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이란, 치우침이다! : 사이코패스와 로봇
‘몬스터’, ‘20세기 소년’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린 ‘플루토’를 일독했습니다. 오랜만에 구입한 만화책인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하 플루토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플루토는 테즈카 오사무의 ‘아톰’을 ‘우라사와 나오키의 세계관’ 속에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현재 5권까지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완결되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겠죠. 5권까지 읽으면서, 감동의 연속이었지만. 그 가운데 ‘Act 38. 육십 억의 혼돈’은 최고였습니다!
Act 38에서, 아톰을 만든 텐마 박사는 한 의뢰인의 부탁으로 완벽한 로봇을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텐마 박사는, 단순한 인공지능으로 로봇을 만들어서, 기존의 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박사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세계 인구 육십 억과 같은 숫자의 인격을 분석해 프로그래밍’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렇게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노력가, 공부벌레, 겁쟁이, 천재, 살인마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로봇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눈을 뜨지 않았어. 아니… 스스로 눈뜨기 거부했다고 해야 옳을까. 육십 억의 인격을 시뮬레이션하려면 무한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너무 복잡했던 게지…… 하지만 난 눈을 뜨게 할 방법을 알고 있었네. 육십 억의 혼돈을 하나의 방향으로 통솔하면 그만이지
어떻게…?
균형을 무너뜨리는 게야. 증오… 슬픔… 분노… 치우친 감정을 주입함으로써.
치우친 감정?
그래 치우침이야말로 혼돈을 간단하게 해결하는 프로그램이지.
플루토 5권 중에서
도대체 왜? 텐마 박사는 ‘완벽한 로봇’이 갖추어야 할 게, 비이성적인 ‘치우친 감정’이라고 했을까요?
보통 사람이 어떤 문제를 고민할 때는 상황에 따라 몇 가지의 선택 가능한 영역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 영역들 중에서 이차적 감정에 입각해서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분류한다. 싫은 것은 결정에서 배제하고 좋은 것들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이런 식으로 그 수를 좁혀나가 결국 최종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쥐가 치즈를 찾을까? 타가다 아키가즈, 시학사
‘합리적인 판단’이란, 무엇일까요? 객관적인 증거를 이용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입니다. 문장이야 이렇게 쉽게 읽히지만, ‘합리적인 판단’이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충분히 자면 몸에 좋다고 다들 알지만. TV앞 소파, 기름기 흐르는 패스트 푸드, 밤늦은 시간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란, 약에 쓰려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에서 든, 예문처럼.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감정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아이스크림이 진열된 베스킨31에서, 우리는 서슴없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행위입니까! 31가지의 선택지 가운데, 우리는 1초만에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죠. 그것도 ‘주어진 재화로 효용을 극대화’하라는 경제학원론 시간에 배운 법칙에 따라서 말이죠.
그런데
‘효용을 극대화하는 게 뭘까요?’ 바로 자신의 욕망을 최고로 만족시키라는 의미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이야기하면서, 그 핵심에는 ‘비이성, 감정’이 살아 숨쉽니다.
***
최근에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사이코패스에게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슬픈 얼굴, 좋아하는 얼굴, 괴로워하는 얼굴을 구분짓지 못하는 것이죠.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기준으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즉, 타인의 호불호는 안중에도 없기에, 자신의 욕망만을 채울 수 있습니다. 개별 객체라면 문제가 없지만, 사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로서, 개인의 최고선이 사회의 최고선이 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회가 되려면, 우리에겐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이런 순기능이 고장난 ‘욕망이라는 이름의 폭주기관차’이기에 위험합니다.
***
순수한 이성만으로 항상 족하지는 않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위험이 있어서 성공에 따르는 감정적 이득과 해가 될 가능성을 균형 맞추어야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어떻게 결정하게 될까? 이러한 상황이 바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며, 감정 체계에 신경학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말을 더듬는 이유기도 하다.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데이브는 동료 우주비행사의 죽음을 돌이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위험을 무릎쓴다. 논리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지만, 기나긴 인간의 역사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모셔날 디자인, 도널드 노먼, 학지사
사용성의 대가인, 도널드 노먼은 ‘최고의 사용성’을 갖춘 기계, 혹은 로봇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서 ‘감정’을 강조합니다. 즉, 불충분한 정보 아래에서 로봇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감정, 즉 치우친 감정, 비이성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 많은 SF소설, 영화에서 다룬 로봇이 궁극적으로 진화했을 때. 그 로봇은 인간이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먼 길을 우리는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당장 아톰이 날아다니고, 터미네이터가 느닺없이 나타나 ‘언제가 가방이 될 거’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한 편에서 감정CPU가 고장난 싸이코패스가 설치고. 한 쪽에서 인간을 닮은, 완벽한 로봇을 만들겠다고 하고. 정신없이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치우친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세상’이라 믿습니다! 네! 믿습니다.

April 14th, 2008 at 11:57 am
멋진 글이군요. 만화책도 꼭 사봐야겠어요
April 14th, 2008 at 6:41 pm
epiphany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