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the 'culture' Category


교육은 지식의 채움이 아니라 지식의 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Wednesday, November 10th, 2010

* 이 글은 트위터에 쓴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최근에 피아노를 다시 배우면서, 피아노 학원만 가면 본의 아니게 초등학생들에게 둘러 쌓이죠. 초등학생들이 저를 보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는 “우와, 나이 많은 아저씨다!”, 다음은 “왜 그렇게 피아노 못 쳐요?” 입니다.

사실 두 질문에 대한 답은 공통적이죠. 이 나이를 먹고 보니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데 배운 밑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피아노를 배워야 할 때는, 참 배우기 싫었습니다. 악보를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악보를 보고 싶은 이유도 없었고요.

무척 수동적인 아이로서 지내다가 피아노 배움 인생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를 먹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에 관심이 많아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제가 아는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그림으로도 표현하고 싶어서 습작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음악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더군요.

그래서 이십 년 전에 그렇게 피아노를 끝낸 게 아쉬웠습니다. 지금도 손가락과 뇌가 싱크가 되지 않아서 고생이지만, 더 늦기 전에 다시 피아노 시작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도전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우려 섞인 걱정을 들으며 피아노를 배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에 제가 피아노를 마스터하지 못한 건, 이렇게 재미있는 피아노 배우기가 그 당시에는 공부로서 느껴졌기 때문이죠. 뭔가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이 아닌 부모님이 시켜서 하는 일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당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열의가 불 타올랐다면, 지금쯤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상당히 매끄럽게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비노바 바베씨가 말한 “교육은 학생들의 머리를 채우는 게 아니라 지식에 대한 갈증을 유발시키는 것”이란 말을 요즘 통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확실히 우리사회는 지식을 채워주려고 하지, 지속적으로 지식을 추구하는 지적 열망을 추구하게 하는 데 아직 미숙한 듯합니다.

[서평] 창작 면허 프로젝트, 당신의 미술적 휘발유에 불을 당길만한 책!!

Sunday, October 31st, 2010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쯤에, 만화 읽기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이현세씨 만화를 즐겨 봤고요. 일본 만화도 많이 봤죠. 그런데 만화를 한참 보다가 보니, 직접 만화를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첩보물 스타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엉성한) 스토리를 짠 다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만의 그림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현세씨 만화에서 나오는 컷 가운데서 제 만화에 필요한 컷을 가져다가 모방하는 형태로 10쪽 분량의 만화를 그렸습니다. 처음엔 장편을 그리려고 했지만요. 스토리도 기존에 많이 보던 첩보원이 잃어버린 특수무기를 회수하는 것이었고, 그림도 이현세씨의 컷을 그대로 그렸음에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보니, 너무 힘들어서 지금으로 치면 시놉시스 정도만을 그리고 관둔 셈입니다.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화를 그리고 나서, 전 생각했죠. “아~ 난 만화가 하면 망하겠다!” 그림은 미술시간에 그리고 나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 거의 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안서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파워포인트를 꾸미는 도표나 이미지를 선택할 때에, 고등학교 때처럼 미술적 감각을 발휘하기 했지만요. 펜을 들고서 순수하게 제 영혼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대니 그레고리씨가 쓴 ‘창작 면허 프로젝트’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인 안에 있는 미술적 재능을 깨워 주는 책이라는 말에 혹하고 샀습니다. 사고 나서 읽을 책이 많아서 한참 옆에 두고 있다가 며칠 전부터 드문드문 읽어서 오늘 다 읽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동기인 ‘미술적 재능을 깨워 주는 책’이라는 것처럼, 정말로 내 안에 든 미술적 영혼이 다시 불타 올랐을까요?

자, 다음 두 그림이 제가 이 책을 읽고 쓴 그림일기입니다. ㅎㅎㅎ

그림일기1

그림일기2

그림 잘 그리시는 분들이 보시면, 비평할 구석이 많은 그림이지만요. 일단, 제 수준에서 그릴 수 있는 그림입니다. 오랜만에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니, 참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그레고리씨의 책을 읽고 ‘필’을 받아서 그림을 그린 건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드문드문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주제로 만화를 그리기도 했죠(핫! 지금 보면 부끄럽습니다. 뭐 그래도 저의 일부니까 어쩔 수 없죠.)

[어른을 위한 동화] Great Manager
[어른을 위한 동화] 단팥빵과 가치
[어른을 위한 동화] 열정은 자석
[어른을 위한 동화] 현실 그리고 꿈

그러다가 그림을 그려 보겠다는 폭탄에 불이 붙은 건, ‘창작 면허 프로젝트’의 서두에 나오는 다음 구절 때문입니다.

예술을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운전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전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결정돼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지. 그들만 운전할 수 있게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할 거고. 그 외 사람들에겐 응원은 커녕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상처를 주겠지. 나머지 사람들은 절대 운전은 못할 거라며 그저 길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거야. 뭐, 적어도 오존층이 더 나빠질 일을 없을 테니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레고리씨에 따르면 운전이나 그림 그리기나 차이가 없다는 뜻이죠. 전 이 구절을 읽고, 그동안 그림 그리기에 대해서 제 자신에게 편견을 강요한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잘 그려야 그림은 그릴 수 있는 거다. 하고 말이죠. 그리고 그림은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운전을 하는 것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재능의 차이야 존재하겠지만, 운전을 하려는 이유는 가려는 곳에 도착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듯이, 그냥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미술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굳이 그림을 아주 잘 그려야 할 필욘 없는 셈이죠.

그래서, 전 그레고리씨 충고대로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보니 아니 그리고 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혹시 그림을 그려 보고 싶은데, 주저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당신의 미술적 휘발유에 불을 당기는 수단으로 ‘창작 면허 프로젝트’를 강권합니다.

우리가 명품을 사는 이유는?

Saturday, October 30th, 2010

아담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여명을, 분업이 고도화된 핀공장에서 본 뒤, 급속하게 보급된 대량생산 체계는 싼 값에 품질이 높은 제품을 쓸 수 있는 대량소비의 세계를 열었죠. 그덕분에 우리는 소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량생산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은 오리지널리티를 잃게 되었습니다. 공산품의 오리지널리티는, 설계 단계에서 만들어 보는 프로토타입이나 엔지니어링 샘플 정도에 있겠죠. 그렇게 본다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만이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향유하는 소수자일 뿐, 대량소비의 한 사람인 소비자는품질이 우수한 카피제품을 쓰는 사람인 셈이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아이텐티티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게 아닐까요? 키치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교묘히 자극하는 산업, 다른 말로 하자면 명품의 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명품이라는 것도 생산량이 한정된 카피 제품일 뿐. 다시 명품을 모방하는 카피제품이 시장에 넘쳐 나면,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찾아서 새로운 프로덕트 사이클이 시작하죠. 참, 멋지지? 않나요! 이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요. 좋은 의미입니다. :)

놀이와 추억

Saturday, September 4th, 2010

아기가 걸어 다니는 데 익숙해지자, 주말이면 두 세 시간 씩은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합니다. 저야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본 세상이라서 그다지 신기할 게 없지만,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는 모든 게 신기한가 봅니다.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을 한 번씩 만져 보기도 하고,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차는 십여 분이 넘는 시간동안 주위를 배회하고 감상하면서 즐거워 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미끄럼틀을 타는 방법을 배워서, 미끄럼틀을 타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죠. 그러고 보니, 아기 덕분에 한 이십 년만에 처음으로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 봤습니다(미끄럼틀은 그다지 재미없었지만, 그네는 오랜만에 타도 참 재미있더군요).

며칠 전에도 아기하고 동네 여기 저기를 구경다녔습니다.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아기가 뭘 발견했는지 손으로 가리키더군요. 아기가 가리킨 곳을 보니 BB탄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얀색에 맨질맨질하고 손톱 크기만한 작은 BB탄이 신기했는지, 아기가 한참을 여기저기 살펴 보면서 좋아했습니다. 아기가 BB탄을 한참을 만지다가 땅에 떨어 트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BB탄을 다시 들어서 잠깐 보다가 다시 던졌습니다. BB탄이 떨어진다는 게 재미있었는지,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서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BB탄을 던지고 줍고 놀았죠.

물론 제 입장에서 상당히 단순한 놀이였기 때문에 흔해 빠진 BB탄에 감탄하고 즐거워 하는 아기가 더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세상에서 처음 보는 BB탄은 무척 신기한 물건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은 걸 땅에 던지면 다시 튀어 오르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아기가 30분 동안 BB탄 하나로도 즐거운 것을 보니, 예전에 초등학교 때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2명이 집에 놀러왔습니다. 쇼파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거실 창문 밖으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습니다. 거실 창 쪽으로 집 밖에는 하천이 흘렀고 그 하천 건너편에는 넓은 들판이 있었습니다.

그 들판에 반짝 반짝이는 게 보였던 거였죠. 친구들과 저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탐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어른들에게 집에서 하천을 건너 들판까지 가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겠지만,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들에게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들판으로 간다는 건 큰 모험이었습니다.

모험을 하면서 초딩 3명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외계인이 동네에 왔다가 흘리고 간 비밀무기일 거라든지, 누군가 몰래 땅에 묻어둔 보물인데 그게 보이는 거라든지, 아주 오래 전 옛날에 장군이 잃어 버린 칼이라든지…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반짝이는 물건을 향해 걸어갔죠.

초딩 3명은 긴 모험의 끝에 드디어 숨겨진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그 반짝이던 물건은 외계인의 비밀무기도, 누군가의 보물도, 장군의 잃어버린 칼도 아닌… 그냥 버려진 큰 비닐 조각이었습니다. 빛이 비닐에 반사되서 보였던 거였죠. 뭐 상상한 것처럼 거대한 진실이 아닌 게 아쉬웠지만, 초딩 3명이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한 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놀이도 하나의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뭐하고 놀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면 고민을 하지 않으면 그냥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게, 요즘 우리의 놀이 습관이죠. 지상전, 공중전, 우주전쟁까지 치룬 어른들에게, 이 세상에 신기할 게 별로 없는 것도, 노는 게 아이들처럼 별로 재미있지 않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걸 기억 정도라고 하고, 기억을 살찌우는 원재료를 추억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른이 되고 나서 우리 자신을 규정한 원재료 많이 얻지 못하는 듯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추억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기 때문이죠. 물론 쉽지는 않지만 아이처럼 BB탄 하나라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반짝이는 물건을 찾아서 큰 모험을 감행할 정도의 호기심이 있다면, 어른이 된 우리일지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살찌울 원재를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