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딕~ 명랑 Naver 성공기 - 1/2
오늘 Post의 제목은 명랑 발랄하게 “디비딕 ~ 명랑 Naver 성공기”로 정했다. 그동안 Post의 내용이 너무 진지한 탓에 사는게 너무 진지해진거 같다. 분위기도 바꿀 겸, 오늘은 좀 쉽게 쉽게 읽어 가면서 과연 Web 2.0의 미래에는 어떤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을지, Naver는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할 수는 있는 시간을 제공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 곳은 어디일까? Naver 지식인? 삐~익 틀렸다. DBDIC? 오. 이렇게 말한 사람은 평소에 인터넷 좀 한다고 이야기 들었을 것이다. 나도 이 Post를 쓰기 전까지는 DBDIC이 우리나라 최초의 지식 검색 서비스로 알고 있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Search 해 보니, DBDIC이 “최초 지식 검색 서비스”가 아니었다. 원조 할매 국밥집 옆에 “진짜 원조 할매 국밥집”이 있었던 것이다.
eouia님의 국내 최초의 지식 검색 ahnice 이야기 Post를 통해 nKorea의 “아나이스”(ahnice)라는 서비스가 진짜 원조 지식 검색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DBDIC은 한계레 신문사가 서비스한 지식 검색으로, nKorea의 ahnice를 밴치 마킹해서 만들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듯이 ahnice가 최초로 시도는 했지만, 사실상 지식 검색 서비스의 성공은 DBDIC이 최초였다. 서비스 성공에 무게를 두어, 우선 DBDIC에 대해서 알아 보자.(Winner takes all~)

[2002년 9월 리뉴얼 후 DBDIC 메인 페이지, source from netville.co.kr]
DBDIC은 2000년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식 커뮤니티사이트 ‘디비딕닷컴’ 오픈 - 2000.10
디비딕이 뭔뜻? 어원? (여기서 DBDIC의 기획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DBDIC이 오픈한 당시에는 특정 분야의 QnA 사이트가 대세였기 때문에, DBDIC처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질의 응답을 할 수 있는 사이트는 거의 없었다. 또한 DBDIC을 서비스한 주체가 한겨레라는 Major 언론이었기 때문에, 마켓팅 측면에서도 다른 사이트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DBDIC의 이용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1. DBDIC에 사용자로 등록한다.
2. 특정 카테고리를 선택한 후 질문을 올린다.
예) 생활 카테고리 :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는 이유?
3. 내가 등록한 질문이 해결 중인 질문 리스트에 올라 온다.
4. 답변자들은 해결 중인 질문 리스트에서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선택해서 답을 단다.
예) 질문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는 이유? 답 : 누가 나에게 욕을 한다면 대들고 싸울 일이지만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욕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심리…
5. 질문에 따라서 적게는 한두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답변이 올라온다. 물론 답변 내용은 질문자에게 메일로도 알려 준다.
6. 질문자는 자신이 생각할 때, 답변 중 가장 좋은 답변을 선택한다. 단순히 선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족도에 따라서 점수를 부여한다.
어디서 많이 본 운영 방식이지 않은가? 그래 맞다. Naver의 지식인과 동일한 운영 방식이다. 어차피 DBDIC이 ahnice를 베꼇듯이, Naver는 DBDIC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였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에 있는가.
DBDIC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유치해 보이는 지식 점수 부여 방식은 많은 질문과 양질의 답변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나도 DBDIC에 질문도 해보고, 답변도 몇번 달아 보았다. 궁금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전문적인 질문이나, 황당한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달은 답변이 높은 점수로 채택되었을 때 으근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높은 지식 점수를 획득한 Guru가 나타나고 이들은 핵심 Node가 되었다.
AltaVista, Yahoo로 대표 되었던 검색 엔진이 많은 페이지를 색인하고 있었지만 사용자의 질의어에 적절한 페이지를 보여 주지는 못하고 단순 나열 식으로 검색 결과를 보여 주었다. 수 많은 검색 페이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찾지 못한 사용자들에게 DBDIC은 정보 제공의 네트웍을 제공해 주었다. 즉, DBDIC에 가면 왠만한 질문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캐치플레이가 다수의 이용자를 모았고, 또한 DBDIC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던 질문자는 다시 답변자로 역할이 바뀌어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DBDIC에 접속하게 만들었다. Web 2.0에서 블로그, 링크와 Google 검색엔진으로 제공되는 지식 네트웍이 부족하지만 DBDIC이라는 서비스로 사용자에게 제공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DBDIC에서 얻을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 살펴 보자. DBDIC에서는 질문도 하나의 컨텐츠였다. 평범한 질문도 많았지만 다양한 연령, 직업군의 사람들이 질문을 올렸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생각지 못하는 질문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번쯤 공상으로 생각했을 뻔한 것들을 다른 사람이 질문하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음은 DBDIC에 등록되었던 질문 리스트 중에 일부이다.
지식주고 감동받는 DBDIC (한겨레 2001 연말특집)
. ‘군대에서 이거 알고 있으니까 도움 되더라~’ 이런거 없으신가요?
. 영화에서 섹스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 음치면 휘파람도 음치인가?
. 성기 색깔은 왜 까만가요?
. 왜 엿장수는 가위를 들고 다닐까?
. 라면+식초=다이어트?
. 예비군 훈련 때, 군복만 입으면 아무리 얌전한 사람도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가 뭘까요? 무슨 심리일까?
. 코카콜라에서 코카 = 코카인?
. 유독 사람만이 이를 닦는 이유
위에 나열된 DBDIC의 질문은 명확한 답이 있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인 질문이나 답이 없는 질문도 많았다. 가령 애인과 헤어져서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태와 심정을 올리면 연애에 다양한 경험이 있거나,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 줌으로써 정서적인 만족까지 줄 수 있었다. 또한 단순히 명확한 답이 있는 경우라도 답변자들이 각종 문헌과 링크를 참조해서 성실한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펌이 아닌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였다. 아래 링크에서 DBDIC의 답변 중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답변 : 나레이터(도우미)모델이 하루 일해서 받는 비용은?
답변 : 국내 최대의 매출을 자랑하는 삼성몰이 아직까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답변 : 신설 장애인 사회 복지관 홍보방법은?
답변 : 영어 욕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겨레 신문은 DBDIC의 성공으로, DBDIC에 등록된 인기있는 지식과 답변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 때 출간된 책이 ‘너 그거 아니?’였다. 이 책은 2001년 12월에 비소설부분의 베스트셀러 7위를 기록하였다. 우리가 ‘너 그거 아니?’에 주목해야 하는 점은 책 출판의 과정과 수익 배분 구조다. DBDIC 사용자에 의해 등록된 15만건 이상의 지식 중에서 약 400건을 추렸으며, 동시에 책의 제목도 사용자에 의해 정했다. 책 판매를 통한 수익의 일부는 책에 질문과 답변이 실린 사용자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DBDIC의 사용자는 책의 공동 저자라 볼 수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DBDIC 사용자는 마켓터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하는 구전 마케팅의 효과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소수의 편집자들에 의해 책에 실린 질문과 답변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집단의 사용자들이 재미와 유용성을 검증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 가능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Web 2.0의 몇 개의 키워드가 이미 DBDIC에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DBDIC의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한겨레 신문사는 ‘너 그거 아니?’ 책의 연속적인 성공에 자극 받아, 2002년 9월 DBDIC을 전격적으로 유료화 하였다. 수익 구조는 사용자에게 포인트를 나누어 주고 질문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내야 했다. 만일 포인트가 모자른 경우 돈을 지불하고 포인트를 충전해야 했다. 즉, 한겨레는 답변자가 답을 달아 줌으로써 양질의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 받고 돈을 버는 비지니스 모델이었다. 이런 비지니스 모델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대부분의 사용자는 자신의 비용을 지불하고 답변을 얻을 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다소 정보의 질은 떨어져도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둘째 답변자들은 자신은 금전적 혜택없이 한겨레에게 돋을 벌어 주는 구조를 당연히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DBDIC은 유료화 전환 후 많은 사용자를 잃었고, 유료화 7개월만에 empas에 팔렸다. 이 후 DBDIC은 지식 거래소로 이름이 바뀌어 서비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식 검색의 장을 열었던 DBDIC의 영광스럽지만, 짧은 역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으로 짧게 DBDIC이 남긴 것들을 정리해 보자.
1. 지식 검색 서비스 시장 개척 : 비록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지식 검색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해 주었다. 이런 시장 개척은 Naver가 지식 검색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서비스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2. 집단 지식을 활용한 가치 창출 : 온라인에서 축적된 집단 지식을 Off-line 시장의 책, ‘너 그거 아니?’ 출판함으로써 집단 지식을 활용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3. 미성숙한 비지니스 모델의 위험성 경고 : 어설픈 비지니스 모델은 사용자들의 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결국에는 사이트 중단이라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다른 On-Line 사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유사 사례로 Freechal.com이 있다.
최진사댁 셋째 딸은 이쁘다. 그렇다 딸 부자집의 셋째 딸은 얼굴도 안보도 데려 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인지, ‘3′이라는 숫자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은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숫자다. ‘3′의 정기가 지식 서비스에도 적용되는 걸까? 지식 검색 서비스를 만든 제 1세대 지식 서비스 ahnice, 지식 검색 서비스 도약의 발판을 마려한 제 2세대 지식 서비스 DBDIC 그리고 대망의 3 세대 서비스가 지식 검색의 중흥을 열매를 맺는 것은 운명의 계시였을까? 2002-10-07 Naver가 지식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January 31st, 2006 at 9:56 pm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트래백을 하려고 했는데… 없네요. ^^;
http://tsf.co.kr/blog/index.php?pl=95
February 1st, 2006 at 12:59 am
정타임님도 dbdic 회원이셨군요.
저도 한 때 dbdic의 세계에 푹 빠져 살았었는데요.
그 때의 분위기가 그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