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life' Category


사회를 생각하다

Saturday, March 13th, 2010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에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소꿉놀이를 했다. 남자아이가 말했다.

“난 마법을 부릴 줄 안다. 특히 무서운 것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마법에 전문이지. 뭐가 제일 무섭냐?”

“음… 한밤 중에 치는 벼락.”

“하하하. 벼락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난 벼락이 하나도 안 무서운데.”

“벼락이 얼마나 무서운데, 벼락 맞으면 죽는다고 엄마가 그랬단 말이야.”

“그렇다면, 넌 다행이다. 난 벼락이 맞아도 다치지 않는 마법을 부릴 수 있거든. 나하고 항상 같이면 넌 안전할거야.”

“거짓말 아니야? 한번 해봐.”

“거짓말이라니. 자 봐.”

남자 아이는 모래 위에 두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원을 그렸다.

“아브타, 바브타, 얍! 자, 봤지. 이게 바로 마법의 원이야. 내가 이렇게 원을 그리고 마법 주문까지 걸었으니까, 벼락이 칠 때 이 원 안에만 있으면 안전해. 멋지지?”

“거짓말 같은데…”

그때 ‘번쩍’하고 하늘을 가르는 벼락과 천둥이 쳤다. 남자 아이는 잽싸게 원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들어와, 벼락 치잖아.”

남자 아이는 겁에 잔뜩 질려서 여자 아이에게 말했다.

“안돼. 엄마가 벼락 칠 때, 빨리 건물 안 같은 데 들어가라고 했어. 난 갈래.”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를 남겨 둔 채 집으로 달려 갔다. 벼락이 치고 천둥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 괜찮아, 이 원은 마법 원이야. …”

남자 아이는 떨면서 원 안에 서 있었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나약한 것 같다. 그 이유인즉 스스로 등록금을 해결할 수도 있는데 등록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핑계를 댄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개인의 삶과 사회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살기 때문이죠. 따라서 개인이 선택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시스템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계층 간의 이동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스템이 만들어진 사회에서 초인적인 노력으로 계층을 이동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특별한 사례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누군가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만든 시스템은, 선배님들이나 우리 그리고 후배님들이 과거에 내린 선택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든 하나의 관념 혹은 대상일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을 바꿀 수 없는 하나의 자연법칙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일 때, 그 시스템은 죽게 되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은 딱딱하게 굳어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부서 버리고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이 됩니다.

우화지만 요즘 일부 우리들의 우리들의 모습은,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의 노예가 되버린 남자 아이같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느끼게 하라, 그리고 자유롭게 하라

Saturday, February 27th, 2010

저를 포함해서 팀원이 4명인 프로젝트를 관리했을 때 일입니다. 팀원 한명은 실력이 뛰어났고, 팀원 2명의 실력은 좋은 편이거나 아직 배울 게 많은 편이었습니다. 개발할 기능의 난이도에 차이가 있었지만, 제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끝내려면 팀원들의 실력이 빠른 기간 안에 상향평준화되어야 했죠.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짝 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팀원들이 짝 프로그래밍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탠드 업 미팅도,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에게 상당히 낯설고 부담스러운 애자일 프랙티스죠. 그런데,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실천방법으로 꼽히는 짝 프로그래밍을 애자일 프랙티스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팀원들에게 소개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팀원들도 프로젝트에서 실수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고 뭔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서 짝 프로그래밍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팀원들은 드러 내놓고 거부하지 않았지만, 다들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걸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실력이 괜찮은 팀원은 혼자 생각하고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넌지시 짝 프로그래밍을 거부했습니다. 물론 팀원들이 기다렸다는듯이 짝 프로그래밍을 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인 거부에 조금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기존의 방법대로 프로젝트를 수행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솔루션을 찾아야 했죠. 그래서 실력이 가장 좋은 팀원과 제가 짝이 되고, 다른 개발자들을 짝으로 묶어 짝 프로그래밍을 1주일 동안만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1주일 동안, 경험하고 나서도 혼자 개발하는 기존 방법이 괜찮다면, 그렇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팀원들은, 독단적인 PM의 제안을 수락해 주었습니다.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변화를 거부하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죠. 하지만 이에 반해, 변화 무쌍한 험난한 세상 속에서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변화에 훌륭하게 적응하는 방법도 배웠죠. 그래서 제 전략은 이랬습니다. 일단 1주일 안에 개발자들은 짝 프로그래밍을 경험하고, 변화된 개발환경에 대개 적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피니언 리더 격인 개발 실력이 좋은 팀원에게 짝 프로그래밍의 성공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1주일 후 그 팀원을 짝 프로그래밍의 전도사로 만들고 싶은 순진한 생각도 한몫했습니다.

짝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고 나서, 저와 짝이 된 팀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짝 프로그래밍에 익숙해졌죠. 그리고 곧 저와 팀원 사이에는, 배움의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팀원은 제 단축키 신공에 감탄했고, 전 팀원의 디버깅 실력에 탄복했습니다. 금세 1주일이 지나고, 짝 프로그래밍을 계속해야 할 것이냐를 결정할 날이 돌아왔습니다. 제 순진한 생각처럼, 제 짝인 팀원이 짝 프로그래밍 전도사로 변신하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모두 짝 프로그래밍의 효과를 느낀 탓인지 짝 프로그래밍을 계속하는데 찬성했습니다. 그리고 짝을 바꿔서 개발을 했고, 야근을 조금 많이 했지만 프로젝트는 잘 끝났죠.

어느날, 제 처음 짝이었던 팀원에게 짝 프로그래밍이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긍정의 답을 기대하면서 한 질문이었죠. 그런데,

음… 확실히 짝 프로그래밍이 효과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데요. 그래도 전 혼자 생각하면서 프로그래밍하는 편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누군가 옆에 앉아서 같이 일한다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팀원의 예상밖 답변에 당황했습니다만, 팀원의 솔직한 대답 덕분에 많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독단적인 PM이 되고 싶지 않아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아도, 다수의 의견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에,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

그리고 어떤 방법이 뛰어나더라도, 심리적으로 그 방법에 호의적이지 않다면,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사람들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라도 감정에 스크래치가 생길 때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 것들을 다시 한번 느꼈죠.

물론 짝 프로그래밍을 전파하려는 제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기에 아쉽지만, 훗날 그 팀원의 성향이 조금 변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저와 함께 했던 짝 프로그래밍의 추억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기쁘겠습니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Wednesday, February 24th, 2010

‘물고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된다’는 말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물고기가 줄어든 지금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from 사장의 노트

한때 리더의 역할과 관리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더의 역할이란 목표를 향해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고, 관리자의 역할이란 사람들이 일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요즘에는 관리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분들을 보면, 리더와 관리자를 기계적으로 분리해 내려는 제 생각이 조금 짧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티칭’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구하게 하는 ‘코칭’ 능력이 탁월하십니다. 블루오션보다 레드오션이 많은 요즘이기에, 기존의 방법으로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방법보다 새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게 중요하고, 따라서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겠죠.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

Monday, February 22nd, 2010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거울, 칼, 황금이다. 거울은 자신의 참모습을 살펴서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칼은 자신과 가족을 험한 세상에서 보호하기 위해, 황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출처미상

사람이 장년이 되고 나면 두 가지 갈림길에 놓입니다. 즉 ‘솔로의 자유로움’과 ‘가족의 포근함’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죠. 인생은 트레이드오프의 연속이기에, 어떤 길을 택하든지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가족의 포근함’을 택한 사람이라면,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서 ‘가족이 주는 행복’을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책임감’으로 갚아야 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 인상분은 거대한 인플레이션 스나미에 쓸려가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할 ‘황금’은 잘 모이지 않고, 상시 구조조정이란 세상의 칼날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보면,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을 위해 ‘칼’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지 않으며, 새벽녘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회식 자리에서 무리했다는 것만을 알려주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냄비에 끊인 라면 한그릇으로 아침을 때우는 조폭 두목이, 캐나다로 유학 보내 처자식이 보내준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거나, ‘어제의 적이었던 국정원 직원과 남파 간첩이 합심해서 도망간 필리핀 신부를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련한 것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를 조금은 이해했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