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 내재화와 종심(從心). 2부

프로세스 내재화와 종심(從心)에 이어서 

슬램덩크

슬램덩크는 전국의 까까머리 중고등학생을 농구팬으로 만들어 놓은 만화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에 슬램덩크를 읽어본 학생들치고, 농구장에서 공 한번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백호가 농구부에 들어간 것은, 짝사랑의 대상(소연)이 농구를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소연이의 관심을 받기 위해 농구부에 들어갔지만, 서태웅이란 연적을 이기려는 마음이, 지기 싫은 성격이, 그리고 농구에 대한 열정이 풋내기 강백호를 진정한 바스켓맨으로 바꾸어 놓는다.

초보 강백호에게 ‘농구=슬램덩크’였으니, 풋내기에게나 어울리는 드리블, 리바운드, 점프슛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굴욕을 맛본 후, 드리블, 리바운드 등의 농구 잡기술(?)이 빛나는 덩크슛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강백호는 기초기술을 하나씩 섭렵하게 된다.

But

자타공인하는 타고난 운동신경을 갖춘 강백호에게도 가장 익히기 어려운 기술이 있었다. 바로 점프슛이다.

안선생님

북산이 승리하기 위해서 강백호가 전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간파한 안선생님은, 강백호에게 점프슛을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했다. 안선생님은 점프슛을 백호에게 처음으로 알려주면서

백호군, 슛은 오른손으로, 왼손은 거들기만 하죠.

라고 말했다.* 단세포 동물인 강백호는 이 말의 핵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름방학 내내, 하루에 수천번이 넘는 점프슛을 연습하면서, 안선생님의 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최대 난전이었던 산왕전에서, 심각한 부상까지 입은 강백호는 이렇게 말한다.

왼손은 거들 뿐

단순 무식했던 풋내기가 점프슛의 정수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슬램덩크의 최고의 명대사를 남기고, 강백호는 서태웅의 패스를 받아 점프슛을 성공시키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데 도움주는 수 많은 방법론과 모델이 존재한다. 이런 방법론과 모델은, 대개 뛰어난 성과를 내놓은 조직들이 어떻게 일을 했고, 어떤 식으로 산출물을 만들었는지를 분석해서 정리해 놓은 것들이다.

즉, 소위 잘 나가는 방법론들은 선험적인 이론이라기보다 후행적인 경험론이다.

이런 경험론의 가장 큰 약점은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조직에 속한 사람들을 아무리 인터뷰하고 그들의 작업 방법을 관찰한다고 해서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강백호의 마지막 점프슛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안선생님의 “왼손은 거들기만 하죠.”라는 형식지였다. 이런 형식지는 풋내기 강백호에게 늙은 구닥다리 영감의 잔소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지가 없었다면, 강백호는 산왕전을 끝내는 마지막 슛을 쏟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형식지가 강백호의 몸에 스며들기 위해서, 연습과 실패를 엄청나게 경험해야 했다. 즉, 형식지가 개인이나 조직에게 내재화되기 위해서, 경험을 통해서 암묵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프로세스론자들의 함정이 존재한다.

아무리 훌륭한 프로세스와 방법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공허한 믿음일 뿐이다. 즉, 경전에 담긴 참뜻을 실천하지 않고, 경전만을 맹신하는 교조주의(dogmatism)자들이 저지르는 실수인 셈이다.

***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일흔을 넘으니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

논어

현실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악법이라도 필요하다라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트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독배를 마셨다.#지상낙원은 아니더라도 지상에 지옥이 펼쳐지는 것을 막기위해 필요한 것이 법이듯.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에서, 프로세스는 어느정도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악법(?)인 셈이다. 

개인의 성찰과 깨달음 없이 법만으로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없듯이. 위대한 성과를 내어놓기 위해서, 일련의 말씀인 프로세스가 조직원 하나하나에 내재화되어야 한다. 즉,인생에서 종심은 인생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종심은 진짜로 멋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출발점인 셈이다.

* 슬램덩크 원본이 없어 대사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뉘앙스는 비슷할 것이다.

** 지식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지(tacit knowledge)와 말로 나타낼 수 있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나뉜다.

# 몰상식의 상식화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구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더군요. 인사이트에서 알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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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2 Responses to “프로세스 내재화와 종심(從心). 2부”

  1. 세레(구:legendre) Says:

    지혜가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Hani Says:

    세레님.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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