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력감 에필로그
매 한마리가 사냥꾼에게 잡혔다. 사냥꾼은 마당 한가운데 말뚝을 박아 매를 매어두었다. 매는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 수천, 수만 범의 시도를 했다. 그러나 밧줄 길이 이상으로 날아가지는 못했다. 그럴 때마다 땅으로 곤두박질치곤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밧줄은 풍상에 시달려 저절로 끊어져 버렸다. 하지만 매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아봐도 또 떨어질텐데.’
자신이 외부환경을 통제하지 못할 때에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도를 포기한다.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무기력을 학습한 결과다. 그래서 이것을 ‘학습된 무력감’이라 한다.
유쾌한 심리학, 박지영, 파피에 출판
‘학습된 무력감’은 셀리그만(Seligman)의 회피훈련연구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동물에게만 한정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학습된 무력감’은, 일련의 실험으로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혀졌다.
굳이 심리학 실험을 언급하지 않아도, ‘학습된 무력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일상생활을 통해서 경험한다. 신입사원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정적이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 신입사원의 패기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직장 문화를 개선하자고도 울부짓지만, 관리자나 선배의 싸늘한 반응에, 사회가 그리 녹녹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흘러 일년 이년이 지나고 나면, 후배 사원이 들어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열정적인 후배의 모습 때문에, 후배의 면전에 대고 핀잔을 주지는 않겠지만, 다음처럼 되뇌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학습된 무력감’은 환경에서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피실험 대상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학습된 무력감’이 내재화되는 순간은, 외부의 환경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이다. 그리고 열정의 화신이었던 신입사원은, 더 이상 도전하지도, 환경이 바뀌었는지 살피지도,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벽을 향해 돌진하는 무식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지금 당장 존재한다 하여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속에서 세상을 보는 이치를 얻어야 한다.
나를 떨어트리던 물대포 사수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갔으며, 셀리그만의 실험 장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는, 깨어있는 두 눈이다. 그 다음은 기둥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약간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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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4th, 2007 at 12:15 pm
씁쓸한 포스트네요…
학습된 무력감 증상이 아마 4년차 정도 아닐까 싶은데…
무력감을 ‘시니컬한 태도’ 정도로 바꾸는 정도가 보통 사람들 아닐까 싶군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한국이 더 잘 될텐데..
April 15th, 2007 at 9:24 pm
davidkim님.
안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틀을 규정 짓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앎이 아니라, 얻은 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얻은 앎이라도 변한 환경에서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가장 중요하겠죠.
April 16th, 2007 at 7: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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