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자일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황금률
얼마 전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왈
조그만 지나면, 이제 반올림해서 마흔이다. 흐미.
친구가 무심코 뱉은 말을 주워 담아 꼭꼭 씹어 먹으니, 그 맛이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먹는 맛이 초코릿 맛 같든지, 신포도 맛이든지 상관없이 늙어가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노화에 대한 공포감에 질러, 자리에 주저 앉아 그렇게 시간을 까먹을 수도 있고. 현명한 사람은 장맛이 숙성되는 것처럼, 나이가 먹으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지혜라는 선물을 즐기겠죠.
사실, 시간은 낫씽(nothing)입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낫씽에서 섬씽(something)을 만들어 내는 것은, 노화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혀 만선의 기쁨을 창조해는 사람의 몫이겠죠.
그렇습니다. 시간은 낫씽입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다만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그것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시계라는 도구를 통해서, 우리는 무형의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게를 달 수 없다고 시간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도 않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해서, 흔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공짜다.
물, 공기, 햇빛, 지천에 널려 있다. 무한정이다. 인간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식조차 못하고 살 때가 많지만 이것들이 없어지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멸종해 버린다.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공짜라니, 어쩐지 미안하지 않은가.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누군가 제게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해야 합니다답할 겁니다.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니 바다 건너 서양사람도 아니고 냉냉하기 그지 없네요. 정없다는 구실로, 한가지 더 말해 보겠다고 때를 써보면,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해 보라는 호의를 받는다면,
저는 사랑하는 사람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바로 ‘시간’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미세한 모래알이 조개를 괴롭혀 진주알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듯, 변변치 않은 두뇌로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토해내려면,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SI에서 애자일이 가능하다’는 주제로 많은 분이 좋은 의견을 내주시고 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에서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글에서 다루는 ‘SI에서 애자일이 가능하다’라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제가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애자일을 통으로 적용하지 못하더라고 애자일 실천방법(practice)을 적용하려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한 것은 아니지만, 아울러 궁극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제가 애자일 실천방법을 적용하려는 이유는 적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애자일 방법론, 즉 XP(Extreme Programming)를 실무에 처음 적용한 것은 4년 전이었습니다. 책과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애자일 방법론을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당시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멤버는 저와 선배사원 한 명이 전부였습니다. 평소 코드가 비슷했던 선배사원을 꼬셨습니다.
“선배! 기존 개발방법론보다 결과도 더 낫고 결정적으로 칼퇴근이 가능한 방법론이 있다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는 게 어떨까요?”
사실 선배가 칼퇴근이라는 감언이설(?)에 넘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우리는 칼퇴근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했습니다. 프로젝트 일정으로 채워진 달력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프로젝트의 내용은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주인공과 배경만 바뀌고 스토리는 비슷한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프로젝트 제안서는 항상 고객이 원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었지만, MS 프로젝트에 적힌 일정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처절히 깨닫게 해주었고, 제안서에 속은 고객은 허기를 달래려고 프로젝트 팀원들을 잡아먹으려 했으며, 목숨이 위태로워진 팀원들은 제안서에 그려진 이상향을 땅 위에 실현시키고자 프로젝트룸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애자일 프랙티스 서문에서 밝혔듯이, 처음으로 애자일 방법을 적용한 것은, 약 5년 전 일입니다. 당시에 XP를 적용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짝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부서의 부장님을 설득하는 데 무척 어려웠습니다. 즉, 짝 프로그래밍을 하는 모습을 보신 부장님이 ‘둘이 붙어 앉아서 노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면서, 개발이 제대로 될지 걱정하셨기 때문이죠. 하하하. 아무튼 성과가 저희 대신 변명을 해주었기에, 부장님이 더 이상 짝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별 말씀하지 않으셨죠.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면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죠).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저는 그 프로젝트를 통해 애자일의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애자일 실천방법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몇 번 더 했습니다. 몇 건의 프로젝트를 통해, 애자일 실천방법을 적용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하는 황금률(golden rule)# 하나가 도출되더군요.
바로 칼퇴근입니다.
칼퇴근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고객사에 가서 개발하는 경우에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운영의 묘고, PM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별 시덥지 않은(?) 칼퇴근을 애자일 실천방법을 도입한 프로젝트의 성공요인으로 말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라는 범위로, 시간을 한정 지어 버리면… 프로젝트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이 됩니다. 일종의 40시간이라는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면,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놓으려고, 팀이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예쁜(혹은 잘생긴) 애인 얼굴을 떠올리면서 시간을 허송하는 회의를 타파하고, 의사소통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줄이는 회의 방식을 모색합니다. 개발환경과 실전환경이 달라서 하게 되는 고도의 삽질을 피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적은 업무를 최대한 자동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기타등등 애자일 실천방법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하게 되죠.
***
애자일에 관한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확산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의의 확산 중심에는, 기존 방법론으로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조금 더 나은 오늘을 꿈꾸기 때문이겠죠.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여러가지로 애자일을 현장에 도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개선을 원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분명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기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무언가를 더 고민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애자일을, 저는 이런 이유로 좋아합니다.
* 오감을 통해 알 수 없다는 의미정도로 받아들여 주세요.
# 특수한 개인적인 경우로 한정될 수 있습니다.


July 10th, 2008 at 1:13 am
Xper 메일링 리스트 쓰레드…
제가 예전에 올렸던 글: SI 프로젝트에서도 애자일 프로세스는 가능하다에 대한 쓰레드가 Xper 메일링 리스트에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부를 소개하죠. 강석천: 이상적인 이야기인…
July 10th, 2008 at 1:14 am
도와주세요… 저자분이시죠.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아직 1/3밖에 안 읽었지만…
July 10th, 2008 at 10:34 am
헤이의 생각…
누군가 제게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해야 합니다답할 겁니다. - ㅋㅋㅋ…
July 10th, 2008 at 11:42 am
팀장의 최대 미덕은 “칼퇴근의 강요”라는 제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주는 글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July 10th, 2008 at 12:08 pm
wafe의 생각…
칼퇴근 해야 하는 애자일적 관점. 여러 가지 이유로 시간이 지날수록 집보다 회사가 더 편합니다. 걱정할 일이군요….
July 10th, 2008 at 1:37 pm
영회님
‘애자일 SI’에서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4four님
감사합니다.
팀장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시간관리죠.
그렇기에, 칼퇴근이 전부는 아니지만,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팀장이
앞장서서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죠.
July 13th, 2008 at 8:35 am
[…] 출처 : 내가 애자일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황금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