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라고 생각될 때
오늘은 당구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당구를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94년이었습니다. 대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처음 만난 동기들과 할 이야기도 마땅치 않아, 서먹서먹한 순간에 동기 중 한명이
“당구나 한 게임하러 가지 않을래?”
라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런 서먹함이 싫었던지 10명 정도가 모여 있던 자리에 대부분이 좋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범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여서, 왠지 당구장엘 간다는 것이 좀 불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하!하! 참 순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잘 나간다(?)는 친구들이 쉬는 시간 마다 책상위에 미니 당구대를 만들고, 흰색 분필, 빨간색, 파란색 분필을 잘 갈아서 만든 미니 당구공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처음 잡아 보는 큐와 당구대가 낯설지는 않더군요.
아무튼 dama 30을 놓고 동기 3명과 처음으로 당구라는 것을 해 봤습니다. 어라! 그런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같이 당구를 했던 친구들의 수준은 80에서 100 사이였는데 제가 1등을 먹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그랬던지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시작한 당구인생은, 초등학교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당구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입문 한달만에 dama 100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당구의 神氣가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럼 11년이 지난 지금 저의 dama는 얼마일까요? 적어도 한달만에 dama 100을 달성했는데, 적어도 dama 300정도는 되어 있겠죠?
사실 11년이 지난 지금도 dama 100에 머물고 있답니다. 한달만에 dama 100을 달성했던 그 神氣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니면 당구장 수호신이 순진한 대학생을 당구장의 마수에 빠지게 할려는 목적으로 저를 홀린걸까요?
여러분 모두는 무언가를 배우다, 저의 당구 실력처럼 일정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경험을 한번씩은 해 보셨을 겁니다. 이런 학습의 발달 과정을 S자 학습 곡선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S자 학습 곡선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면요. 학습 초기 단계에는 조금의 노력만 투입해도 학습 수준이 금방 높아집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학습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투입된 노력에 비해서 학습 수준이 답보하는 정체기를 맞게 되죠. 학습자가 해당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거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면 이 정체기를 벗어나서 다시 학습 초기와 같은 학습 효과를 보게되는게 S자 학습 곡선입니다. (아마도 저의 당구 학습 곡선은 정체기가 무척이나 긴 비정상적인 형태의 S자 모양인거 같네요.)

연금술사, 11분, 오 자히르 등으로 잘 알려진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에서는 이 S자 학습 곡선과 비슷한 설명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연금술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 채굴꾼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다. 에메랄드 하나를 캐기 위해 오 년 동안 강가에서 99만 9천 9백 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마침내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그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더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아의 신호, 그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노인은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다. 노인은 한 개의 돌멩이로 변해서 채굴꾼의 발 앞으로 굴러갔다. 오 년 동안의 보람 없는 노동에 한껏 화가 나 있던 채굴꾼은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혔다. 그리고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
그리고 오 자히르에서는 아래와 같은 구절로 표현하는군요.
“… 아코모다도르 : 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정신적 외상, 쓰디쓴 실패, 사랑에 대한 환멸 등이 있다. 때론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은 우연한 성공이 우리를 소심하게 만들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자기 내부의 잠재된 힘을 일깨우는 수련중에 있는 주술사라면 맨 먼저 ‘아코모다도르’ 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신의 아코모다도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
당구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입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뽀얀 하얀색 몸체에 회색의 버튼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나란히 줄 맞혀 놓여있고, 그 위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어서 무엇인가를 넣을 수 있는 네모난 상자, 이것이 저의 컴퓨터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그 컴퓨터는 아실만한 분은 다 아는 대우에서 나온 msx2였습니다. 그 투박하게 생긴 물건에서 ‘보글보글’이라는 당대 Hit game부터 basic 프로그래밍까지 아무튼 소년에게 환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였습니다. 막 사춘기 시절을 맞게된 그날부터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XT(대우 코로나 2000), AT, 486 그리고 현재 회사에서 쓰고 있는 노트북까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가정용 PC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컴퓨와 맺은 인연은 자연스럽게 베이직 프로그래밍으로 연결되었고 결국에는 오늘날의 밥 벌이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프로그래밍 실력에도 코엘료가 말하는 ‘아코모다도르’가, S자 학습 곡선에서 말하는 정체기에 놓인거 같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컴퓨터가 좋아서 이 직업군에 들어왔건, Y2K 때 벤쳐라는 환상을 쫓아 이 세계에 정착을 했건 이런 여러가지 이유를 떠나서, IT세계에서 프로그램을 하는 이들은 어느정도 발전기를 지나면 반드시 맞게되는 정체기가 있습니다.
이런 정체기는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거나, 우리나라 IT가 SI위주의 노동 집약적인 산업 구조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S/W 개발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라면, 지금 자신이 ‘아코모다도르’와 진보와 정체의 S자 곡선의 변곡점에 위치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이 당장에 당신을 성공으로 가는 Royal Road위에 데려다 주진 않겠지만, 에메랄드를 발견하기 위해서 돌을 깨트리는 채굴꾼처럼 어느날 당신에게 영롱한 빛을 발하는 에메랄드를 손에 넣는 계기는 마련해 줄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