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비만 사회 속에서 독서왜소증
잉여가 넘치지 않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살려고 밥을 먹었습니다. 좋은 음식의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즉, 배고픔을 채워줄, 몸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할, 또다른 한끼를 얻기 위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음식이라면 그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잉여가 넘쳐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즉, 모자름보다는 넘침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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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침보다 모자름이 주류였던 시기엔,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악이었습니다. 음식의 남김과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모자름이 넘치던 사회에서 먹거리를 보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모자름의 사회에서 넘침의 사회로 전환하는 변곡점 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음식을 남길 때마다 밥상머리에 앉아 계신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음식 남기지 마라. 벌 받는다!
잉여의 시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기울어짐이 심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비만에 대한 공포증으로 먹었던 것을 게워내는 사람들. 한끼 식사를 다른 사람의 온정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 주말마다 벌어지는 종교행사처럼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냉장고에서 비워내고, 또다른 일주일치 먹거리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향하는 사람들.
의미를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버린 율법처럼, 음식남김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지만. 현대인들은 한끼 식사를 끝내고 밥상 위에 남겨진 잔반 찌꺼기를 보고, 아버지의 불호령을 기억해 내지 않습니다. 소아비만을 걱정하고. 칼로리를 계산해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해야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완소남, 완소녀가 되는……
바야흐로 우리는 고도비만의 사회속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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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풋과 아웃풋 조절에 실패해서, 저도 뱃속에 약간의 잉여자본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내장지방이나 게으름의 상징이라고 말로 비난하기도(?) 하지만. 저는 당당히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식량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괴변은 게으름이나 넘침에 대한 변명거리이지만. 확실히 음식을 남기거나 몸에 잉여를 축적하는 데 예전보다 관대해졌습니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관대함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맛있는 밥이라도 잔반을 남기기 마련이며. 누군가는 맛있다고 한 반찬이 내 입에 맞지 않는다면 젓가락 한 번 가지 않습니다. 맛있겠다고 시킨 음식이 황이어서 몇숱가락 뜨고 만다고 해도 맛없는 음식을 탓하지 까다로운 내 입맛을 탓하지 않습니다.
잉여의 시대이자, 고도비만의 사회입니다. 음식에 대해서 관대해 지듯이, 우리는 책소비에 대해서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읽던 책도 흥미가 없으면 과감히 덮어버리고. 유명한 책이라 해도 읽다 내입맛에 맞지 않으면 내평겨칠 수도 있으며. 지식쓰나미에 휩쓸려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를 대비해,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듯이 서재에 언제가 읽을 잉여서적들 비축하는 것은 어떨까요?
영희도 타락했고 철수도 타락했으니 우리 모두 타락하자는 괴변처럼 들리지만. 잉여의 시대 속에서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잉여는 철저히 금욕적인 현실을 보면 뭔가 아쉽습니다.

* 온갖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현대사회라지만, 첨단장비로 무장한 소방대원들 앞에서 전소해버리는 문화재를 생각해본다면, 여러분 누군가도 무인도에 표류하는 영화속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같습니다.
** 다른 형식의 자본논리 때문에 이것들을 죄악시하는 메카니즘이 새롭게 탄생했지만, 이것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February 16th, 2008 at 9:44 pm
저도 그러고보니까 책을 한번 읽으면 꼭 다 읽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긴 한 것 같아요.^^ 왠지 읽던 책을 덮어버리기 시작하면 어려운 책을 다 못읽고 덮어버리는게 습관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요.. 하하.^^
February 16th, 2008 at 10:08 pm
Paromix님.
저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이지만,
삼키기 어렵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짐을 해야 하는
책을 읽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먹으면
몸에 좋지만 맛이 없는 음식을 생각하면서 꼭꼭
씹어 먹습니다.
심각하지 않게, 음식 대하듯이 책도 대했으면 합니다.
February 18th, 2008 at 2:42 pm
저도 그런 강박관념이 좀 있어서 벌써 6개월 정도 잡고 있는 책도 있습니다 ^^ 정리할 것은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도 제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February 18th, 2008 at 3:08 pm
mycogito님
저도 그런 책이 있죠.
가끔 거꾸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거꾸로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다시 앞에서 읽고
몇번 반복하면 다 읽기도 합니다.
February 19th, 2008 at 2:08 pm
저도 책은 끝까지 읽어봐야 된다라는 생각에 잡혀 있어서, 하나의 책을 보고 있는 중이라면 그 사이에 다른 책 읽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두 권을 동시에 읽다가 둘 다 끝까지 못 읽을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죠. 읽던 책도 흥미가 없다면 과감히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겠네요.
February 19th, 2008 at 7:51 pm
세레님.
지금 읽는 책이 너무 어려울 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