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에 대한 고찰
“왜 그렇게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
“친절해 보일까봐.”
–친절한 금자씨 中

극 초반에 금자씨는 무척 상냥하게 나온다. 그러다 유괴범으로 몰리고, 감방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더러운 이꼴 저꼴 다 겪으면서 불친절하게 변한다. 하지만 이영애氏와 같이 이쁜 얼굴이 어떻게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을까? 그나마 화장발로 안 착하게 보이고자 시뻘겋게 하고 다닐 수 밖에 없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착하다”는 좋게 말하면 “어리숙하다” 내지는 심하게 말하면 “바보같다”와 동격으로 쓰인다. 따라서 착하기만 했던 우리나라 여자들에게 더 이상 “착하다”, “친절하다”는 칭찬이 아니다. 세태가 이러니 소개팅이나 미팅에서 만나 여자에게 착하시네요 라는 말을 건넬 센스 없는 남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착하다는 소리에 마냥 행복할 여자도 없을 것이다.
3년전 쯤의 일로 기억된다. 회사에서 외부 강사 한 분을 초청해서 한국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초청 강사의 프로필이나 자세한 강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에피소드 한 가지가 있다. 착하다는 어원에 관한 이야기다. 그 분의 요지는 착하다는 도착할 착 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를 보고 어느 때에 착하다고 이야기하는가 생각해 보자. 시킨 일이나 심부름을 잘 하거나 공부를 잘했을 때 보통 착하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행동 규범을 만족 시켰을 때 착하다고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목표에 着(도착)했을 때 착하다는 말을 한다.
이 어원이 맞다면, 착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는 행동을 했을 때 착하다는 것이다. 이런 피동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개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이 개인이 우선 시 되는 환경에서는 불쾌감을 일으킬만한 칭찬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의 어원을 살필 때 시제에 유념해야 한다. 항상 어떤 말이 쓰였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즉, 착하다는 참 뜻은 현재 시제로 살펴서 안된다. 전통적 한국 가치관이 남아 있던 그 시대의 기준에서 착하다는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양은 서구 사회와 달리 개인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서구의 가치관이 인본주의 중심의 개인적 가치관을 우선 시 한다면, 동양의 가치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즉, 잘난 누구 누구보다는 누구 누구의 아버지, 아들, 동생 등의 관계 속의 위치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같은 서구 사회가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불굴의 의지로 성공을 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해낸 영웅 스토리에 미치는 것은 이런 인본주의 사상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나 중국과 같은 동양사회에서는 입신양명도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고, 부모님께 생명이라도 바쳐서 봉양하는 효자에게 어떤 만석꾼 부자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 가치관이 남아 있던 시절에는 착하다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자, 공동체 생활 속에 갖추어야할 덕목이었다.(물론 이런 착하다는 의미가 기득권 층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음은 밝혀 둔다. 다만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데올로기 측면이 아니라, 동양적 사고 방식으로 당시의 삶을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착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히 함으로써 가정이 평안해지고 나라가 편안해지고 세상이 평화로와지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서구 가치관이 가치의 척도가 된 지금, 더 이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 받는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착하다는 어원을 살펴 보았을 때, 의존적이고 피동적이고 뒤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적 가치에서 서구적 가치로 전도된 지금 시대에도 착하다는 말은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우리 주위에 착하다는 말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지만 착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은 회사다. 착하다는 본 뜻은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 기업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일반 사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이윤 추구다. 따라서 가장 훌륭한 직원은 돈 버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다. 물론 혹자는 회사 입장에서 돈 버는 목적에 부합했기 때문에 돈 잘 버는 직원을 착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착하다는 말은 개인과 개인에서 한정지어 사용한다. 따라서 개인과 조직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은 착한 직원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안착한 직원은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서 상사 혹은 동료와 많은 트러블을 일으킨다. 물론 동료보다는 상사와의 의견 충돌이 심할 것이다. 일단 그 안착한 직원이 능력이 있다면, 그 직원이 상사의 눈 밖에 난다 하더라도 실력 때문에 어느정도 회사를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능력이 더 이상 필요가 없거나, 상사가 그 사람의 못된 심성을 못 견딘다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야할 것이다.
따라서 능력없거나 용기없는 직원들은 착한 직원이 되기를 원한다. 물론 착한 직원이 된다면 적어도 상사나 회사와의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즉, 회사의 기준과 상사의 기준에 자신의 행동 규범을 맞추기 때문에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착한 직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착하기 때문에 회사는 나를 버리지 않을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시 된 사회에서는 착한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기 때문에 착하다는 것만으로 삶이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경쟁 사회, 회사에서는 이런 믿음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다.
따라서 착하다는 것도 안착하다는 것도 모두 직장내 생존 문제와 관련해서 꼭 필요한 덕목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처세를 착하다는 말로 숨길 수 있다. 즉, 출세를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여러가지 자신의 의지를 접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당신은 회사에서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착한 직원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당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착한직원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보아야 한다.
※ 오래 전부터 착한 직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는데, zdnet에 착한 직원 신드롬이라는 비슷한 내용의 컬럼이 떴네요. 그렇다고 생각하던 것을 접는 것도 아쉽고 해서, 일단 post를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