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 육체의 한계를 넘어
운동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는 있다. 바로 농구다. 농구는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일한(?) 운동이며, 스포츠의 재미, 즉 땀흐림의 기쁨을 알게 되었기에.
처음 농구를 한 건, 슬램덩크가 고등학교 교실을 강타했을 때이다.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는, 사뭇 진지했다. 그 진지함이 어느 정도냐 하면, 친구들과 유니폼 비슷한 것까지 맞춰 입고 코트를 뛰어다닐 정도였으니. 만화 덕분에 처음으로 공을 튀겨보고 나서, 풀코트를 뛰면서 같은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때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대기만성의 기질이 있다는 것을 농구 때문에 다시 한번 느꼈다. 뭐 그렇다고 농구를 평균이상으로 잘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리고 농구를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흔히 필이 꽂히는 날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즉 드라이브인으로 겹겹이 쌓인 수비수를 뚫고 림에 공을 올려 놓고 내려오는 짧은 그 순간, 느껴지는 무아의 느낌. 생각은 존재하지 않지만 느낌이 가는대로 근육세포 하나까지 내마음대로 조정한다는 그런 생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뇌와 육체의 싱크로율이 네가티브일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느낌과 생각은 두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세포 하나하나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스포츠이기에 농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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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파이터, 철권 등의 대전게임에 타고난 실력을 보여줬던 대학동기가 있다. 이 친구 덕분에, 잠깐 동안 오락실 죽돌이가 된 적이 있는데, 게임을 하는 것보다 이 친구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는 게 사실 더 재미있었기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름 잘 하고 싶은 욕심에, 이 친구가 하는 플레이를 연구하고, 고수들의 플레이를 보려고 PC통신 자료실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런 연구 분석으로 얻은 결론은, 연습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어느 분야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일반인이 넘을 수 없는 이런 갭을 천재성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대전격투 게임에선 이런 천재성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건, 친구의 고백(?) 때문이었다.
나 : 어떻게 상단으로 공격할지 알았어?
친구 : 눈으로 보고 막았지.
나 : 상단인지, 하단인지 감으로 막는 거 아냐?
친구 : 보통은 그러는데, 컨디션이 조금 좋으면, 동체시력이 좋아지나봐. 그럴 때면 주먹이 나오는지 발이 나오는지 보여.
이 친구는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고, 그 동체시력에 따라서 반응하는 능력까지 뛰어났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농담으로, 이 친구의 시신경은 대뇌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손가락 근육과 연결된 진화가 덜 된 하등동물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갖지 못한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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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를 봤다. 이 영화는, 대뇌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우고, 엉덩이를 의자에 꽉 붙인채 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독의 명성이 자꾸 떠올라 한 눈을 팔기에, 언리밋의 속도로 달리는 아우토반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비판적 사고란 약에 쓸려고 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냐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그런 것들의 존재감이 엄청난 스피드에 묻혀버린다는 것. 아무튼 이성은 사라지고 동물적 감각만이 존재하는 속도 속에서, 주인공이 트랙에 그려놓는 숨이 멎는 드라이빙을 보고 있자니, 신(?)이 내릴 때 농구를 하면서 내가 받는 그런 느낌이나, 동체시력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그런 날 친구가 받았을 느낌이 떠올랐다.
스피드 속에서 그런 무아의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