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중독된 나라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 하거나 영어를 못한다.
앞선 문장은 배중률에 의해 항상 참입니다. 위 문장은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한다’라는 명제와 이 명제의 부정인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못한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명제가 참이면 부정인 명제가 거짓이 되고, 부정인 명제가 참이면 원래 명제가 거짓이 되죠. 즉, 예문은 항상 참이 되는 항진명제가 됩니다.
머리 아픈(?) 논리학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예를 더 살펴보죠.
너는 공산당이거나 아니다.
인간은 백인이거나 백인이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자이거나 아니다.
예전 포스트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지만, 항진명제 속에는 화자의 이데올리가 스며들기 때문에 항진명제를 들을 때는 화자의 의도에 주의해야 합니다. 즉, 항진명제는 논리적으로 맞지만, 화자의 생각을 듣는 이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처음에 예를 든 명제를 말한 화자의 관점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으며, 위의 세가지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을 색출하려는 공안당국의 이데올로기가, ‘백인’이 모든 인종에 우선한다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가,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한 편견이 항진명제의 모습으로 청자를 강요합니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영어로 사업을 하고, 영어로 외국 지인들과 교류를 합니다. 영어에 많이 노출된 사람의 관점에서, (어쩌면 모국어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언어보다 영어가 우월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영어가 중요하다는 색안경 프레임으로, R발음과 F발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을 보면 안쓰럽기에, 온 국민이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추도록 커리큘럼을 데일리 잉글리시로 꾸며, 국민의 영어를 향상시키려는 노블리스 오브제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관점에서, 영어를 잘 하면 좋죠. 실용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잉글리시를 사용하는 비지니스맨과 트레이드를 할 때도 무척이나 도움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 하거나 영어를 못한다’라는 항진명제가 우리사회의 아젠다가 되고, 전국민을 영어교육의 광풍에 휩싸이게 하기 전. 우리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즉,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다섯번만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민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원이 투여되야 하는 일종의 사업입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사업에, ROI가 얼마나 될지 궁리하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항진명제’ 아래 무모한 투자를 감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잠을 쪼개가며, 무한반복 오토리버스 기능으로, 전철에서, 버스에서, 화장실에서, 회사에서 연습한 회화 실력을, 여름 한철 동남아시아 휴양지에서 체크인할 때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뻘쭘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뻘쭘함도,한국말 잘하는 현지인 덕분에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image from http://www.somers.k12.ct.us/

January 28th, 2008 at 9:52 am
하하하
글과 그림의 조화가 절묘합니다. ^^
January 28th, 2008 at 4:09 pm
아- 적극 공감합니다.
저도 영어 자료 찾을 일이 빈번한 편이고 프로그램쪽은 조금만 신기술이면 한글문서보단 당연하다시피 영어문서가 먼저라서 공부의 필요성도 있고 개인적으로 영어를 조금 좋아하기 때문에 공부하긴합니다만 모든 국민이 다 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January 28th, 2008 at 7:30 pm
Max님,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January 28th, 2008 at 7:35 pm
mycogito님.
저도 영어에 제가 가진 자원을 많이 투자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지 않는다면
제 업무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습니다.
즉, 막연히 먼 미래 유용하리라는 바램으로 영어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의사 결정인 듯합니다.
물론 취미나, 개인적인 관심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논외고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