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IT전문 번역가 삶_ 2
1편에 이어서, 돈벌이 관점에서 IT전문 번역가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고 시작하죠.
전문직이란 다음을 의미한다.
- 고도의 학습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
- 시장에서 널리 용인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를 그 속에 담는 것
- 규약을 깨뜨리는 자에 대한 징계 시스템
- 개인이 벌어들이는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강조와 영예롭게 훈육된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의무
- 실제 입문에 앞서, 면허를 요구하는 것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런 항목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 개발(인사이트), 스티브 맥코넬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것들을 만족시키면, 어떤 직업을 전문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기준을 보고 있자니, 변호사, 의사, 회계사, 공인중개사, 변리사 등은 확실히 전문직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프로그래머는 어떨까요? 글쎄요, 답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이런 사전적인 정의를 떠나서, 일반적으로 말하는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예전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생계와 열정을 직업으로 해결하는 이는 프로고, 밥은 다른 직업으로 해결하고 열정은 돈을 써가면서 추구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프로 축구 선수는 공을 차서 생계를 해결하겠지만, 조기 축구회 회원은 새벽에 자비를 들어 차를 몰고, 돈을 각출해서 운동장을 빌려 취미생활을 하겠죠. 돈을 버는 것과 달리, 이상적으로는 조기 축구 회원이 프로 축구 선수보다 축구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극히 적지만요. 즉, 프로 축구 선수보다 공을 잘 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축구 선수로 밥벌이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전문직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를 떠나서, 어떤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그 직업은 프로가 존재할 수 있는 직군입니다. 하지만,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없다면, 프로의 실력을 갖춘 사람도 영원히 아마추어로 남을 수 밖에 없겠죠.
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08년 4인 가족 최저 생계비가 얼마일까요? 이 글을 쓰려고 검색을 해보니, 약 127만원 정도입니다. 무척 소박하네요. 이 돈으로 어느정도의 생활이 가능한지는, 논외로 하고. 가족 3명을 부양하는 IT전문 번역가가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통계에 따르면 1달에 약 130만원을 벌어야 합니다. 간단한 산수를 해보면 주5일 기준으로 1달에 20일을 근무했을 때,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해서, 이 IT전문 번역가를 하루에 약 6만 5천원을 벌어야 합니다.
IT번역서 기준으로 1장을 번역할 때, 8천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하루에 약 9장 정도를 번역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회사원처럼 8시간 근무를 한다면, 1장 번역하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려야 하죠.
자~ 정리를 하자면, 4인 가족 최저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 1시간에 1장 정도를 번역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장 번역하는 데 1시간이라?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물론 번역을 맡은 외서의 난이도, 번역가의 기술적인 수준, 독해 능력, 문장 구성 능력에 따라서 다르지만요. 요즘 제가 플로(flow)에 빠졌을 때 보이는 번역 속도가, 1장에 20~30분 정도를 볼 때, 제 기준으로 평균 1시간에 1장을 번역한다는 게 녹녹하지 않습니다(어려운 번역서가 걸렸을 때 세월아 내월아 할 때가 많죠. 그리고 교정/교열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온전히 번역에만 집중하지 못합니다).
두뇌의 한계 때문에, 번역속도를 무한정 높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번역료를 높이는 게 몸값을 높이는 다른 방편이겠죠. 그런데 IT번역료는 왜 다른 분야보다 낮을까요?
IT쪽 번역료가 낮은 이유는, 일단 시장이 작아서입니다. 1쇄 팔기도 버거운 시장인데, 이것 저것 떼고 번역료만 높여줄 수도 없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써 번역료가 높아지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전반적인 번역수준의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IT번역 시장은 전문 번역가보다는 아마추어 번역가가 상대적으로 많고, 번역가들도 번역에 대한 이해보다는 기술적인 이해가 더 깊기 때문에… IT서적을 번역했을 때 출판사에서 교정, 교열에 들어가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 때문에, 번역료가 낮게 형성되죠. 즉, 시장이 작고, 번역 품질 문제 때문에 프로가 존재하기 어려운 시장입니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였을 때 이야기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듯이. 문제를 파헤쳤기에 해결책을 거의 찾은 듯합니다. 일단 번역료를 높이는 방법에서, 실마리 하나를 찾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시장을 키우는 데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번역료를 높이는 방법은, 번역 품질을 다른 번역가들이 근접하지 못할 정도로 올리는 겁니다. IT번역을 잘 한다는 것은, 영어 독해 능력, 한글 문장 구성 능력, IT지식의 3박자가 모두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런 세 가지 능력에,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에 시간을 들이지 않을 정도로 번역을 한다면, 분명 번역 단가는 높아질 겁니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번역은 출판사에서 의뢰를 받아 번역을 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즉, 출판사에서 봤을 때 팔릴 책으로 찍힌 책을 번역하기에, 단순히 번역만 해서는 시장을 넓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팔릴만한 책을 미리 미리 찾아서 선정하는, 즉 기획력까지 갖춘다면 아마도 최고의 번역가가 될 듯합니다.
IT서적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요즘 잘 팔리는 분야는, 아마도 Flex쪽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식으로 향후 몇 년후에 잘 팔리만한 분야를 연구해서, 괜찮은 책을 발굴하고, 이것을 출판사와 함께 기획하고 번역한다면, 더 많은 기회가 번역가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유행이 지난 분야의 책이라도, 그 가치를 발견해서 한권의 번역서가 아닌 평역한 책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면, 군계일학의 IT전문 번역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포스트가 돈버는 이야기로 점철되었는데,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열정이 있다면, 시장이 좁고 단가도 낮아도… 기회를 찾고 세미 프로지만 즐거운 직업생활을 할 수 있다입니다. 아무쪼록, IT전문 번역가를 꿈꾸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September 12th, 2008 at 11:48 am
포스트 정말 잘 읽었습니다.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제시해주신 세 해결책이 도움이 되네요.
September 13th, 2008 at 8:03 am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