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리팩터링1*

시스템은 현재 상황(condtions)이나 이전의 이력(history)을 반영하는 상태(states) 및 그 변화(transition)에 따라 다르게 동작할 수 있다.

위 문장을 이해하려면, 단기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야 한다. 위 문장을 쉽게 이해했다면, 이 포스트를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

*** 

이십 년 가깝게 정규교육을 받고, 지식노동으로 9년 동안 돈을 벌고 있으며 번역도 해봤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말에는 배울 게 무척이나 많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말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뜻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배움의 기쁨을 앞으로도 누릴 수 있다는 것.

번역을 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웠지만. 최근에 느끼는 것은, 영어가 명사 중심의 문장이라면 우리나라 말은 동사 중심의** 문장이라는 점이다. 즉, 문장을 맛깔나게 쓰기 위해서, 동사가 활어처럼 팔딱팔딱 튀어야 한다

영어에서는, 명사가 문장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명사를 꾸미는 방법이 다양하다.

… beautiful young lady with laptop computer and mp3…

beautiful, young이라는 형용사 두 개, with로 시작하는 부사구가 모두 lady를 꾸며주고 있다. 힘 약한 아가씨도 무거운 형용사와 부사구를 가뿐히 들어올릴 정도로, 영어의 명사는 힘이 쎄다. 물론 우리나라 말도 영어 예문처럼 명사를 꾸미는 형식으로 쓸 수 있지만. 성질 급한 사람이 이런 문장을 읽는다면, 아가씨가 나오기 전에 숨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컴퓨터와 mp3를 들고 있는 아름답고 젊은 아가씨…

물론 영문장에 많이 익숙해져서, 위의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명사를 꾸미는 말이 많은 문장은, 왠지 번역투의 문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한다.

위의 문장도 그렇게 이상한 문장은 아니지만. 동사 중심의 문장으로 고쳐쓴다면, 조금 더 쫄깃쫄깃할 것 같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어머니는 모두 자식을 사랑한다.

고치기 전에는 ‘모든’이 ‘어머니’를 꾸며주었지만, 고친 후에는 ‘어머니’에게 짐이 되던 관형사형용사가** 뒤로 가 ‘어머니’에게 힘을 보태주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에, 문장이 시원해졌다.

***

오늘의 포스트를 열었던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시스템은 현재 상황(condtions)이나 이전의 이력(history)을 반영하는 상태(states) 및 그 변화(transition)에 따라 다르게 동작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이 전형적인 번역투의 문장이다. 문장의 주체인 ‘시스템’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작하다’ 사이에 돌덩어리 같은 명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시스템’이 열심히 달리고 싶어도, 문장 중간에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위 문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시스템이 다양한 인자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즉, ‘영향을 받는다’는 말도 하고 싶고, ‘영향을 주는 인자’들이 무엇인지 한 문장에서 이야기하려다 보니, 문장이 체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말은 동사가 살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주체나 명사들이 문장에 많으면 동사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쓸데없는 돌덩어리는 치우는 게 좋다.

이런 논리로 문장을 고치면

시스템은 여러가지 요소 때문에 다르게 동작할 수 있다. 즉, 이런 요소로는, 현재 상황, 이력을 반영한 상태, 변화가 있다.

돌덩어리를 한 쪽으로 치웠기 때문에, ‘시스템이 다르게 동작한다’는 의미도 명확하게 전달하면서, 이런 인자로 무엇이 있는지도 눈에 금방 들어온다. 두 번째 문장 앞에 ‘즉’이라는 부사도 넣어 부연설명을 하는 문장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이 문장을 건너뛰는 선택권도 독자에게 준다.

내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포스트를 쓰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문장을 잘 쓰겠다는 공약이라 생각하고 용기내어 적어본다.

* :D

** 동사보다는 서술어가 더 적합합니다. 명사와 대구를 짓다보니 ‘동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mycogito님이 의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About the Author

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15 Responses to “문장 리팩터링1*”

  1. 프리버즈 Says: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한다. 어머니는 모두 자식을 사랑한다.” 이 문장은 영한 번역에 대한 책에서 정말 많이 등장하는거 같아요. ^^ (똑같진 않더라두요)

  2. 열이아빠 Says:

    자동으로 리팩토링이 가능하면 좋겠어요.
    요즘 간혹 읽는 소설을 유심히 보면
    문장의 호흡이 정말 짧구나 하고 느낄 수 있더군요.

  3. sosa0sa.com » 문장 리팩토링 Says:

    […] 오늘 구글 리더에서 본 문장 리팩토링 1 라는 글. […]

  4. 민재 Says:

    좋은 글이네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

  5. 세레 Says:

    문장에도 리팩터링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롭네요.

    “시스템이 다르게 동작할 수 있는 요소로는, 현재 상황, 이력을 반영한 상태, 변화가 있다.”
    (요소라는 중복을 빼 보았습니다;)

  6. 이지만 Says:

    언제나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면 어렴풋 느껴오던 부분을 명쾌하게 잘 설명해주셨네요.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7. 웅이 Says:

    좋은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2편도 있는 거죠? 고맙습니다.

  8. Hani Says:

    프리버즈님,
    맞습니다! 여러서적을 읽어 머리에서 안다고 하는데,
    손이 말을 안 듣습니다. ^^

    열이아빠님.
    그러게요. ide에 있는 리팩토링 기능처럼요. :)

    민재님.
    감사합니다. ^^

    세레님.
    의견 주신 것도 좋네요.
    제 문장과 세레님 문장의 차이는, 문장의 주체네요.
    즉, 시스템을 중요하게 볼 것이냐,
    요소를 중요하게 볼 것이냐죠. 정답은 없습니다.
    문맥 안에 답이 있겠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지만님.
    감사합니다.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

    웅이님.
    웅이님의 블로그를 둘러보니,
    내공이 무척 강하신듯, 이거 칭찬이
    부담되네요. :)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9. mycogito Says: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고민하는게 우리말 잘 쓰기인데도 그게 쉽게쉽게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읽고 말하는데 크게 문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글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도 문법에 약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말에 동사와 영어의 동사는 다른 것임을 조금 혼동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우리말은 동사 중심의 문장이다. 이 말은 동사/형용사 중심의 문장이다. 이말을 쓰시려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수식언 중심의 문장이다. 이정도?

    그리고 모든은 우리말에서는 관형사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부사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좋은 시도에 쓸데없는 말을 단 건 아닌가 싶어 죄송합니다.

  10. mycogito Says:

    시스템은 현재 상황이나 시스템의 상태나 변화를 기록한 이력에 따라 다르게 동작할 수 있다.

    도 어떨까 싶습니다. ‘동작할 수 있다’라는 말이 여전히 뒤에 있지만 많이 답답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원문이 답답해 보이는 이유는 번역을 그대로 하면서 ‘이력’이라는 단어를 뒤에서 수식하는 문장이 많아 맺고 끊음이 조금 혼란스러워 진 듯 합니다.

  11. mycogito Says:

    아마도 history that 어쩌구 하는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게 아닐까 싶네요…

  12. mycogito Says:

    원문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즉, 이런 요소로는, 현재 상황, 이력을 반영한 상태, 변화가 있다.” 라고 하면 요소가 쉼표에 의해 구분되는 상황, 상태, 변화라고 읽히지만 제가 볼 때는 현재의 상황과 이력이 중요한 의미이고 이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라는 말이 들어가는게 아닐까 싶네요.

  13. Hani Says:

    mycogito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영어의 명사에 대구로 적다보니, 무리하게 ‘동사’로만
    한정 지었습니다. 서술어 중심의 문장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모든’은 관형사가 맞습니다.

    제가 출처를 밝히지 않아 다소 혼란이 빚어졌는데,
    예제는 sw engineering 서적에서 가져왔습니다
    (번역서가 아닙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단행본 형식으로 발행한 책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하지 않아
    생긴 문제로 예상합니다.

    원글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비문이 넘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자에게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완성하는
    편집자분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14. 김제준 Says: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글 쓰면서 주의를 해야겠네요.
    일본 애니나 드라마 및 일본어 공부 때문에
    가끔 문장 쓰는 법이 일본어 형식을 따라가서
    깜짝 깜짝 놀란답니다.

    주의 해서 작성해야 겠어요.

  15. Hani Says:

    외국어 문법만큼 한국어 문법을
    착실히 배운 경험이 없어서,
    외국어 문법에 따라서 글을 쓰는 경우가
    왕왕 있는 듯합니다.

    저도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하거나, 번역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번역투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

Leave a Reply

가끔 스팸차단기에 의해 코멘트(트랙백)가 막히나, 하루에 한번씩 정상처리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