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진짜! 진짜! 좋은 디자인이란? 7부

 

방관자 입장이 아닌, 사용자 입장에서 생활가전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사용 편의성보다 개선점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요즘 생활가전 시장에서 ‘비움’과 ‘루펜’으로 대표되는 음식물처리기의 인기가 높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저희 집에서도, 어떤 음식물처리기를 구매할까 고민하다가. 가격 대비 성능이 저렴하다고 소문이(?) 난 ‘루펜’을 구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며칠 동안 물기가 흐르는 잔반을 보관했다가, 처리해야 하는 고역은 사라졌지만. 괜찮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이 음식물처리기에도 세 가지 정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선, 소음이 큽니다. 백색 가전제품 가운데서, 소음이 크다는 냉장고보다 확실히 소음이 더 납니다. 한밤중에 음식물처리기를 돌려놓으면 다용도실에서 나는 루펜의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덕분에, 적막하지 않으니 좋다고 해야 할까요?

하수구로 냄새를 빼내는 비움과 달리, 루펜은 필터를 달아서 공기를 외부로 빼내는 방식입니다. 필터가 있기에 냄새는 잘 나지 않지만, 코가 민감하신 분들은 이 냄새도 거북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소음과 냄새 문제는 사용자에 따라 달라지는 감성품질이기에, 이것 때문에 루펜이 좋냐 나쁘냐를 판가름하기 어렵지만. 이 두 가지 취약점 때문에, 루펜이 명품 반열에 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음식물처리기 시장을 석권하겠죠.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만입니다. 건조가 끝난 음식물찌꺼기를 꺼낼 때, 건조된 음식물찌꺼기가 건조통에 붙어서 잘 떼어지지 않습니다. 떼어내지 못한 찌꺼기들은, 새롭게 넣은 음식물찌꺼기 밑에 깔려 음식물 퇴적층을 형성하기 때문에. 다음번에 찌꺼기를 처리할 때 편리하지만. 음식물찌꺼기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제품 컨셉을 놓고 볼 때, 분명 개선점입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건조통에 후라이펜에 음식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코팅처리’를 한다면 어떨까요? 코팅처리된 후라이펜은, 음식물이 탄소덩어리가 될 정도로 타버려도, 음식물이 붙지 않는 것을 본다면… 건조통에 눌러붙는 음식물찌꺼기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죠.

이런 문제점을 루펜 제조사에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사용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만드는 사람이 느끼는 문제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

관점이라는 게, 큰 차이를 만듭니다.

프로그래머와 테스터를 살펴보죠. 프로그래머가 TDD를 하고, 테스터가 프로그램을 돌려보기 전에 아무리 테스트를 하더라도. 테스터가 잡아내는 버그에 비하면 프로그래머가 찾아내는 버그는 세발의 피죠. 이런 이유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프로그래머는 잘 되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테스터는 프로그램이 뻗도록 프로그램을 돌려보죠.

물건 만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디자이너와 사용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시장에는 수 많은 사용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제품이 넘쳐납니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 만든 제품은, 써본 사용자들이 감동의 눈물을 흐르면서, 시간을 쪼개 자신의 블로그에 디자이너조차 낯간지러울 정도의 리뷰를 올립니다.

그러기에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간극처럼 떨어져 있는, 사용자와 디자이너의 틈을 메우려면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용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방용품은 기계공학의 산물이기에 남자*들이 만들지만. 빅히트 상품을 만드려면 베테랑 주부#를 고용해서 만들게 하거나. 사장님께서 주부들이 무슨 제품 설계를 하냐고 반문한다면, 주부들을 모아놓고 포커스 그룹처럼 쓸데없는 짓을 하기보다, 차라리 가정에 방문해서 주부들이 어떻게 가정용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포커스 그룹이나, 시장 조사에서, 물건을 실제로 구매할 개인은 사라지고 존재하지도 않는 통계라는 유령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령을 두고 만든 제품이, 과연 진짜 사용자를 행복하게 만들까요?

이런 간극을 줄이고 싶은 개발자 혹은 디자이너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도움이 될만한 책 몇권을 소개드리면, 긴 주말 포스트를 마무리합니다.

우선, 사용성 대가인 도널드 노먼 교수의 디자인과 인간심리, 이모셔널 디자인을 꼭 읽어 보세요. 수 많은 이노베이션을 창조한 IDEO社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유쾌한 이노베이션, 그리고 개발자 관점에서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곤란을 겪게 되는 과정을 다룬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디자인,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 같이 만든 거야도 일독하시길 추천합니다.

* 현상이 그렇다는 겁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공학적인 능력면에서 우월한다는 뜻이 아니죠.

# 가까운 미래에 주부는 성(性)을 뛰어넘는 직업으로 변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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