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참 특이한 동물입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는 98.8%가 같죠. 즉,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1.2%정도만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1.2%가 오늘날의 문명과 정글 속의 삶을 나누었다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절묘한 2% 부족이죠).

mother and baby
이 2%부족은 어디에서 올까요? 바로 이성입니다. 이성의 축복 덕분에, 지구의 모든 생물을 부리고 살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이성이 저질러 놓은 모든 것들로부터 고통을 겪습니다.
물론 환경 파괴나, 살인, 전쟁.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이 지닌 이성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이성의 부단한 노력때문입니다.
인간은 본연의 자신과,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려는 자아로 나뉩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인간과 소크라테스 자신을 바라보는 소크라테스가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죠. 즉,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들은 정신병과 정상이라는 미묘한 경계선 상에서 일종의 자아분열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a girl at the mirror
여기 철수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은, 철수(Co)라는 인간입니다. 즉, 철수라는 한 사람을 (객관성을 가장한 주관이기는 하지만)객관화해서 바라보려는 철수(Ci)는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타인과 Co 사이에 Ci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Ci는 Co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Co가 쿨하게 비치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이 Co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두고 노심초사합니다. 사실, Ci도 육체라는 한계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타인이 Co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객관화라는 명목 아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그리고 Co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Co! 넌 조금 더 노력해야 해. 부모님이 너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는지 알아.
Co! 네가 운동을 좀 더 잘 해봐!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더 좋아할거야.
Co! 너가 돈을 잘 벌어봐! 멋진 여자들이 줄을 설텐데… 아깝다.
Co! 그것 밖에 안되니? 난 내가 한심하다.
플러그를 뽑아 버릴 수도, 볼륨을 줄일 수도 없는 확성기 방송처럼… Ci는 끊임없이 Co를 괴롭힙니다. 물론 Ci의 노력 덕분에, 개인은 자아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fight club: me and me
타인과 타인의 대화에서는, 절대적인 과학을 추구하지 않는 이상, 주관적인 삶이라는 관점에서 누구나 옳습니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남자나 그 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저마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다분히 주관적인) 객관성이라는 잣대 아래 평가하고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이라는 형식미를 갖추었지만, 이러한 객관성은 ‘난 당신이 맘에 들지 않아’라는 주관적인 독설일 뿐입니다.
타인과 타인의 분쟁처럼… 개인의 불행은 Ci는 Co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Ci도 행복해지기 위해, Co를 괴롭힌 셈이지만. 자학적인 비판만을 Co에게 늘어놓은 셈이죠.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Ci가 Co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인데 있습니다. 떠벌리기 좋아하는 Ci는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항상 듣기만 했던 Co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합니다.
고로.
사람과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이듯이.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나와 또다른 내가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she and he, we la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