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현장에서 개선

화장실 속 개선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화장실을 쓰면서, 세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샤워를 할 때마다 바닥, 거울, 변기 등 사방에 물이 튑니다. 뭐 샤워를 했다는 티를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샤워를 하고 그냥 나오면, 제 뒤에 화장실을 쓰는 가족은 기분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튄 물 때문에 기분마저 눅눅해지기 때문이죠.

두 번째, 칫솔과 면도기를 투명 플라스틱 컵에 보관합니다. 문제는 이 컵에 물이 빠지는 구멍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물이 묻은 칫솔과 면도기를 컵에 방치해두면, 물때가 끼고 냄새가 나죠.

마지막 문제는 면도크림이 담긴 캔을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쓰다보니, 캔의 바닥과 세면대가 접하는 곳에 녹이 생깁니다.

대수롭지 않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몸이 고생해야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샤워를 하고 물이 튀는 것은, 샤워를 끝낸 다음 화장실 곳곳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제거하면 되고. 물때가 끼고 냄새가 나는 문제는, 며칠에 한번 씩 컵을 깨끗이 씼으면 되겠죠. 세면대에 녹이 끼는 문제는, 녹이 묻을 때마다 철수세미로 제거하면 됩니다.

세면대 위에 묻은 녹을 닦아내다, 불현듯 언덕 꼭대기로 영원히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가 떠올랐습니다. 시시포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며 죄를 쌓은 것도 아닌데…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기 위해,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이 무의미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자행되는 무의미한 노동을 지양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궁리했습니다.

샤워 후 물기를 닦아내지 않으려면, 물이 안 튀게 하면 됩니다. 샤워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러면 다른 문제가 생기겠죠. :)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샤워커텐을 다는 것입니다. 간단하죠.

물 때가 끼는 것은, 컵 안에 물이 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플라스틱 컵 바닥에 구멍 몇 개를 뚫어, 물이 고이지 않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면대에 녹이 묻는 것은, 철제로 만든 캔과 세면대가 직접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면대와 캔이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플라스틱 받침대를 깔고 캔을 올려두었습니다.

화장실 속 개선

샤워커텐을 달고, 받침대를 구하고, 컵에 구멍을 뚫는 노동력과 자본을 투자했지만. 이런 작은 투자 덕분에, 무의미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개선안이 대단한 것은 아니죠.

정신 없는 컴퓨터 케이블

어느 집이나, 컴퓨터가 놓인 책상 뒤를 보면 아비규환을 방불케하는 케이블 지옥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론 저희 집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면 인생이 편하지만. 가끔 전원 케이블을 멀티탭에서 뽑거나, 대청소를 하다보면, 여기저기 얽힌 케이블 때문에 쓸데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케이블

이 정도면 양호한 편, 내 책상 밑 케이블

케이블을 깨끗이 정리할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했습니다. Van Mardian이라는 분이 사용한 방법인데, 컴퓨터 책상 아랫면을 활용한 비법입니다. 컴퓨터 책상 아랫면은 보통 죽은 공간입니다. 즉, 서랍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 없는 공간이죠. 책상 아랫면에 벽에 물건을 걸 때 사용하는 pegboard를 붙이고, 철사와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서 모뎀, 공유기, 아답터, 전선 등을 묶어 정리합니다(아래 그림을 참조하세요).

케이블 정리1

Van Mardian씨의 깔끔한 책상, image from http://decluttered.com/

케이블 정리2

책상 뒷면, 여기에 pegboard를 붙여 케이블을 정리했다. 멋지다! image from http://decluttered.com/

이렇게 정리하는 데, Marian씨는 약 33달러, 노동력 조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개발현장

저희 집 화장실에 만연했던 문제점이나 정신 없는 케이블은 무의미한 노동력이나 부단한 인내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즉,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했죠.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진정한 문제 해결은, 고장(failure)을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을 일으키는 결함(defect)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에러가 발생하면, 디버깅을 해서 결함을 찾고 제거합니다. 개발자는 능력이 되는 한, 자신이 문제를 발견하는 한 어떻게든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문제해결 의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법을 개선하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즉, 파일 서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스파일 충돌문제는, 버전관리도구라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만, 개발자의 인내력과 고도의 삽질로 해결합니다. 개발 환경과 실전 환경이 다른 데서 오는, 출시 이후 땜질 개발은, 개발 환경과 실전 환경을 맞추면 해결이 되지만, 이 역시 개발자의 인내심과 출시 후 야근으로 해결합니다.

이런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발한 개선안이 아닌 듯합니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불편함을 진짜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개선하려는 의지입니다. 이런 의지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드는 원동력이겠죠.

여러분의 개발현장은 어떤가요?

Be Agile! :)



About the Author

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6 Responses to “개발현장에서 개선”

  1. 제임스 Says: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네요 ^^
    hani님은 아주 깔끔하신 성격이신가 봅니다.
    저희 하루는 ‘이정도면 됐어~’ 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완성에 가까운 동그라미를 그리려는
    노력으로 차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지만, 또한 참 어렵답니다. ^^

  2. Hani Says:

    제임스님,
    글에 노출된 부분이 깔끔해 보이는 거겠죠. :)

  3. hs Says:

    신혼 재미가 보이는데?
    함 봐야지? 승준이가 전화했더라…

  4. Hani Says:

    내가 연락하마.

  5. daein Says:

    trac 관련 글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글을 많이 쓰셔서 자주 들르게 되네요 아이디어들이 좋네요.

  6. Hani Says:

    daein님
    감사합니다. 자주 방문해 주세요. :)

Leave a Reply

가끔 스팸차단기에 의해 코멘트(트랙백)가 막히나, 하루에 한번씩 정상처리 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