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2부
1부인 진짜!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이 있음을 일러 둔다.
어제 급하게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했다. 몇년 전이면 급하게 (무척이나 멀리 있는) 회사 근처의 동사무소에 가서 직접 발급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기에 쓸데없는 발품을 팔 필요가 없다. 행복한 세상이다!
대한민국전자정보 사이트에 접속해서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선택했다. http://www.egov.go.kr/ 약 4가지 정도의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다.(4개 정도면 참을만하다. 며칠 전에 졸업 증명서가 필요해서 모교 사이트에 접속해서 증명서 출력을 선택하니, 대략 5개 정도의 프로그램이 설치되고 심지어는 재부팅까지 요구했다.) 간단한 개인 신상 정보를 입력하고 발급 버튼을 눌렀다. 거의 80리 이상은 온 듯 싶었다.
출력할 프린터 선택 화면이 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림에서(이 화면은 집에서 캡쳐한 것이기 때문에 어제 회사에서 작업한 것과는 다르다.) 보듯이 공유 프린터로는 등본을 출력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99%이상의 프린터는 공유 프린터다. 지금까지 입력한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집에서 캡쳐한 화면이어서 어제와 다름
결국 등본을 출력하기 위해서 프린터가 직접 물려 있는 PC를 찾아야 했다. 약 10여분간의 수소문 끝에 간신히 PC와 직접 물려 있는 프린터를 찾을 수 있었다. 프린터와 연결된 PC의 특징은 업무용으로 적합하지 않을 때, 이리 저리 돌아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프린터 서버 역할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나 찾은 PC의 상황도 비슷했다. 또한 공용 PC라는 장점을 살려서 Tray에는 수 많은 아이콘들과 바탕 화면에는 형용색색의 바로가기가 깔려 있었다. 가득이나 떨어지는 성능에 온갖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빨랐다.
사이트에 접속해서 약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공포의 프린터 선택도 넘어 갔다. 여기까지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주민등록등본은 내 손안에 들어온다는 상상에 마음까지 들뜬다. 그런데 다신 한번 신청자 정보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 처음에 입력한 내용인데 또 입력하라고? 이게 도대체 무슨 고도의 삽질인가? 고민해 봤다. 아마도 등본의 주인공과 등본을 발급 받으려는 사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적어도 등본대상자와 발급 신청자가 같을 때를 예상해서 “발급 대상자 정보 가져오기” 기능정도는 있어야하지 않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정도 한번 입력하는데 까칠하게 굴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참자! 이제 꿈에 그린더 주민등록등본이 눈 앞에 있으니까…
모든 정보를 입력하고 완료 버튼을 눌렀다. 다시 한번 ActiveX를 설치하니,(한번에 설치하면 무슨 문제가 있나? 이렇게 해서 총 5번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세상에 이런! 공인인증서를 선택해 달라는 창이 뜬다. 공인인증서가 없다고 하니 발급을 해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뜬다. 결국 공인인증서를 다시 내려 받아서 작업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도대체 이름도 모름 수 많은 프로그램들이 기어 다니는 PC에 소중한 공인인증서를 설치하란 말이냐? 공인인증서 테러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전거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내 무인 발급기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페달을 밟으며 약 40분 정도 일어났던 고도의 삽집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수 많은 S/W, H/W 문제점들이 결합해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음으로 귀결된다.
등본신청 초기화면에 등본신청 작업에 필요한 조건을 공지하지 않았다.
- 공유프린터를 사용할 수 없다.
- 반드시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만약에 이 두가지 문구만 크게 써서 알려 주었다면 이미 주민등록등본은 내 손에 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업은 무척 간단하다. 즉, 간단한 타이핑 작업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면 디자이너에게 부탁해서 이쁜 레이아웃 작업정도만 하면 훌륭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탄생했을 것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작업인데, 왜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주민등록등본을 발급 받으면서 직접 겪은 불편이기에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거지만, 이런 개념없는 UI때문에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불편을 겪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눈안에 들보가 더 큼을 잘 알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S/W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일 수 있다.
이런 UI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자(여기서 개발자는 프로그래머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S/W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이를 칭한다.)와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기능의 완성이다. 이에 반해 사용자들의 관심사는 사용성의 완성이다. 주민등록등본 발급 신청 process를 살펴 보면 개발자 관점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개발자가 목표로 한 모든 기능들이 있다. 공유 프린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공인 인증서 확인 프로세스도 있으며, 발급자 정보와 대상자 정보를 입력하는 창도 있고(둘이 동일해도 또 입력하면 된다.), 설치 프로그램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드문 드문 작동되도… 개발자가 목표로 한 모든 기능들이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쉬운 주민등록등본 발급 절차와 사용성의 완성이라는 목적 함수를 놓고 보았을 때, 이 system은 낙제 수준이다. 즉, 수 많은 hazard가 놓인 코스에서 골프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사용자의 수준은 다양하다. 타이거 우즈와 같은 프로골퍼에서 미니 골프장에서 아빠 손을 잡고 놀러 온 아이까지 말이다. 타이거 우즈 조차도 전에 이 코스에서 공을 쳐 보지 못했다면 섬세하지 못한 드라이브 shot과 적절하지 못한 아이언의 선택으로 hazard에 빠지기 쉽다. 즉, 프로 사용자가 아니면 공유 프린터 벙커에 빠지고, 공인 인증서 나무에 걸리면, ActiveX hazard에 공을 잃고 만다. 그러나 주민등록등본 발급은 초난이도의 골프 코스가 아니다. 즉, 골프채를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 5살짜리 아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미니 골프장이 되어야 한다. 미니 골프장을 만들 수 없다면, 골프장을 완성해 놓고 경고문 하나 정도는 붙여 놔야 한다.
경고 : 이 곳은 무척 난이도가 높은 골프 코스로
- 공유 프린터 금지 벙커
- 공인 인증서 큰 나무
- ActiveX hazard
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기능성의 완성과 사용성의 완성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단지 개발자와 사용자라는 분열된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분열증적인 신경질환은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일 수 있다. Extreme Prgoramming Explained 2/e(켄트 벡,인사이트 출판)에서 지적한 것처럼 테일러 주의가 계획과 실행을 분리하고, 설계와 품질을 떼어 놓아서 생긴 문제의 한 종류다. 이런 분열증적인 이론들이 사용자와 개발자의 세계를 갈라 놓았다. 이 세계를 통합하는 지점에서 진짜! 진짜!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고 믿는다.
다음 post에서 계속 됩니다…
August 27th, 2006 at 1:25 am
회사 동료도 위의 일과 똑같은 상황을 겪었습니다.
아마 이런 경우를 겪은 사람이 매우 많을거 같네요.
진짜 좋은 UI는 사용자 입장에서 만들어야 되는데, 개발자의 입장에서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August 28th, 2006 at 12:39 pm
다른 S/W 전문분야도 그렇듯이,
usability, interaction desginer와
같은 사용자 i/f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이 없는 점도
이런 문제의 원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