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와 특수해
아인슈타인은 가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등속운동 환경을 가정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 잘 느끼지도 못하지만 중력가속도가 항상 존재합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가정한 가속도가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특수 상대성 이론은 숨이 막힐 정도로 멋지지만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런 약점을 없애고자,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10년 동안 머리를 뜯어가면서 연구에 매진한 결과. 가속도가 존재하는 진짜 세상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확장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즉, 절대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정으로 뉴턴이 만들다 손을 놓아버린 뉴턴 역학 위에, 아인슈타인은 따로 국밥의 세상인 공간과 시간을 엮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인류에게 선물했죠.
대학원 과정에 진학해서 석사논문을 쓸 때, 처음엔 거창한 연구 테마를 찾습니다. 아는 것은 별로 없어도 주위에서 주워 들은 것은 많기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왠만한 논문 테마는 성에 차질 않죠. 하지만 논문 제출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시간 압박에 시달리고, 결국 연구실 선배가 제출했던 논문 가운데서 건드리지 않은 작은 테마를 찾아서 열혈모드로 논문을 써내려 갑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쓴 논문이지만, 석사 논문은 대개 ‘OOO경우를 고려한 OOO분야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이 붙는 특수해가 되는 경우가 흔하죠.
물론 석사 학위의 공력으로 세상을 꿰뚫어내는 일반론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박사 학위가 있어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분야에서 모든 경우를 아우르는 새로운 일반론을 내기란 매우 힘들죠. 그렇다고 일반론을 만들어내고 싶은 연구자들이 ‘내가 만든 이론은 모든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일반론’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가 같은 밥을 먹는 동료들의 철저한 응징과 조롱을 받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연구자세가 필요 없는 일반 사회에서 특수해가 일반해로 변질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을 토대로 이야기할 때, 특수해가 일반해로 변질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 사람들 앞에 자리가 났죠. A가 자리에 앉을려고 뒤돌아서는데 바람처럼 한 아주머니가 달려오셔서 A의 자리를 뺐습니다. 자리를 차지한 아주머니는 A와 B에게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이 상황에서 B는 A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여간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왜 이렇게 염치가 없지.
평소 논리적인 A는 B의 말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앞에 있는 아줌마가 염치가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아줌마 사례를 들어서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모두 염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아?
경험을 통해서 생기는 편견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하기 때문에 생활에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오랜 경험으로 형성한 편견은 일종의 특수해입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특수해를 일반해로 성급하게 전환해 버릴 때,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from 공각 기동대
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가끔 논쟁이 붙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대개 제가 경험한 특수해를 일반해로 간주하고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 특수해인데 일반해로 이야기해 버리고 나면, ‘아차! 실수했네’하는 후회가 듭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을 때 쉽게 파악하고, 그러지 않을려고 노력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실수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엄격한 과학자의 자세를 견지하기 힘들겠지만, 서로 다른 특수해를 두고 일반해라고 우기는 논쟁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 겸손한 연구자의 마인드가 필요한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