도리가 대체할 겁니다. 장도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망치 만드는데는 도가 튼 상태이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합치면 장도리를 만들 수 있을겁니다.
대장장이A : 그래도 우리 대장간이 A대장간보다 망치를 잘 만드는데, 그냥 망치를 만드는게 낫지 않나요?
대장장이B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대장장이들의 저항에 부딪혀 장도리 출시는 다소 지연되었지만, 사장의 설득으로 장터에 출시할 수 있었다. 못을 뽑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 B대장간의 장도리는 초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이에 반해 “망치 제조 성숙도 모형” 레벨 취득에 혈안이 되어 있던 대장간들은 한동안 중국 망치의 저가 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우화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SI업계에 한동안 몰아 쳤던 CMM인증 붐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다시 말하지만 난 Process 무용론자도 아니며, CMM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도 없다. 이 Post의 본질은 Business 관점에서 CMM 인증을 바라 보려는데 있다. 일단 이 우화의 영감을 얻은 피플웨어(톰 디마르코, 티모시 리스터 著)에서는 CMM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루크여, 잘 생각해 보라. 너의 기업이 레벨 4로 뛰어 오르면 엄청난 재정적 이익이 돌아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레벨 5는 최고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레벨 4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을 모두 없애 버려라. … 우리의 계획은 이렇다. 과거 우리가 해보았던 프로젝트와 똑같은 종류의 프로젝트만 맡는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일만 하고, 이런 흔한 프로젝트에 딱 맞는 프로세스를 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과정을 잘 문서해 놓았다가 은하계 프로세스 평가원이 오면, 우리가 해놓은 한 치의 오점도 없는 완벽한 소프트웨어 프로세스를 실행해 보인 뒤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당초 기대하고 있었던 소프트웨어 프로세스 레벨을 올리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 하루 빨리 올라간 프로세스 레벨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정반대로의 프로세스 개선책
… 당신의 회사가 현재 CMM 레벨 2 혹은 그 이상의 회사라면 다음 문장을 꼭 기억하라. “가장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는 당신 회사의 프로세스 레벨을 완전히 한 등급 낮춰 줄 그런 프로젝트이다” 그런 프로젝트들이야말로 당신이 해야 할 유일한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당신이 S/W 회사의 owner라 가정해 보자. 회사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서 물론 이런 것도 답이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윤 창출일 것이다. 돈을 벌고 싶다면 당신의 회사는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당신 회사의 S/W 혹은 서비스가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줄 때 돈을 벌 기회가 있다.
반대로 CMM은 무엇인가? 업무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예를 들어 당신 회사는 ERP 구축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CMM레벨을 올리려 한다면, ERP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한다.(동일 분야의 프로젝트 경험이 축적되어야 레벨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SI프로젝트의 시장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 기술이 보편화 되어 프로젝트 수익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익성 저하에도 불구하고 CMM 레벨을 올리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S/W의 품질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좀 더 큰 이유는 마케팅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S/W 분야, 같은 수주 조건일 때 고객은 CMM 레벨이 높은 곳에 프로젝트를 의뢰할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CMM 레벨이 프로젝트 수주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쉽게 돈을 벌고 싶다면 하루 빨리 회사의 CMM레벨을 높여서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돈은 벌지 모르지만 회사의 성장 동력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회사가 Red Ocean 안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CMM레벨을 올려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럼 CMM레벨을 떨어 트려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보자. CMM 레벨을 떨어 트리는 방법은 해 보지 않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즉 경험 없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바로 새로운 가치 혹은 새로운 분야의 프로젝트다. 새로운 가치 혹은 새로운 분야의 프로젝트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회사는 이미 어느정도 수준의 S/W 개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효율이 높지 않지만 곧 재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이건 CMM이 말해 준다.) 따라서 Risk를 감수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새로운 Business의 가능성은 CMM 레벨 저하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망치 이야기는 가상임을 알려 둡니다. ^^
October 25th, 2010 at 12: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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