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culture' Category


‘갓길’은 쓰는데, ‘참살이’는 쓰지 않는 이유

Thursday, July 16th, 2009

장하늘 선생님의 책이 유익한 이유는,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책 한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단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장력 높이기 기술’에서는 아래의 단어들의 용례를 배웠죠.

  • 눈씨 : 노려보는 눈길에서 느껴지는 힘
  • 말거리 : 화제
  • 언턱거리 : ‘말썽을 만들 거리’나 ‘남에게 생떠거리를 부릴 만한 핑계’
  • 드레질하다 : ‘드레질’은 사람의 됨됨이나 물건의 무게를 헤아리는 일이다.
  • 얼넘기다 : 얼버무려서 넘기다.

이런 단어들이 있다는 것에만 멈춰서는 안되겠죠. 알았다면 어딘가에 사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단어들이 신선하지만, 이 단어들이 사용되는 문장이 단어 의미를 충분히 녹아내지 못한다면, 단어를 사용하고 나서 단어 뜻을 각주로 달아주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장하늘 선생님의 책에서도 접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어를 잘 쓰고, 글을 잘 쓰자는 취지의 책에서 생소한 단어를 봐도, 공부하는 셈 치고 각주를 살피는 노력을 하죠. 하지만 좋은 글쓰기 이외의 정보를 전달하려는 글에서, 생소한 단어를 쓴다는 것은 글을 읽는 이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행위입니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분들 중에서, 되도록이면 모든 단어를 토박이말(순수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토막이말 중심으로 쓴 문장을 읽는 일은, 외국어를 독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글의 중요한 목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한국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생기는 폐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토박이말 위주로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어 사랑일까요? ‘순수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순수성’ 이면에는 혼혈이나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분리주의’가 스며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개념이기도 하죠. 잡초가 무성한 잔디밭에서 잡초를 솎아내려고 살포하는 제초제처럼, 한국어를 혼탁하게 하는 외래어들을 말끔하게 뽑아낸다면, 한국어는 수정보다 더 맑아질까요?

사실, 언어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주장은, 제가 처음하는 것도 아니죠. :) 고종석씨가 쓰신 감염된 언어를 읽어보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염된 언어의 한장인 ‘섞임과 스밈 -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에 언어순수주의 문제점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책 전체가 아니더라도, ‘섞임과 스밈…’ 장을 읽어보세요.

이런 글을 쓴다고, 토박이말을 쓰려는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번역과 책을 쓰면서,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는 게 가장 아름답고, 얼음 송곳처럼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박이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죠. 다만, 그 정도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토박이말을 써야할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절대 정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부질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런 질문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생각할 것을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있는 듯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답은 아니지만,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좋은 토박이말의 예는 이렇습니다. 즉 단어를 들었을 때, 단어가 뜻하는 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좋은 토박이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에 많이 익어서 크게 이상하지 않지만, 아직도 저는 ‘참살이’가 ‘wellbeing’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는지 의문스럽니다. 하지만 ‘노견’이라는 단어보다 ‘갓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갓길’이 의미하는 바가 더 잘 그려지죠.  토박이말이 외래어가 담고 있는 사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면, 토박이말은 모진 시간의 비바람을 이겨내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서 사용되겠죠. 반대로 한국어 순수성이라는 가치 아래, 부득이 바꾼 토박이말은 그리 오래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잡초를 제거하려고 무차별적으로 뿌린 농약이 화단의 꽃들도 죽일 수 있듯이. 언어의 순수성만을 강조한 채 토막이말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한국어를 빈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어를 사랑한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기보다 순수하지 않지만 한국어를 건강하게 살찌게 할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물론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하며, 뷰티풀한 프라이데이 나이트에요.”라고 쉽고 귀에 쏙 들어오는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죠.

박쥐, 김해숙

Monday, May 4th, 2009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봤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 봤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다 감동이 덜 전해졌습니다. JSA부터 박쥐까지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모두 봤는데, 저는 ‘올드보이’가 제일 좋네요. 박찬욱 감독 영화는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화면 가득하게 볼거리가 풍성하지 않지만, 색감, 소품, 벽지 문양, 벽 질감, 의상의 패턴이 잘 맞아 떨어져 완벽한 미장센을 연출하죠. 이 미장센이, ‘올드보이’ 때가 정점이지 않았나 싶죠(물론 어디까지나 제 취향이 그렇습니다).

ㅋ. 박쥐를 보고 나서, 올드보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고 박쥐가 재미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고, 생각해 볼 게 많아서, 쉽게 평가 내리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보면서 내용보다는 장면 위주로 봤기 때문에,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1번 정도 더 보면, 어느 정도 정리될 듯합니다.

송강호 씨나 김옥빈 씨가 연기를 잘했다는 칭찬이 많은데. 전 극중에서 ‘라여사’ 역할을 맡은 김해숙 씨의 연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김해숙 씨는 김혜자 씨처럼 국민 어머니 반열에 오른 연기자셨죠(지금도 그렇습니다). 김해숙 씨 생각하면 언제나 어머니 역할이 떠올랐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김해숙 씨의 새로운 모습을 봤습니다. 무방비도시에서도 김해숙 씨는 어머니로 출연하셨는데, 새로운 형태의 어미니였습니다. 제가 편의상 부르기를 ‘무서운 어머니’라고 하는데요. 기존 한국의 어머니상과 완전히 다른, 담배도 피시고, 지갑도 훔치고, 범죄자로서 무척 악한 어머니였죠.

하지만 국민 막장 드라마로서 비방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조강지처 클럽’에서 보여주신 푼수같은 어머니 역할을 보면서, 무방비도시에 나온 범죄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보게 되는 드라마 속에서도, 김해숙 씨는 무서운 역할을 하다가도,  옆집 어머니 같은 모습도 보여 주시고, 참 다양한 얼굴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다양한 모습이 정점으로서, 박쥐에서 ‘라여사’ 역할로 표출되는 듯한데요. 뭐, 김옥빈 씨, 송강호 씨 연기도 좋았지만, 김해숙 씨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신 표정 연기만으로도 영화 참 맛있게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쥐

박쥐에서 라여사

cine1.JPG

무방비도시에서

작전

Sunday, February 15th, 2009

작전

극전인 반전이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전개가 지루하지 않아 재미있었습니다. 극중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지는 배우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조폭을 맡은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괜찮았습니다. 광고에서는 장르를 스릴러 영화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배우들이 ‘대사 치는 맛’이 맛깔스러워서 잘 만들어진 멜로(?) 드라마에 가까운 듯합니다. 그리고 주식에 관한 영화지만 주식을 전혀 몰라도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간단한 감상은 여기까지고요.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이 떠올랐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전부이지만, IMF이후 우리 사회는 돈이 만능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기업을 일으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목적이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빼놓고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하루 아침에 몇 천억 혹은 몇 조의 시가 총액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조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주식시장 덕분에 기업들은 자본을 쉽게 조달받지만, 금융자유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다 보니까, 현실과 금융 사이에 괴리가 커지고… 그런 결과로 오늘날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죠. 어떤 양반은 이 시기가 지나면 금본위 제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업을 일으키는 목적이 돈이기는 한데,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어느 순간 전국민이 투자자가 되다 보니까 어떻게든 빠른 시간에 투자를 회수하는 게 목적이 되었습니다. 즉, 어떻게든 돈을 버는 게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인생 한방을 노리는 야바위꾼만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지금도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무한 도전을 하시는 사업가들도 있지만요. 그 수가 과거와 비교해서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재벌 2세와 그의 주위에서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 그리고 단기적 수익을 노리는 개미들이 합작해서 큰 한판을 버리는 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데요. 어떻게 보면 금융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요즘 투자 세태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투전판보다 더 정신없는 주식 작전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영화가 끝납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자마자 영화관을 나오면, 그냥 잘 만든 영화 한편을 본 셈인데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조금만 참고 보시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 바로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

겨울철 그리고 재생… 남겨진 사람들

Tuesday, November 18th, 2008

낙엽

어제는 점심을 먹고 근처 거리를 산책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드문드문 떨어져 있던 낙엽이, 어제는 황금색 카펫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발걸음을 뗄 때마다 들리는 바싹한 소리는 경쾌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낙엽을 쓸어서 자루에 담는 청소부를 만났습니다. 지금이야 낭만이 넘치는 낙엽이지만,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자동차가 내뿜는 먼지가 쌓이면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어 버리기에… 청소부는 낭만이 끝나기도 전에 낙엽을 주어담았습니다.

생존이라는 이유로, 좋았던 시절을 함께 보낸 나뭇잎을 떨궈낸 나무가 야속해 보였지만, 땅위에 떨어진 나뭇잎은 겨울내 내린 눈을 맞고 썪어서 다시 봄이 되면 나무로 돌아갈 것을 기약하기에, 모질게 자신을 떼어낸 나무가 그렇게 야속하지 않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멘트 블록에 갇혀버린 나무를 보고 있자니, 겨울이 끝나면 나무와 낙엽이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는 자연의 법칙이 어느새 끊어졌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어쩐지 자루에 담긴 낙엽은 영원히 나무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처연해 보였습니다.

낙엽

전세계적인 불황에, 이곳 저곳에서 감원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자연계로 본다면, 개별 회사는 나무쯤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생존이라는 목적을 생각한다면, 겨울철을 견디기 위해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처럼, 회사도 자신과 함께 했던 직원들을 내보내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무가 나뭇잎을 떨구는 것은, 자신의 몸통과 뿌리라는 생존의 핵심이 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온전히 뿌리를 보호하고 거름이 되어 다시 만날 나뭇잎을 위해, 나무는 잎을 떨구는 방법으로 진화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회사라는 나무에서 성장을 같이 했던 직원들은 재생이 가능한 나뭇잎일까요? 아니면 회사의 핵심인 뿌리일까요?

어떤 가치관을 품느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질문이지만. 생존이라는 이유로 스산한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다른 곳으로 사라져갈 사람들을 생각하니, 보도블록에 갇혀버린 나무가 생각났습니다.

한파에 떨어져 나간 나뭇잎도 있고 모진 생명력으로 한겨울을 나는 잎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함께 했던 동료를 떠나 보내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떠나는 동료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간신히 살아남은 나무와 나뭇잎은,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도 모릅니다.

***

산책이 끝날 무렵, 떨어진 나뭇잎이 잔뜩 쌓인 화단을 봤습니다. 화단은 보도블록으로 막히지 않았기에 굳이 나뭇잎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듯했습니다. 낙엽을 치우는 수고를 하는 것도, 떨어진 나뭇잎을 처리하는 방법이겠지만. 굳이 낙엽을 치우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