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리셋이란, 단 한 번뿐이다.
Wednesday, June 16th, 2010어렸을 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존재했을까? 부모님이 만나서 아직 저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저란 존재는 없다는 게 답이겠죠. 하지만 사후 세계가 있다면, 태어나기 이전 세상이 존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후 세계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하는 이상,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을까?란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데미 무어가 나오는 세븐 사인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중학교 때 봤는데요. 아직도 기억에 선한 게, 처음 볼 때 무척 재미있게 봤나 봅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징조(사인)가 하나씩 일어납니다. 당연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곱 가지 징조가 모두 일어나면 세상이 망하겠죠.
데미 무어가 영화에서 임신한 상황으로 나옵니다(실제로 임신하기도 했답니다). 세상이 망하게 된 원인은, 데미 무어가 임신한 아이가 이 세상에 영혼 없이 나오는 첫 번째 아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가 바로 이 설정 때문인데요. 거프라는 방에는 영혼이 있고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이 방에서 영혼이 하나씩 나오다가, 거프에서 영혼이 없어지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데미 무어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거프에 영혼을 다시 채웁니다. 즉 데미 무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생명을 주려고 자신의 목숨을 선택한 셈이죠. 아무튼 데미 무어의 희생 덕분에, 인류는 종말을 면하고 새 출발을 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기뻤는데요. 태어나기 이전에 나는 존재했을까?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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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은 자신의 오래 된 손목 시계에 애착을 보입니다. 소령은 전뇌화를 했기 때문에, 의식만 남은 사이보그인 셈이죠. 그런데 전뇌화한 그녀가 시계에 유독 애착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자아를 형성합니다. 경험이라는 게 대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얻어지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통해서 얻기도 하죠. 그래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유독 애착을 보이는 물건이 생기게 되는데요. 저도 오랫동안 써서 이제는 버려도 괜찮을 법한 물건들을 계속 씁니다. 새로운 것을 사면 좋을텐데, 이것들을 버리면 마치 제 기억의 일부를 소거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지 못합니다.
전뇌화해서 자신을 규정하는 건 기억뿐인 소령이 시계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기억을 만들 때 함께 한 시계를 버린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소령이 여성의 의체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전 공각기동대를 볼 때면 결국 영혼이라는 건, 무에서 태어난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기억을 만들고, 자아를 형성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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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alt+del 신공으로도 컴퓨터를 깨우지 못할 때, 리셋 초필살기로 컴퓨터를 살려 냅니다. 컴퓨터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리셋처럼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집니다. 30대 후반 제대로 되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 소망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이라는 말로 자위합니다.
하지만 거프로써 삶 이전의 존재를 설명하고, 사후세계로써 죽음 이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을 떠나면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관념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삶의 범위는, 대뇌가 건강하게 활동하는 바로 이 순간이죠. 하지만 우리를 규정하는 일부는, 아쉽게도 지우고 싶은 과거나 잊고 싶은 실수들이 만든 기억입니다.
따라서 큰 실수를 범해서 리셋이 필요한 순간이라도, 육체 안에서 한정된 능력으로 짧은 삶을 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실수를 묵묵히 인정하고 내일 조금 더 잘해 보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리셋이란, 삶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