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vs 블로그 아닌 것

논리학은 수학일까? 아닐까?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서 참과 거짓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논리학은 수학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명제가 지니고 있는 이념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면 논리학은 수학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백인이거나 백인이 아니다.

위의 문장은 배중률에 의해 항상 참이다. 즉,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명제와 이 명제의 부정인 “인간은 백인이 아니다” 라는 두 명제는 똑같이 참일 수 없다. 만일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인간은 백인이 아니다”가 거짓이 되며, 반대일 경우에도 한쪽이 거짓이기 때문에 다른 명제는 자동으로 참인 명제가 된다. 따라서 두 명제를 합쳐 놓은 위의 예제는 항상 참이 되는 “항진 명제(tautology)”가 된다.

하지만 단순한 참과 거짓의 논리학 문제를 떠나 위의 명제는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숨어 있다. 일단 명제는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서 백인이 아닌 인간을 분리해 낸다. 즉 백인만이 인간일 수 있다는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배중률에 입각해서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명제는 무한히 생산해 낼 수 있다. 아래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항진 명제들이다.

너는 공산당이거나 아니다.
정당은 열린 우리당이거나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거나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자이거나 아니다.

가치 중립적인 논리학이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식의 항진 명제는 곧바로 구호 정치로 연결되며, 토론이 존재하지 않는 선동적인 정치 노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진명제를 이용해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항진명제에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항진명제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명제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숨어 있나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럼 이 Post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항진 명제를 꺼내 보겠다.

블로그라 말하는 것은 블로그이거나 아니다.

그렇다면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가치 판단의 준거는 무엇일까? 단순히 RSS Feed를 제공해 주고, 시간역순으로 Post를 뿌려 주고, Track back을 제공하면 블로그인가? 기술적인 것들이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초기 블로그를 기획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런 초기 정신에 가깝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고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블로그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펌으로 채워진 이쁜 Layout에 RSS를 제공하고 comment를 달 수 있다고 해서 블로그라 말하면 안된다.

펌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서구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의 역사라고 한다. 즉, 그리스 철학 이후에 나타난 서구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을 지속적으로 인용하면서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내가 지금 Post하는 “블로그 vs 블로그 아닌 것”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야기했고 어디서 읽은 자료를 내 스스로 정리해서 이 Post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펌도 펌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펌을 했을 때 적어도 그 펌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의견 더 크게 보자면 새로운 지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그것 또한 블로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왜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까? 제대로된 블로그 문화를 정착하기 위함이 첫번째 이유고, 지적 소유권과(지적 재산권이라 함은 다소 편협한 의미가 있는거 같다.) 창작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Web 2.0의 사회에서는 사용자가 앞단에 나타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Web 2.0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집단 지식과 사용자 참여라 생각한다. 따라서 단순히 사기업의 마켓팅 도구와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서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구별 짓는 것은 Web 2.0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처음 예로 든 부분은 이진경의 수학의 몽상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혀 둡니다.



About the Author

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Leave a Reply

가끔 스팸차단기에 의해 코멘트(트랙백)가 막히나, 하루에 한번씩 정상처리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