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뇌르 되기(새해 다짐)

2007년은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것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위기의 순간을 대처한 덕분인 듯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2007년 다짐이었던 ‘긍정의 힘’은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과 뒤에는 삶을 ‘속도전’으로 만들었던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책을 음미하기 보다는 소비했으며, 식사를 즐기기 보다는 허기를 채우기 바빴으며, 일을 즐기기 보다는 끝내는 데 비중을 더 두었습니다. 과연, 이런 ‘속도전’ 속에서 제가 삼키거나 소비한 것들은 제 것이 되었을까요?

나는 그제서야 프랑스 지식인들이 ‘플라뇌르(flaneur, 천천히 걷는 사람, 게으름뱅이)’를 찬미하는 이유를, 우리의 옛 선비들이 뒷짐을 지고 소요하기를 즐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0세기의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그 스스로가 플라뇌르를 즐겼던 창조적 인물인데, 그가 손꼽는 대표 플라뇌르가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 그는 집 밖을 어슬렁거리면서 배회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악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시사IN 제16호, 서명숙 편집위원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스프린터의 속도로 달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걸음마를 뗀 아가의 걸음으로 세상을 즐깁니다. 사람들의 속도 차이를 떠나, 세상의 것을 보고 즐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사색의 속도는 아마도 ‘플라뇌르’라는 프랑스 말처럼, 천천히 걷는 사람에게 어울릴 속도인 듯합니다.

2007년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문제점은, ‘속도전’의 논리에 파묻혀 제 페이스를 잃고, 사색의 시간도 놓쳤다는 데 있습니다. 2007년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플라뇌르 되기’인 듯합니다.

2009년까지 360개 정도의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길입니다. 그 길을 빨리 달려 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플라뇌르의 걸음으로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음미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겸재 정선(1676~1759)의 ‘어초문답’



About the Author

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3 Responses to “플라뇌르 되기(새해 다짐)”

  1. Max Says:

    음미한다는것은 즐긴다는 것이겠죠?
    올해는 인생을 즐길수 있는 모습이 기대되네요.

    지난한해 좋은글 참 많이 읽었고,
    새해에도 재미있는(좋은)글 기대 할께요~ ^^*

  2. 김윤래 Says:

    작년 한해 동안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희야말로 속도에 너무 몰입했던 한해였던 것 같네요.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리고요.
    늘 즐겁고 행복한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Hani Says:

    Max님
    네, 좋은 글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팀장님.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올해, 위키북스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Leave a Reply

가끔 스팸차단기에 의해 코멘트(트랙백)가 막히나, 하루에 한번씩 정상처리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