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그리고 아쉬움
에스프레소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를 말한다… 에스프레소(Espresso)의 영어식 표기인 ‘익스프레스(express)’는 ‘빠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 에스프레소 전용 기계로 커피를 추출한다. 이 기계는 1906년에 발명되었는데, 압력은 9기압(bar) 정도이며 20초 안에 30㎖의 커피를 뽑아낸다.
from 네이버 백과사전
지인 가운데 한 명은, 에스프레소를 20초의 미학이라고 불렀다. 잘 갈아놓은 원두커피에서 영혼을 울리는 에스프레소 한잔이 나오는데 20초가 걸린다는 의미였다.
음식에 미학이라는 표현이 과한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른 아침에 환상지대를 넘나드는 그의 영혼을 현실 세계로 불러들이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남다른 그의 에스프레소 사랑이 한편으로 수긍이 갔다.

영혼을 깨우는 에스프레소 한잔(http://www.francisfrancis.com/)
난 지인처럼 에스프레소 사랑이 지극하지도 않고, 하루에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지 못하면 금단현상이 일어나 손이 떨리지도 않는다. 다만, 번역이 막히거나 그냥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 에스프레소에 거품을 낸 뜨거운 우유를 섞은 카푸치노 한잔이 그립다.
먼 거리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갈 정도로 커피사랑이 넘치지도는 않지만, 그렇다고 얼마 안 되는 식욕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 생각나는 카푸치노 때문에, 수백 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집에다 모셔둘 수도 없다.
검색을 해보니, 나처럼 에스프레소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모카포트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증기압이 생명이다. 당연히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에는 여러가지 기능이 있겠지만, 9기압에 달하는 증기압을 쏴줘야지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만원 이하의 에스프레소 머신들은 증기압이 약하기 때문에 제 맛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없다.

비알레띠사의 브리카(http://www.bialetti.com)
그런데 비알레띠(Bialetti)로 대표되는 모카포트는, 몇 만원 대의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4기압 정도의 증기를 쏴준다. 즉, 저렴한 가격이지만 커피전문점에서 내놓는 에스프레소에 근접한 맛을 낸다.
당분간, 이 모카포트가 불현듯 찾아오는 카푸치노 지름신을 막아줄 것이다.
사용방법은 다음 사진처럼 무척 간단하다. 즉, 위아래로 분리된 모카포트 사이에 원두커피를 넣은 다음 모카포트를 돌려서 닫고 불위에 올려두면, 그윽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만들어진다.


source from http://www.caffemuseo.co.kr
이 모카포트는 사용방법이 매우 간단해서, 사용자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멋진 모카포트에도 사용성(Usability) 구멍이 있었다.
처음으로 모카포트에 원두커피를 담아서, 가스렌지 불위에 올려두었을 때 일이다. 시간이 지나자 물끓는 소리가 더욱 더 크게 들렸다. 어릴적 뻥튀기 아저씨의 ‘뻥’소리처럼, ‘푸욱~’하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질 기대에 마음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
피익~
설명서와는 달리 ‘피익~’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상단과 하단의 모카포트를 결합시키는 부분에서 검은색 커피물이 가스렌지 주위에 튀었다. 황급히 가스렌지의 불을 껐지만, 심술맞은 어린애처럼 모카포트는 불꺼진 가스렌지 위에서 여전히 침을 뱉고 있었다.
모카포트의 상단과 하단을 꽉 조이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첫 번째 실수를 거울삼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온힘을 주어 모카포트를 돌려 불위에 올렸다. 물끓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첫 번째 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흥분이 밀려왔다.
푸욱~
모카포트의 밸브 사이로 들리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황금빛 에스프레소가 포트 위로 올라왔다. 에스프레소를 재빨리 잔에 붓고 미리 거품을 낸 뜨거운 우유를 섞었다. 실패를 극복한 뒤여서 그런지, 카푸치노는 더욱 달콤했다. 향긋한 카푸치노를 한모금 마시면서, 조금 전에 겪은 실패를 떠올렸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모카포트를 꽉 잠그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느낀 점은 모카포트를 꽉 잠그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4기압의 증기압을 만들 정도로 모카포트를 꽉 잠그는 일은 성인남자에게도 쉽지 않은데, 힘이 약한 사용자라면 어떨까?
모카포트를 사용할 때마다, 가스렌지를 대청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용자들은 검은 커피물을 지워내면서 이렇게 멋진 모카포트를 불량품이라고 생각할테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반대로 모카포트를 충분히 잠글 수 있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까지 이 모카포트를 조여야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오랜시간 동안 모카포트를 사용하면, 경험치가 올라가 원두커피가 없어도 에스프레소를 만들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모카포트를 사용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나처럼 쓰디쓴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모카포트에는, 사용자의 완력과는 상관없이 잠그는 행위가 완료되었다고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다. 즉, 핸드폰과 충전기를 연결할 때 들리는 ‘달깍’ 소리나, 지퍼가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하듯이…포트를 잠근다는 행위 결과를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만약, 다음 사진처럼 모카포트가 완전히 닫혔을 때 상단과 하단이 만나야 하는 지점을 표시 정도만 해두었더라도. 이 모카포트는 사용자에게 훌륭한 피드백을 주었을 것이다.

피드백이 개선된 모카포트
힘이 약한 사용자라면, 이 선을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여 무모하게 가스렌지 위에 4기압짜리 폭탄을 올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힘이 무척 센 사람이라면, 과도하게 모카포트를 잠궈서 나중에 청소할 때 모카포트를 열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점만 빼고 본다면, 이 모카포트는 훌륭하다.
물론 모카포트가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 가운데 사용성을 조금만 더 고려했다면, 명품의 반열에 올랐을 것들이 많기에 이렇게 긴 글을 할애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를 울리는 사용성은 어디서 나올까?
다음 포스트를 기약하며…
November 7th, 2007 at 2:19 pm
암장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서 운동 후 한잔 마시는데 회사에서 커피메이커로 내린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사장님한테 졸라서 에스프레소머신 사달라고 졸라볼까나~ ^)^
November 7th, 2007 at 6:11 pm
장림님.
에스프레소를 즐기신다면, 사장님께 건의해 보세요.
제대로 된 맛을 즐기시려면 사장님께서 큰 마음
먹으셔야겠네요.
November 10th, 2007 at 7:38 pm
wow. good point. 생활의 발견. 철학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November 12th, 2007 at 8:44 pm
EricLim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