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6


디비딕~ 명랑 Naver 성공기 - 2/2

Monday, January 30th, 2006

2부에 앞서 1부도 있음을 일러 둔다.

디비딕~ 명랑 Naver 성공기 - 1/2

1부에 이어 이번 Post에서는 Naver의 지식인 서비스에 대해 살펴 보고, Naver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지 살펴 보겠다. 본격적으로 지식인 서비스를 논의하기 전에 Naver 서비스를 하고 있는 NHN(Next Human Network)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자.

네이버 제국은 영원할 것인가 (한겨례21 기사)
NHN 연혁 (from NHN home)

NHN은 이해진氏 주도로 SDS의 사내벤처로 부터 시작해서 1999년 Naver 팀에서 마련한 3억 5천만원과 삼성 SDS에서 투자받은 1억 5천만원. 총 5억원의 자본금으로 독립법인 ‘네이버컴’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0년 7월 김범수氏가 대표로 있던 (주)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흡수 합병하였다. 이해진, 김범수氏가 공동 대표로 활동했으며 2002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등록 및 매매를 시작하였고 이 때 지식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닷컴 기업 중 보기 드문 성장세를 보였으며 2005년 연간 매출액은 놀랍게도 3,5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단순히 매출만 높은 것이 아니라 영업 이익율은 36%로 일반 제조업이 8%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최휘영 국내 총괄과 김범수 해외 총괄의 공동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해진 최고전략담당이사는 NHN의 큰 전략을 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 NHN의 개략적인 연혁을 알아 보았다.

혹시 Naver의 초창기 모습을 기억하는가? 인터넷을 처음 접한 것은 93년이었다. 물론 그 전부터 PC 통신을 이용했을 만큼 인터넷을 오래 사용했지만 Naver의 초창기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를 때는 인터넷을 검색하는게 빠르다. 인터넷의 역사를 보고 싶을 때는 web.archive.org에 저장된 사이트를 확인해 보면 된다. web.archive.org에 저장되어 있는 Naver의 초기 모습은 아래와 같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web.archive.org에 저장되어 있는 1998년 12월 Naver 모습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이 맞나 보다. Naver의 ‘V’가 마징가 Z 가슴의 V를 연상시키는 것이 왠지 모를 강력한 Force가 느껴진다. 1998년의 당시 Yahoo나 Lycos 포탈이 디렉토리 서비스에 많은 신경을 썼듯이, Naver도 디렉토리 서비스를 Main에 올렸으며, 키워드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키워드 입력창을 상단에 두었다. 내친김에 Naver의 서비스 변천사를 조사해 보았다. 초기 서비스는 국내 웹, 국외 웹, 이미지, 사운드, 신문 도메인에서 검색이 가능하였으며, 디렉토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현재는 검색 서비스를 포함하여 총 14개의 메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약 110개 이상으로 파악된다.(현재 제공되는 서비스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Naver 출범 이후 많은 서비스가 생겨 났지만 오늘날의 Naver를 만든 가장 큰 공신은 지식인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즉, 검색 서비스에서 많은 트래픽을 만들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온라인 광고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오늘날의 Naver가 있게 되었다.

한계레21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포탈 사이트의 검색 서비스 점유율은 2001년 12월 기준 야후 코리아 33%, 엠파스 19%, Naver 18% 순이었으나, Naver의 지식인 서비스 이후인 2002년 12월에는 근소한 차이로 Naver가 시장 점유율 28%의 야후 코리아를 앞찔렀다. 이후 Naver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2004년 이후 시장 점유율 69%로 검색 서비스 분야에서 2위 다음을 멀리 따돌리고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검색 서비스 시장의 점유율 상승은 TV광고를 비롯한 적극적인 마켓팅과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수 없는 컨텐츠를 DBDIC에서 검증된 검색 서비스을 무료로 제공해 줌으로써 다른 포탈의 검색 서비스와는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국내 검색 포털 사이트의 검색 서비스 점유율 변화 (한겨레21 기사 중 image)

인터넷 검색분야에서 사용자가 지불해야 하는 Switching Cost는 zero에 가깝다. 즉, 10초 전까지 google을 쓰다가 naver에서 검색을 하는 경우 사용자가 지불할 비용은 브라우저에 새로운 검색 서비스의 URL을 입력하는 수고 정도이다.(바로가기를 이용하는 경우 Switching Cost는 더 떨어진다.)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사용자 가입이 필요 없는 지식 검색 서비스나 검색 시장에서는 Switching Cost가 말 그대로 zero이다.(지식인의 질문과 답변 부분은 사용자 가입이 필요하나, 단순 지식 검색은 사용자 가입이 필요 없다.) 이에 반해 신문, 신용카드, 이용하는 은행을 바꾸는 경우에 소비자에게 많은 불편을 준다. 즉, 소비자가 서비스 대상을 바꿈으로써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높게 책정함으로써 소비자의 이탈을 막는 전략을 vendor lock-in 이라 부른다. 검색 시장과 같이 Switching Cost가 낮은 시장은 vendor lock-in 전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를 자신의 서비스에 묶어 두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초기 지식인 광고는 매우 신선하였다. 일단 닷컴 붕괴 이후 인터넷 회사가 Major 방송사의 골든 타임에 광고를 내 보낸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 잡았으며, 당차게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Naver한테 물어보면 가르켜 준다고 하니 시청자의 뇌리에 Naver의 지식인을 각인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즉, Naver는 ‘지식 검색’이라는 키워드를 시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지식 검색’과 ‘Naver’라는 단어 사이의 시냅시스를 강화시켰다. Naver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용자가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알고 싶은 경우, 컴퓨터에 앉아 ‘검색’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순간 ‘Naver’와 강화된 시냅시스가 작동하면서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www.naver.com”을 입력하게 만든다. 일단 사용자를 Naver에 방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가능하였다. 따라서 사용자를 지속적으로 Naver에 방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식 검색’과 ‘Naver’ 사이의 시냅시스를 강화시켜야 했다. 강화의 방법은 사용자의 물음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면된다. 만일 사용자가 찾고자 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경우라도, 질문으로 등록하고 초기 열정을 가진 사용자들이 답을 찾아서 올려 준다면,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지식인 서비스에 만족하기 때문에 ‘지식 검색’과 ‘Naver’ 사이의 시냅시스는 강화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반복되면서 지식인에는 엄청난 DB가 축적 되었고, 대부분의 질문이 검색만으로 답을 얻는 수준이 되었다.(Quality가 이슈인 점을 밝혀 둔다.)

Naver의 지식인이 DBDIC의 것을 Copy했건 어쨌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지니스 세계에서는 최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를 기억하기 때문이다.(유사 사례로 ‘카트 라이더’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 가두를 달려온 Naver의 앞길은 밝기만한 것인가? 그러나 Naver의 앞길이 밝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네이버의 상식을 배웠습니다. (source from 도아님 블로그)
네이버 지식 캠페인 - 사용자를 내세운 기만 캠페인 (source from SOHO님 블로그)
엠파스 열린 검색 vs 네이버 지식 (source from wsjoung님 블로그)
네이버에 대해 (source from 크로워님 블로그)
네이버의 사소한 변화 (source from 도아님 블로그)
구글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 (source from 김중태님 블로그)
구글에 대한 막연한 칭찬은 그만둬라! (source form 블루문님 블로그)

위의 Post들은 Naver의 지식 검색 정책(지식 캠페인)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 두었다.(마지막 블루문님 Post의 경우 김중태님의 Post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균형잡힌 시각을 위해 링크해 두었다.) 각 Post를 관통하는 주제는 엠파스의 열린 검색으로 촉발된 지식인 DB에 대한 Naver의 폐쇄적인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이런 비판이 Naver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을 시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겸허히 받아 들이고 잘못을 시정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소비자에게 새로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나오게된 원인은 단순한 지식인 DB를 Open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컨텐츠를 대하는 Naver의 자세에 있다.

Naver는 방대한 지식인 DB를 구축함으로써 지식 검색 시장에서 업계 1위를 달성하였다. 그럼 이 때 축적한 지식인 DB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개별적으로 질문과 답변을 살펴 본다면, 하나의 답변과 질문 중에서 질문자의 지적 소유권은 인정해야 하는가? 보수적으로 지적 소유권 개념을 적용한다면 답변자에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답변으로 채택되지 않은 답변은 지적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복잡 다단한 지적 소유권의 문제가 얽혀 있는데 empas가 열린 검색이라는 방법으로 지식인 DB에 접근할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Naver는 empas의 접근을 허락해야 하는가? 막아야 하는가? 만일 질문과 답변의 지적 소유권이 Naver에게 있다면 empas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컨텐츠를 두고 empas, Naver, 사용자 사이의 지적 소유권 다툼은 Naver 성장 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Naver는 인터넷의 광활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이용자의 대부분은 네이버라는 섬에 머물며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에 반해 Google로 대표되는 검색 엔진은 광활한 바다를 향해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안내자와 같다. 즉, Naver는 사용자를 만족시킬 컨텐츠를 섬 위에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이에 반해 Google은 광활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컨텐츠 지도를 그림으로써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택하였다. Naver가 컨텐츠 생산자의 길을 걸었다면, Google은 컨텐츠 길잡이를 택한 것이다. 사용자는 어떤 방법에 만족할까? 지금까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는거 같다. 하지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다가 확장되고 수 많은 컨텐츠들이 생긴다면, 어느날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섬이 너무나 작다고 생각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매트릭스, 쥐라기 공원, 트루먼쇼 이런 영화의 공통점은 자생적인 System을 복사해서 닫힌 System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닫힌 System은 실패로 끝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닫힌 System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 99.999% 유사한 것이 탄생한다 하더라고 0.001%의 차이 때문에 진짜 System이 될 수 없다. 또한 이 0.001%의 차이점이 닫힌 System에 속해 있는 객체를 System 밖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영화라는 단순한 가상의 이야기라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오 스피어2는 과학적으로 자생적으로 운영되는 System을 복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터넷과 자생적인 System을 동일 특성으로 놓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자연적으로 도퇴되는 일련의 모습을 살펴 본다면 인터넷의 세상은 성장하고 있는 생물과 유사하다. 즉, 아무리 Naver가 섬을 잘 만들어 놓은다고 해서 인터넷이 될 수 없다. 0.001%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Naver가 지금과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면 수평적으로 광활해지는 인터넷의 크기에 대응해야 하며, 수직적으로는 컨텐츠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차이점에 Naver를 떠나 인터넷의 세계로 나갈지 안 나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Naver가 지금까지 사용자에게 선사했던 컨텐츠 만족도를 앞으로도 제공할 수 있느냐? 이다. 이 물음에 직접적인 답을 제시할 방법은 없다. Naver의 노력 뿐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다만 Web 2.0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작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semantic web이라던지 ontology 기술은 개념 상으로 가능한 기술로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semantic web이 당장에 구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 semantic web에 대해서 가졌던 약한 믿음이 이제는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개념적으로라도 semantic web이 구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정도로 바뀌었다.(다른 형태의 기술로 사상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단순한 컨텐츠의 생산만으로 발전하는 인터넷에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컨텐츠의 생산 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발전도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Naver의 미래를 한마디로 단언하는 것보다 이 Post를 읽는 이들에게 미래를 가늠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Post를 마칠까 한다. 다만 생각의 단초는 제공하도록 하겠다. 회사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그 회사의 비전을 읽어 보면 된다. 만일 그 비전으로도 알 수 없다면 CEO의 생각을 들어 본다면 그 회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최휘영 국내 총괄이 국내 사업을 총지휘하지만, Naver의 큰 그림은 이해진 최고전략담당이사가 그린다. 따라서 Naver의 미래를 가늠하고 싶다면 이해진 CSO와 최휘영 국내 총괄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된다. 아래에 두 사람의 관련 인터뷰를 모아 두었다.

이해진 CSO 관련 글
“출판사와 협력하고 싶다”…이해진 NHN 최고전략책임자
이해진 CSO

최휘영 국내 총괄 관련 인터뷰
최휘영 NHN대표 “시대착오적 규제 부활 안돼”
「NHN」최휘영 대표 “세계적인 게임과 최고의 검색포털 일궈낼 터”
[IT CEO 초대석]최휘영 NHN 사장 “영업익 1000억 목표 초심으로 다시 뛴다”
[포털 CEO 연속 인터뷰]<1>NHN 최휘영 대표
NHN 최휘영 사장 “구글은 네이버에 완패했다

디비딕~ 명랑 Naver 성공기 - 1/2

Friday, January 27th, 2006

오늘 Post의 제목은 명랑 발랄하게 “디비딕 ~ 명랑 Naver 성공기”로 정했다. 그동안 Post의 내용이 너무 진지한 탓에 사는게 너무 진지해진거 같다. 분위기도 바꿀 겸, 오늘은 좀 쉽게 쉽게 읽어 가면서 과연 Web 2.0의 미래에는 어떤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을지, Naver는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할 수는 있는 시간을 제공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 곳은 어디일까? Naver 지식인? 삐~익 틀렸다. DBDIC? 오. 이렇게 말한 사람은 평소에 인터넷 좀 한다고 이야기 들었을 것이다. 나도 이 Post를 쓰기 전까지는 DBDIC이 우리나라 최초의 지식 검색 서비스로 알고 있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Search 해 보니, DBDIC이 “최초 지식 검색 서비스”가 아니었다. 원조 할매 국밥집 옆에 “진짜 원조 할매 국밥집”이 있었던 것이다.

eouia님의 국내 최초의 지식 검색 ahnice 이야기 Post를 통해 nKorea의 “아나이스”(ahnice)라는 서비스가 진짜 원조 지식 검색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DBDIC은 한계레 신문사가 서비스한 지식 검색으로, nKorea의 ahnice를 밴치 마킹해서 만들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듯이 ahnice가 최초로 시도는 했지만, 사실상 지식 검색 서비스의 성공은 DBDIC이 최초였다. 서비스 성공에 무게를 두어, 우선 DBDIC에 대해서 알아 보자.(Winner takes all~)


[2002년 9월 리뉴얼 후 DBDIC 메인 페이지, source from netville.co.kr]

DBDIC은 2000년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식 커뮤니티사이트 ‘디비딕닷컴’ 오픈 - 2000.10
디비딕이 뭔뜻? 어원? (여기서 DBDIC의 기획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DBDIC이 오픈한 당시에는 특정 분야의 QnA 사이트가 대세였기 때문에, DBDIC처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질의 응답을 할 수 있는 사이트는 거의 없었다. 또한 DBDIC을 서비스한 주체가 한겨레라는 Major 언론이었기 때문에, 마켓팅 측면에서도 다른 사이트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DBDIC의 이용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1. DBDIC에 사용자로 등록한다.
2. 특정 카테고리를 선택한 후 질문을 올린다.
예) 생활 카테고리 :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는 이유?
3. 내가 등록한 질문이 해결 중인 질문 리스트에 올라 온다.
4. 답변자들은 해결 중인 질문 리스트에서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선택해서 답을 단다.
예) 질문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는 이유? 답 : 누가 나에게 욕을 한다면 대들고 싸울 일이지만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욕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심리…
5. 질문에 따라서 적게는 한두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답변이 올라온다. 물론 답변 내용은 질문자에게 메일로도 알려 준다.
6. 질문자는 자신이 생각할 때, 답변 중 가장 좋은 답변을 선택한다. 단순히 선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족도에 따라서 점수를 부여한다.

어디서 많이 본 운영 방식이지 않은가? 그래 맞다. Naver의 지식인과 동일한 운영 방식이다. 어차피 DBDIC이 ahnice를 베꼇듯이, Naver는 DBDIC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였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에 있는가.

DBDIC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지금은 유치해 보이는 지식 점수 부여 방식은 많은 질문과 양질의 답변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나도 DBDIC에 질문도 해보고, 답변도 몇번 달아 보았다. 궁금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전문적인 질문이나, 황당한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달은 답변이 높은 점수로 채택되었을 때 으근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높은 지식 점수를 획득한 Guru가 나타나고 이들은 핵심 Node가 되었다.

AltaVista, Yahoo로 대표 되었던 검색 엔진이 많은 페이지를 색인하고 있었지만 사용자의 질의어에 적절한 페이지를 보여 주지는 못하고 단순 나열 식으로 검색 결과를 보여 주었다. 수 많은 검색 페이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찾지 못한 사용자들에게 DBDIC은 정보 제공의 네트웍을 제공해 주었다. 즉, DBDIC에 가면 왠만한 질문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캐치플레이가 다수의 이용자를 모았고, 또한 DBDIC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던 질문자는 다시 답변자로 역할이 바뀌어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DBDIC에 접속하게 만들었다. Web 2.0에서 블로그, 링크와 Google 검색엔진으로 제공되는 지식 네트웍이 부족하지만 DBDIC이라는 서비스로 사용자에게 제공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DBDIC에서 얻을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 살펴 보자. DBDIC에서는 질문도 하나의 컨텐츠였다. 평범한 질문도 많았지만 다양한 연령, 직업군의 사람들이 질문을 올렸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생각지 못하는 질문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번쯤 공상으로 생각했을 뻔한 것들을 다른 사람이 질문하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음은 DBDIC에 등록되었던 질문 리스트 중에 일부이다.

지식주고 감동받는 DBDIC (한겨레 2001 연말특집)

. ‘군대에서 이거 알고 있으니까 도움 되더라~’ 이런거 없으신가요?
. 영화에서 섹스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 음치면 휘파람도 음치인가?
. 성기 색깔은 왜 까만가요?
. 왜 엿장수는 가위를 들고 다닐까?
. 라면+식초=다이어트?
. 예비군 훈련 때, 군복만 입으면 아무리 얌전한 사람도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가 뭘까요? 무슨 심리일까?
. 코카콜라에서 코카 = 코카인?
. 유독 사람만이 이를 닦는 이유

위에 나열된 DBDIC의 질문은 명확한 답이 있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인 질문이나 답이 없는 질문도 많았다. 가령 애인과 헤어져서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태와 심정을 올리면 연애에 다양한 경험이 있거나,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 줌으로써 정서적인 만족까지 줄 수 있었다. 또한 단순히 명확한 답이 있는 경우라도 답변자들이 각종 문헌과 링크를 참조해서 성실한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펌이 아닌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였다. 아래 링크에서 DBDIC의 답변 중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답변 : 나레이터(도우미)모델이 하루 일해서 받는 비용은?
답변 : 국내 최대의 매출을 자랑하는 삼성몰이 아직까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답변 : 신설 장애인 사회 복지관 홍보방법은?
답변 : 영어 욕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겨레 신문은 DBDIC의 성공으로, DBDIC에 등록된 인기있는 지식과 답변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 때 출간된 책이 ‘너 그거 아니?’였다. 이 책은 2001년 12월에 비소설부분의 베스트셀러 7위를 기록하였다. 우리가 ‘너 그거 아니?’에 주목해야 하는 점은 책 출판의 과정과 수익 배분 구조다. DBDIC 사용자에 의해 등록된 15만건 이상의 지식 중에서 약 400건을 추렸으며, 동시에 책의 제목도 사용자에 의해 정했다. 책 판매를 통한 수익의 일부는 책에 질문과 답변이 실린 사용자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DBDIC의 사용자는 책의 공동 저자라 볼 수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DBDIC 사용자는 마켓터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하는 구전 마케팅의 효과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소수의 편집자들에 의해 책에 실린 질문과 답변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집단의 사용자들이 재미와 유용성을 검증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 가능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Web 2.0의 몇 개의 키워드가 이미 DBDIC에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DBDIC의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한겨레 신문사는 ‘너 그거 아니?’ 책의 연속적인 성공에 자극 받아, 2002년 9월 DBDIC을 전격적으로 유료화 하였다. 수익 구조는 사용자에게 포인트를 나누어 주고 질문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내야 했다. 만일 포인트가 모자른 경우 돈을 지불하고 포인트를 충전해야 했다. 즉, 한겨레는 답변자가 답을 달아 줌으로써 양질의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 받고 돈을 버는 비지니스 모델이었다. 이런 비지니스 모델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대부분의 사용자는 자신의 비용을 지불하고 답변을 얻을 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다소 정보의 질은 떨어져도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둘째 답변자들은 자신은 금전적 혜택없이 한겨레에게 돋을 벌어 주는 구조를 당연히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DBDIC은 유료화 전환 후 많은 사용자를 잃었고, 유료화 7개월만에 empas에 팔렸다. 이 후 DBDIC은 지식 거래소로 이름이 바뀌어 서비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식 검색의 장을 열었던 DBDIC의 영광스럽지만, 짧은 역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으로 짧게 DBDIC이 남긴 것들을 정리해 보자.

1. 지식 검색 서비스 시장 개척 : 비록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지식 검색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해 주었다. 이런 시장 개척은 Naver가 지식 검색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서비스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2. 집단 지식을 활용한 가치 창출 : 온라인에서 축적된 집단 지식을 Off-line 시장의 책, ‘너 그거 아니?’ 출판함으로써 집단 지식을 활용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3. 미성숙한 비지니스 모델의 위험성 경고 : 어설픈 비지니스 모델은 사용자들의 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결국에는 사이트 중단이라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다른 On-Line 사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유사 사례로 Freechal.com이 있다.

최진사댁 셋째 딸은 이쁘다. 그렇다 딸 부자집의 셋째 딸은 얼굴도 안보도 데려 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인지, ‘3′이라는 숫자에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은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숫자다. ‘3′의 정기가 지식 서비스에도 적용되는 걸까? 지식 검색 서비스를 만든 제 1세대 지식 서비스 ahnice, 지식 검색 서비스 도약의 발판을 마려한 제 2세대 지식 서비스 DBDIC 그리고 대망의 3 세대 서비스가 지식 검색의 중흥을 열매를 맺는 것은 운명의 계시였을까? 2002-10-07 Naver가 지식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됨…

Dr. House

Wednesday, January 25th, 2006

병원 놀이 장민수 작사 / 장정옥 작곡

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니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의사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
여기는 소아과 병원입니다

어렸을 적에 한번씩 불러 봤을 ‘병원 놀이’라는 동요이다. 유치원에 다녔을 때, 이쁜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서 따라 부르자니 금방 외울 수 있었다. 거기다 이쁜 선생님의 배 아프고 머리 아픈 율동까지 보고 따라했더니 성인이 되서도 외울수 있게 된거 같다. 성인이 되서도 잊지 못하는 이런 동요를 지은 목적이 무엇일까? 대략 추측건데, 표현력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노래로써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부모님께 빨리 알릴 수 있도록 학습 시키려는 이유가 아닐까? ‘병원 놀이’ 동요를 배운 철이가 갑자기 아프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평소처럼 “엄마! 나 배 아파~” 하는 것보다는 동요의 후렴구처럼 “엄마! 나 소아과 병원가야 할거 같아~” 라고 하면 엄마는 철이의 이야기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그럴싸하게 들지지 않나?)

그러나 ‘병원 놀이’ 동요 때문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른들도 동요처럼 배 아프면 내과부터 간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건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배가 아프다고 내과에 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친구 중에 한명은 배가 아파서 동네 내과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의사 :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친구 : 위가 아파서 왔는데요.
의사 : (놀라면서) 어떻게 위가 아픈지 아시죠?
친구 : … (가운데 배를 가르키면서) 여기가 아프면 위 아닌가요?
의사 : (웃으면서) 나도 진찰해 보기 전까지 잘 모르겠는데, 위가 아픈걸 알다니 대단한데요.

이 친구의 병명은 무엇으로 밝혀졌을까? 맹장염이었다.(다행히 내과는 맞았다.) 내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 중학교 때 아침에 일어나니 입이 안 벌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결석을 하기 싫어서 학교에는 갔다. 오전 수업은 대충 마치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밥을 먹을려고 입을 벌려도 평소의 1/3정도 밖에 벌려지지 않아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어찌 어찌해서 수업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당연히 입이 안 벌어지니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의사는 엑스 레이도 찍고 몇 가지 묻더니, 병명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약을 줄테니 일주일 정도 먹으라고 했다. 일주일을 약을 먹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일주일동안 1/3쯤 벌려지는 입으로 말하고 밥 먹자니 살도 빠지고 정신도 이상해 지는거 같았다.) 그런데 새로 찾은 정형외과에서는 놀랍게도 치과 질환이기 때문에 진단서를 써줄테니 대학 병원 치과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놀란 어머니와 더 놀란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소개 받은 대학 병원 치과에 갔다. 예약을 안하고 갔더니 2-3시간을 기달려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 어디가 아파요?
: 터의 자아알 안 버려지여요(=턱이 잘 안 벌려져요. 턱이 안 벌려져 발음이 세었다.)
의사 : 진짜 많이 안 벌려지나 보네, 제일 크게 벌려 봐요.
: 으~~아… 툭(크게 벌리면 턱 관절에서 툭 소리가 났다.)
의사 : 밤에 잘 자요?
: 네에? 자문 일지기 자아려고 느우눈데 자미 자알 안 아요.(=내? 잠은 일찍 잘려고 누웠는데 잠이 잘 안와요.)
의사 : 밤에 안 자고 야한 생각하는 거지?
: 므~슨 소오리 세요?(=무슨 소리세요?)
의사 : 약 지어줄테니까 밤에 한 알씩 먹고 잠 안오면 앉아서 있다가 잠 올때 자요.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은 수면제였다. 아마도 사춘기 때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턱관절에 무리가 왔던 것이다. 의사가 처방해 준 수면제 덕분에 며칠 숙면을 취했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

병이 나서 병원을 찾아 진찰, 치료 받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배가 아픈 경우 대부분이 내과를 찾는다. 의사는 문진을 통해서 환자의 병 상태를 살피고, 증상이 가벼운 경우 의사의 경험에 기초해서 처방전을 작성해 주고 진료를 마친다. 개업의를 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수련 생활을 거치기 때문에 경험에 근거한 진료는 대부분 적절한 처방으로 결론난다.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말할 수 없지만, 1차적 진료 행위로 병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 각종 검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배가 아픈 경우, 엑스 레이, 피 검사, 초음파 검사, 위 내시경 검사, 대장 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 등등 비 전문가가 아는 수준에도 수 많은 검사들이 있다. 만일 이런 검사에도 병명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신경성 질환으로 진단되거나 다른 전문과로 진찰 의뢰가 들어가게 된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에는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없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의사의 진료나 진단 행위가 아니라, 환자들의 병원 선택 메카니즘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 찾게 되는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배가 아프면 내과, 눈이 아프면 안과, 관절이 아프면 정형외과를 찾는다. 물론 증상과 병을 치료하는 병원의 선택 기준은 상관 관계는 있지만, 배가 아프다고 치료의 원인을 내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에만 의존해서 병을 진단하지 않는다. 현대 의술이 오늘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최첨단으로 발달한 검사 장비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의사가 환자의 말에만 기울여서 처방을 내린다면 상당히 많은 오진을 범할 것이다. 물론 환자의 말은 어느 정도 질병의 단서를 제공하지만,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병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House (source from : http://www.fox.com/house/)

지금까지의 얘기와는 반대로 100% 환자를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현실은 아니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살아 있는 캐릭터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는 Fox의 House라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House라는 의사다. House는 동료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써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신체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는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환자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환자는 항상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그가 가진 지식과 검사 결과만을 가지고 병의 원인을 알아낼려고 한다. House 박사의 두뇌 싸움과 이 사이에 환자들이 하는 거짓말과 진실이 교묘히 어울려 극적 재미를 높이는 것이 이 드라마의 관전 Point다.

S/W 개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보자. PL(Project Leader)과 개발자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B 개발자가 담당하고 있는 A모듈에 Delay가 생겼다고 해보자. 보통 지연이 예견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프로젝트에서는 지연이 발생하기 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즉, 개발에 지연이 생기고 나서 PL은 지연 사유를 알고자 한다. 마치 환자가 병이 나서 의사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이 때 PL이 지연 사유를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B 개발자에게 가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의사가 환자를 문진하는 경우와 같다. 여기서 유능한 PL과 일반적인 PL이 나뉜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PL이라고 한다면, 개발자가 지연의 사유라고 말하는 것을 100% 믿지 않는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혜안으로 개발자가 지연 사유라고 말하는 것의 넘어에 있는 진실을 본다. 하지만 경험이 적거나, 개발자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PL이라고 한다면 개발자의 지연 사유를 99.999%의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런 무한 신뢰 내지는 경험 없음은 의사가 환자의 말만을 믿고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검사가 동반되지 않는 문진은 오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험 많은 의사의 경우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경험 없는 의사의 경우 오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에 대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S/W 개발 프로젝트에서 지연에 대한 정확한 사유를 알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사 데이터가 필요하다. PL이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개발자의 말을 듣는다면, 의심 받는 개발자와 의심하는 PL 사이에는 불신의 벽이 자리 잡아, 오진으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큰 타격을 프로젝트에 줄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이 최첨단의 검사 장비로 무장하는 것처럼 PL은 개발 지연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다양한 검사 장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검사 장치로는 Unit Test, 상세한 개발 명세서, 버그 관리툴, 형상 관리툴 등이 해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검사 장치는 설계자, 개발자, PL 3인이 합의해서 만들어낸 개발 계획이다. 어느 정도 High Level Design(HLD)이 완료된 후 각 개발 담당별로 모듈 개발이 할당된다. 이 때 개발 계획을 PL이 짜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할당된 HLD를 기준으로 개발자가 Work Breakdown Structure(WBS)를 만들어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해당 개발자가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한 데이터가 있다면 해당 개발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이력 정보를 토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가 수립한 계획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새로 투입된 개발자라 한다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개발 계획을 수립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개발 계획을 갱신하게 함으로써 부족한 이력 정보를 보충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신규 개발자가 프로젝트 중반이나 후반에 지연을 한다면, 지연 부분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동안 축적된 이력 정보를 이용해서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개발 계획을 가지고 지연이 발생했을 때 검사할 수 있는 상세한 방법은 다음 Post에서 말하겠다.)

House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House 박사가 냉혈한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물론 박사의 차가움이 극의 전반에 흐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House 박사의 인간에 대한 열정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즉, 따뜻한 휴머니즘을 기본으로 한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허준을 최고의 명의의 반열에 올려 놓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의술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마찬가지로 PL도 냉철한 지성으로 발생되는 지연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냉철한 지성만으로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블로그 vs 블로그 아닌 것

Sunday, January 22nd, 2006

논리학은 수학일까? 아닐까?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서 참과 거짓을 밝힌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논리학은 수학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명제가 지니고 있는 이념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면 논리학은 수학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백인이거나 백인이 아니다.

위의 문장은 배중률에 의해 항상 참이다. 즉,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명제와 이 명제의 부정인 “인간은 백인이 아니다” 라는 두 명제는 똑같이 참일 수 없다. 만일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인간은 백인이 아니다”가 거짓이 되며, 반대일 경우에도 한쪽이 거짓이기 때문에 다른 명제는 자동으로 참인 명제가 된다. 따라서 두 명제를 합쳐 놓은 위의 예제는 항상 참이 되는 “항진 명제(tautology)”가 된다.

하지만 단순한 참과 거짓의 논리학 문제를 떠나 위의 명제는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숨어 있다. 일단 명제는 “인간은 백인이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서 백인이 아닌 인간을 분리해 낸다. 즉 백인만이 인간일 수 있다는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배중률에 입각해서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명제는 무한히 생산해 낼 수 있다. 아래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항진 명제들이다.

너는 공산당이거나 아니다.
정당은 열린 우리당이거나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거나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자이거나 아니다.

가치 중립적인 논리학이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식의 항진 명제는 곧바로 구호 정치로 연결되며, 토론이 존재하지 않는 선동적인 정치 노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진명제를 이용해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항진명제에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항진명제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명제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숨어 있나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럼 이 Post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항진 명제를 꺼내 보겠다.

블로그라 말하는 것은 블로그이거나 아니다.

그렇다면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가치 판단의 준거는 무엇일까? 단순히 RSS Feed를 제공해 주고, 시간역순으로 Post를 뿌려 주고, Track back을 제공하면 블로그인가? 기술적인 것들이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초기 블로그를 기획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런 초기 정신에 가깝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고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블로그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펌으로 채워진 이쁜 Layout에 RSS를 제공하고 comment를 달 수 있다고 해서 블로그라 말하면 안된다.

펌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서구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의 역사라고 한다. 즉, 그리스 철학 이후에 나타난 서구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철학을 지속적으로 인용하면서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내가 지금 Post하는 “블로그 vs 블로그 아닌 것”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야기했고 어디서 읽은 자료를 내 스스로 정리해서 이 Post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펌도 펌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펌을 했을 때 적어도 그 펌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의견 더 크게 보자면 새로운 지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그것 또한 블로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왜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까? 제대로된 블로그 문화를 정착하기 위함이 첫번째 이유고, 지적 소유권과(지적 재산권이라 함은 다소 편협한 의미가 있는거 같다.) 창작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Web 2.0의 사회에서는 사용자가 앞단에 나타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Web 2.0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집단 지식과 사용자 참여라 생각한다. 따라서 단순히 사기업의 마켓팅 도구와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서 블로그와 블로그 아닌 것을 구별 짓는 것은 Web 2.0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처음 예로 든 부분은 이진경의 수학의 몽상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