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culture' Category


배틀스타 갤럭티카

Sunday, November 22nd, 2009

제가 봤던 미드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트윈 픽스’입니다. 트윈픽스의 줄거리는 큰 틀에서 매우 간단합니다. 외딴 시골 마을에서 로라라는 여고생이 살행되면서 살인범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엔) 요즘 유행하는 미드의 공식인 떡밥 신공이 이 드라마에서 처음 선보인 듯합니다.

트윈픽스

영화 트윈 픽스

이 드라마의 감독이자 컬트 영화의 거장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드라마에서 널려 놓은 떡밥이 지나치게 많아서, 드라마에서 모두 풀어내지 못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저도 드라마 열혈팬으로서 극장판 트윈픽스를 봤는데요, 문제는 영화에서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알려 주면서 다시 수많은 떡밥을 양산했다는 데 있습니다. :) 완결성을 원하는 팬들이라면 그런 떡밥들이 짜증나지만, 열린구조를 좋아하는 저로서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는 트윈 픽스는 뇌리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트윈 픽스 이후로 X파일이나, 24, 닥터하우스 등. 재미있는 드라마를 여러 편 봤지만, 그래도 트윈 픽스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드라마는 아직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주전투를 담은 동영상을 봤는데, 기존 우주전쟁 장면과 달리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게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 동영상의 출처를 알아보니 SF미드 ‘배틀스타’였습니다. 전투장면에 이끌려서 ‘배틀스타’를 보기 시작했는데요, 매회 “참 잘 만들었다!”하고 감탄하는 어느새, 마지막편까지 다 봤습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

배틀스타 갤럭티카

SF장르가 아이들의 장난거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궁극의 SF는 현실을 반영하는 최고의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눈요깃감을 뛰어넘어 현실의 문제점이나 이슈를 잘 담아낼 때, SF영화나 드라마는 “참 잘 만들었다!”하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웰메이드 미드입니다. ;)

스토리 자체의 완결성은 당연한 것이고, 이 드라마에서 유일신, 윤회사상, 민주주의, 테러, 인종문제, 인간과 기계 등 참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요, 그 주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었던지 배틀스타에 나온 출연진들이 UN토론회에 참석해서 연설까지 했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후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인간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한, 발터 박사가 시즌4, 9편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터 박사 옆에는, 기계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인류를 ‘지구라고 불리는 곳’으로 인도하는 로슬린 대통령이 있었죠.

말 많은 발터 박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했는지 유언 비슷하게 ‘자기 때문에 인류가 멸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말합니다.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나머지, 발터 박사의 상처를 감쌌던 붕대를 풀어 버리죠. 그도 그럴 것이, 그 발터 박사 때문에 인류가 대부분 죽었고, 생존한 사람들도 말로 표현 못할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터 박사가 피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이 대통령의 자의식 속에서, 멘토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발터가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질수록 생존권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진다는 점이에요. 인류가 스스로 생존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한사람 한사람마다 할 수 없죠. 나쁜 사람에게도 착한 사람처럼 죽음은 엄청난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논지는, 영화 ‘데드맨 워킹’이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말하는 주제와 비슷합니다. 즉 죽일 짓을 한 범죄자들이라도 그 죄를 ‘사형’이라는 방법으로서 인간이 심판하는 게 온당하느냐는 것이죠. 물론 이런 주장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도, 범죄자들이 저지른 죄만 놓고 보면 “사형만은 거두자!”하는 의견을 개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SF드라마에서 건들기 어려운 주제를 시나리오에 풀어내는 제작진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소유 중심의 글쓰기 vs 존재 중심의 글쓰기

Friday, August 7th, 2009
  • 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그는 능력이 탁월하다.
  • 그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 그는 돈이 많다.
  • 그는 꿈을 많이 가지고 있다.
  • 그는 꿈이 많다.
  • 영희는 두 아이를 갖고 있다.
  • 영희는 아이가 2명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소요하는 게 미덕이 되는 듯합니다. 가치관이 소유 중심으로 옮겨 가다 보니, 말버릇이나 글버릇도 소유 중심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소유 중심의 글쓰기와, 존재 중심의 글쓰기, 어떤 게 더 익숙하시나요?

‘갓길’은 쓰는데, ‘참살이’는 쓰지 않는 이유

Thursday, July 16th, 2009

장하늘 선생님의 책이 유익한 이유는,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책 한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단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장력 높이기 기술’에서는 아래의 단어들의 용례를 배웠죠.

  • 눈씨 : 노려보는 눈길에서 느껴지는 힘
  • 말거리 : 화제
  • 언턱거리 : ‘말썽을 만들 거리’나 ‘남에게 생떠거리를 부릴 만한 핑계’
  • 드레질하다 : ‘드레질’은 사람의 됨됨이나 물건의 무게를 헤아리는 일이다.
  • 얼넘기다 : 얼버무려서 넘기다.

이런 단어들이 있다는 것에만 멈춰서는 안되겠죠. 알았다면 어딘가에 사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단어들이 신선하지만, 이 단어들이 사용되는 문장이 단어 의미를 충분히 녹아내지 못한다면, 단어를 사용하고 나서 단어 뜻을 각주로 달아주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장하늘 선생님의 책에서도 접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어를 잘 쓰고, 글을 잘 쓰자는 취지의 책에서 생소한 단어를 봐도, 공부하는 셈 치고 각주를 살피는 노력을 하죠. 하지만 좋은 글쓰기 이외의 정보를 전달하려는 글에서, 생소한 단어를 쓴다는 것은 글을 읽는 이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행위입니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분들 중에서, 되도록이면 모든 단어를 토박이말(순수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토막이말 중심으로 쓴 문장을 읽는 일은, 외국어를 독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글의 중요한 목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한국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생기는 폐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토박이말 위주로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어 사랑일까요? ‘순수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순수성’ 이면에는 혼혈이나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분리주의’가 스며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개념이기도 하죠. 잡초가 무성한 잔디밭에서 잡초를 솎아내려고 살포하는 제초제처럼, 한국어를 혼탁하게 하는 외래어들을 말끔하게 뽑아낸다면, 한국어는 수정보다 더 맑아질까요?

사실, 언어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주장은, 제가 처음하는 것도 아니죠. :) 고종석씨가 쓰신 감염된 언어를 읽어보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염된 언어의 한장인 ‘섞임과 스밈 -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에 언어순수주의 문제점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책 전체가 아니더라도, ‘섞임과 스밈…’ 장을 읽어보세요.

이런 글을 쓴다고, 토박이말을 쓰려는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번역과 책을 쓰면서,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는 게 가장 아름답고, 얼음 송곳처럼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박이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죠. 다만, 그 정도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토박이말을 써야할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절대 정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부질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런 질문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생각할 것을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있는 듯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답은 아니지만,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좋은 토박이말의 예는 이렇습니다. 즉 단어를 들었을 때, 단어가 뜻하는 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좋은 토박이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에 많이 익어서 크게 이상하지 않지만, 아직도 저는 ‘참살이’가 ‘wellbeing’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는지 의문스럽니다. 하지만 ‘노견’이라는 단어보다 ‘갓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갓길’이 의미하는 바가 더 잘 그려지죠.  토박이말이 외래어가 담고 있는 사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면, 토박이말은 모진 시간의 비바람을 이겨내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서 사용되겠죠. 반대로 한국어 순수성이라는 가치 아래, 부득이 바꾼 토박이말은 그리 오래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잡초를 제거하려고 무차별적으로 뿌린 농약이 화단의 꽃들도 죽일 수 있듯이. 언어의 순수성만을 강조한 채 토막이말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한국어를 빈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어를 사랑한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기보다 순수하지 않지만 한국어를 건강하게 살찌게 할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물론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하며, 뷰티풀한 프라이데이 나이트에요.”라고 쉽고 귀에 쏙 들어오는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죠.

박쥐, 김해숙

Monday, May 4th, 2009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봤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 봤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다 감동이 덜 전해졌습니다. JSA부터 박쥐까지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모두 봤는데, 저는 ‘올드보이’가 제일 좋네요. 박찬욱 감독 영화는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화면 가득하게 볼거리가 풍성하지 않지만, 색감, 소품, 벽지 문양, 벽 질감, 의상의 패턴이 잘 맞아 떨어져 완벽한 미장센을 연출하죠. 이 미장센이, ‘올드보이’ 때가 정점이지 않았나 싶죠(물론 어디까지나 제 취향이 그렇습니다).

ㅋ. 박쥐를 보고 나서, 올드보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고 박쥐가 재미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고, 생각해 볼 게 많아서, 쉽게 평가 내리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보면서 내용보다는 장면 위주로 봤기 때문에,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1번 정도 더 보면, 어느 정도 정리될 듯합니다.

송강호 씨나 김옥빈 씨가 연기를 잘했다는 칭찬이 많은데. 전 극중에서 ‘라여사’ 역할을 맡은 김해숙 씨의 연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김해숙 씨는 김혜자 씨처럼 국민 어머니 반열에 오른 연기자셨죠(지금도 그렇습니다). 김해숙 씨 생각하면 언제나 어머니 역할이 떠올랐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김해숙 씨의 새로운 모습을 봤습니다. 무방비도시에서도 김해숙 씨는 어머니로 출연하셨는데, 새로운 형태의 어미니였습니다. 제가 편의상 부르기를 ‘무서운 어머니’라고 하는데요. 기존 한국의 어머니상과 완전히 다른, 담배도 피시고, 지갑도 훔치고, 범죄자로서 무척 악한 어머니였죠.

하지만 국민 막장 드라마로서 비방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조강지처 클럽’에서 보여주신 푼수같은 어머니 역할을 보면서, 무방비도시에 나온 범죄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보게 되는 드라마 속에서도, 김해숙 씨는 무서운 역할을 하다가도,  옆집 어머니 같은 모습도 보여 주시고, 참 다양한 얼굴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다양한 모습이 정점으로서, 박쥐에서 ‘라여사’ 역할로 표출되는 듯한데요. 뭐, 김옥빈 씨, 송강호 씨 연기도 좋았지만, 김해숙 씨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신 표정 연기만으로도 영화 참 맛있게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쥐

박쥐에서 라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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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