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업보’에서 ‘돈오돈수’로

며칠 전에 부서 전체 회식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프로젝트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서원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부서원들과 나누었는데, 최근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일이 많아 퇴근이 늦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프로젝트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는 일은 이 업계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런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될 때는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죠. 늦은 퇴근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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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고 나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일 대박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3차 프로젝트였는데, 범위는 1차, 2차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기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프로그램 몇 가지를 개발해야 했습니다.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투철한 신입사원 정신으로 무장한 저였지만,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물론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긴 했지만…요.

자정이 가까워 집에 들어가는 것을 밥 먹듯이 했고, 늦게 퇴근하는 게 지겹다 싶으면 선배 기숙사에 묻어서 잘 때도 있었죠. 당시에 저만 일이 많았던 게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일이 많아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불만이 상당했던지 사장님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죠.

즉, 6시 이후 사무실의 조명을 모두 소등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

일이 없고 상사 눈치 보느라고 퇴근 못하시는 분들에게 쾌재였지만, 저처럼 일이 백두산보다 더 높이 쌓인 사람에게 이건 당첨된 로또 복권을 넣어둔 바지를 세탁기에 돌려버리는 소리였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버 때문에 전원을 차단하지 않아 컴퓨터는 쓸 수 있었습니다. 한석봉도 아닌데 불을 끈 상태에서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암흑 상태에서 일을 하면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9시쯤이 되었을 때 화장실을 가다가 다른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불이 켜진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평소 알고 지내던 부서분이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나 : 어떻게 불 켰어요?

동료 : 타이머가 세팅돼 있는지, 9시 넘어서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와요.

나 : 앗싸~ 그렇군요. :)

사무실로 돌아와 제 자리 위의 형광등 스위치를 켜니, 역시나 불이 들어오더군요. 어찌나 기쁘던지! 그렇게 불을 켜고 일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손전등을 비추며 관리하시는 분이 제 자리로 오시더군요.

관리하시는 분 : 이렇게 불을 켜놓으시면 제가 얼마나 곤란한지 아세요? 사장님이 불 켜놓으신 것을 보면, 아이고 정말. 일 하실려면 불 끄고 하세요.

나 : 네…?

그 분이 말을 마치자 마자 제 자리의 불을 끄시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암흑 속에서 한 달정도가 지날 무렵, 직원들이 다시 야근하고 싶다는 불만이 고조되자, 6시 강제 소등 조치는 풀렸습니다.

***

야근이 옳다 그르다를 단칼에 판가름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일의 양을 객관화하기도 어렵고,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존재하는 비확실성과 비가시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야근으로 채워져 있는 저의 회사생활을 뒤돌아 보면, 그 많던 야근은 큰 의미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제가 살아온 3분의 1 인생을 부정하는 행위도 아니며, 생산성 향상에 미약하나마 기여했던 제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팔랑팔랑 날개짓하는 나비의 몸짓에 깨달음을 얻듯이, 술자리에서 다른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고객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의미 없는 야근과 검수 확인서에 도장을 받기 위해 개발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기능들에 낭비했던 시간이 지구의 무게만큼으로 온몸을 짓눌렀습니다.

직장 생활을 한다면, 야근이라는 업보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없이 자행되는 야근의 업보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을 보면, 아직 저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듯합니다. 고로 제게 필요한 것은 돈오점수의 깨달음이 아니라 돈오돈수*의 깨달음이 아닐까 합니다.

* ‘깨달음 뒤에도 닦을 번뇌가 있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다’는 것이 성철이 주장하는 ‘돈오돈수’의 핵심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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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This is Hani! My job is consulting, system design and project management... Sometimes coding. 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n my blog.

2 Responses to “‘야근의 업보’에서 ‘돈오돈수’로”

  1. 쉰밥 Says: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수많은 야근과 철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저 역시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의미를 부여할만한 결과를 남겼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그 얘기는 그 고생을 통해 배움이 있을 때에만 유효한 것 같습니다. IT 개발 업종에서 야근과 철야가 배움을 낳는 것은 당사자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그 고생을 취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싶어하는 능동적 욕구가 우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해야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일 자체의 목표달성은 가능하더라도 일을 하는 당사자의 성장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많은 IT 개발자들의 상황을 보면 프로젝트 일정을 주도하기 보다는 끌려다니며, 야근과 철야에 적응이 되어 시간 활용이 매우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자신의 업무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또는 지적 역량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결국 끌려다니는 일정과 야근 및 철야 등의 나쁜 환경 속에서는 개인의 인성적, 역략적 성장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성장 없이도 시간은 잘 흘러서 결국 경력 년수는 늘어나지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사람에게는 같거나 비슷한 일이 계속 주어지겠죠. 개발자에서 관리자로 전향한 경우도 다를 것은 없습니다.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는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몇 가지 뻔한 관리 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관리자라고 해도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한 관리자에게는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 주어졌던 것과 같거나 비슷한 일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는 악순환인데 좋지 않은 환경이 개인의 능동적 성장을 막기때문에 성장하지 못한 개인에게는 또 다시 좋지 않은 환경이 주어지게됩니다. 이 악순환으로 당사자 개인은 지속적으로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상입니다. 고리를 탈출할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악순환의 고리를 탈출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달라서 스스로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엔 제가 멘토로 모시며 존경하는 분과 많이 소통하려 노력하기, IT와 동떨어져보이는 분야의 책(철학, 과학, 경영 등…)을 읽으면서 정신적 여유를 갖기 등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저도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함이 많은 것을 알지만 부족함은 언젠가 매워질 것이라는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2. Hani Says:

    쉰밥님

    환경에도 문제가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개선할 것도 많습니다.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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