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솔직히 누구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은 내켜하지도 않고 잘 하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 내 성격에 기인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고민하는 상대방에게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싶어서 어설픈 해결책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 고민 끝에 말해준 해결책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정확히 말하면 거절 당하거나, 하찮게 여겨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런 의식 밑바닥에는 약간의 권위의식 내지는 허위의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충고라는 것이 어설픈 설교로 들릴까봐… 그리고 나보다 나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버릇없이 보일까봐 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의 충고를 규정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상대방에게 충고를 해준다는 것은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들어주는 행위로도 충분하고, 들어주는 사이에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내 생각을 전해 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해결책을 주던, 거절당함을 떠나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공감해 주고 내 생각을 제시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고민이 내 고민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해결책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실행할 용기가 없어서 미루어 두고 있던 것을 똑같은 고민을 하는 상대에게 말해 줌으로써,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는거 같다.
얼마전 직장 문제로 내게 고민을 털어 놓던 친구가 있었다. 문제의 원인은 직장 상사와 트러블이었다. 문제의 해결책은 두가지 정도였다. 회사를 관두거나 상사와 좋게 지내는거다. 그런데 친구는 그 회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상사와는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한다. 이율 배반적인 상태다. 회사에서 더 성장하고 싶었지만, 상사가 벽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내가 그 친구 입장이라도 참으로 답답한 경우다. 내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었지만, 그 친구의 상사에 대한 인식에 그 친구의 문제의 원인이 있었다. 즉, 상사를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벽으로 인식하는거다. 하지만 그 친구가 그 회사에서 더 큰 성장을 원한다면 그 상사를 벽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 상사를 뛰어 넘어야할 장애물로 인식한다면 어떨까? 벽은 내가 나아갈 길을 막고 있다. 따라서 그 벽을 지나갈 수 없다면 그 벽을 부수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장애물로 본다면, 뛰어 넘을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높이 뛰기 높이는 올라가고, 장애물을 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일단 그 친구는 좋은 생각이라는 답변을 해 주었다. 일단 고맙게 생각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 어떨까?라고 생각해 보면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라고 인식하기 보다는 넘지 못하는 벽이라고 결론 내린 적이 많았다. 비록 친구에게 충고라고 했지만, 결론은 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충고는 Feedback이다.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이라도 말하고 공감하고 실천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