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2006


한기총의 “다빈치 코드” 상영 금지 가처분에 대해서…

Friday, March 31st, 2006

일단 nKino의 기사 하나부터 살펴 보자.

[스페셜] 툭하면 상영금지 태클, 아니 왜? - 상영금지에 얽힌 사연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참~ 내가 모르고 지낸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게 있다. 어떤 영화가 자신의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경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명예를 손상시킨다고 판단될 때 이해 당사자는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당연하다. 자신이 손해보는 판국인데, 체면 차린다고 뒷자리에 물러서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다. 그런데 위의 기사에는 안나왔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도 엄청난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극장 간판이 걸렸다.

법원 ‘예수의 마지막 유혹’ 상영금지 기각

그런데 반대로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유대교쪽에서 엄청난 반대에 직면했을 때,(영화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원인을 유대인였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전했다. 이유는 예수 고난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기독교의 교리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종교계 반응은?

물론 표면적으로 종교적인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동안 가처분 소송 영화처럼 “다빈치 코드”도 자신의 이해 관계와 맞지 않는 이유로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에서는 이 소송을 받아들일까? 일단 쉽지 않은 문제다. 소송의 원인 자체가 종교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그리는 허구 사건이 기독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이에 앞서 이 영화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예수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글쎄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그런데 한기총이 소니에 낚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까? 소니가 낚지도 않았는데 낚이면 대략 난감이다. 소니에서는 일면 한기총의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이 홍보를 해 주니 내심 좋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사람”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소에 나쁜x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새삼 확인 했을거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엉터리 영화라고 감독에게 욕지거리를 날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본 사람은 그냥 시시한 영화였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뮤지컬 아이다 관람 후기

Tuesday, March 28th, 2006

아이다를 보고 좀 늦은 공연 관람기를 올려 본다.

약 한달 전에 뮤지컬 아이다를 관람했다. 새벽까지 마신 술에 몽롱한 상태에서 관람을 했지만 수작 이상의 공연이었다. 내가 본 공연은 아이다역에 옥주현氏, 라다메스역에 이건명氏, 암네리스역에 배해선氏, 조서역에 성기윤氏 였다. 소위 말하는 옥아이다였다.(옥주현氏가 아이다로 나오는 공연을 옥아이다라고 부른다.) 아이다 공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옥주현氏 공연을 좋게 평가하는 글이 절대다수이다.

http://www.musical-aida.co.kr/

그런데 옥주현氏의 공연을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녀는 뮤지컬을 잘하는 가수지 아직 훌륭한 뮤지컬 배우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사 전달 능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대사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뮤지컬이 노래와 춤이 핵심이지만 극의 전개상 정확한 대사 전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사 전달 능력은 훌륭한 뮤지컬 배우가 지녀야할 덕목이다. 또한 표정 연기가 아직 전문 배우에 비해 뒤쳐진다. 다른 사람은 못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옥주현氏가 노래할 때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자꾸 핑클 때의 특유의 가창 모습이 나와서… 핑클 공연인지 뮤지컬인지 좀 헷깔렸다.

외국 유명 뮤지컬의 경우 주연을 맡은 배우는 뮤지컬에만 전념한다는데 옥주현氏는 좀 욕심이 많은 편인거 같다. 뮤지컬, 요가학원, 방송까지 겸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에 반해 조연이지만 암네리스역의 배해선氏의 공연은 매우 훌륭했다. 백치미 넘치는 푼수 암네리스 공주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또한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 보내야 하는 여자와 한나라의 군주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2005년 뮤지컬대상 트로피의 주인다운 공연이었다.

암네리스역의 배해선氏 source from http://www.haesun.net/

또한 조서역의 성기윤氏도 악역으로써 갖추어야할 카리스마가 넘쳤다.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정도의 무대 장악력을 지닌 배우다. 앙상블 또한 나날이 발전해 가는 느낌이다. 조연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앙상블들이 늘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양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 그릇을 채울려는 욕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 공연이었다.

청춘 만화 관람기(스포일러 포함)

Monday, March 27th, 2006

설렘 혹은 기대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 그냥 그런 이성만 만나도 대박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기대 만빵으로 나간 자리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이성이 나왔을 때 애쓴 주선자를 탓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기대 속에 자신의 욕심을 숨기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렇다. TV에서 보여주는 Digest를 보고, 인터넷과 광고에 나오는 Trailer만 믿고 극장을 찾았다가 실망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권상우, 김하늘 주연의 “청춘만화”는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볼 만한 영화도 없고 시간이 맞는 영화가 없어 보게된 영화였지만, 기대 이상의 감동을 준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장르를 추측해 보자! 단순히 제목과 주연 배우, 포스터를 보고 추측을 해보면 청춘 애정 영화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청춘 만화에 대한 나의 기대치였다. 매우 낮은 기대치다. 권상우, 김하늘이 주인공이었던 동갑내기 과외하기 정도의 알콩달콩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라 생각하였다.

권상우(지환 역)와 김하늘(달래 역)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둘은 친구와 연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지환은 성룡을 꿈꾸는 대학생으로 달래는 배우를 꿈꾸는 성인으로 자란다. 지환의 경우 스턴트맨과 태권도 전공을 겸하면서 자신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간다. 이에 반해 달래는 배우로써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관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자뻑 이상의 실력을 보이지만 한 사람의 관객만 있다면 진동 모드처럼 심장이 뛰어서 제대로된 연기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달래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이 영화의 재미는 주인공 사이에 오고가는 우정과 사랑의 감정 싸움과 더불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젊은이의 노력에서 주는 훈훈함에 있다. 진짜로 캐스팅 되고 싶은 영화 오디션에서 떨어진 달래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버스에서 연기 연습을 한다. 그런데 우연잖게 같은 버스에 지환이 타고 있었다. 지환은 그 전부터 달래의 약점이 관객 기피증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의 약점을 극복하게 도와줄려고 노력하였다.(물론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본심만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지환 옆에 앉은 깡패 비슷한 놈의 달래의 연기 연습을 방해하자, 백마 탄 왕자로 변신 달래의 연기 연습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달래는 버스에서 연기연습에 자신을 얻어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같은 시각 지환은 고난이도의 스턴트 연기로 자신의 꿈에 한발 더 다가선다. 만일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었다면 그냥 그런 연애 영화로 끝날 수 있다. 이한감독(드라마 보디가드, 영화 하늘 정원, 연애 소설)도 그냥 그런 연애 영화로 끝내기는 싫었나 보다. 지환은 스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불행하게도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지환의 다리가 잘리자 영화는 청춘 만화가 아니라 암울 만화로 변한다.

그러나, 이 부분 때문에 영화는 진부한 청춘 남녀 러브 스토리를 벗어난다. 지환은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대사를 영화 초반부에 한다. “성룡은 5번이나 혼수 상태에 빠지고 몸에 철심을 박고 산다면 난 6번이나 혼수 상태에 빠지고 로보캅이 될거다.” 자신의 꿈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대사지만, 사실 지환의 극 마지막의 상태를 암시하는 대사였다. 지환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방황을 하다 달래가 지환을 위해 만든 비디오를 보게 된다. 그 비디오에는 몸이 불구가 되었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운동 선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지환은 다시 한번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어려운 문제의 절반은 현명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 했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다지 난해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당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해답의 절반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혹자는 질문이 영화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나도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상대를 날 수 있게, 한 때는 날았지만 날개를 잃어 좌절하는 상대를 보듬어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날려는 상대를 세장 속에 가두거나, 뛰지도 못하는 상대를 날게 만들려고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기대하는 사랑을 만들기 위한 나의 욕심이다.

결국 사심 없이 본 영화에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내 글을 읽고 이 영화에 대한 많은 기대를 하길 바라지 않겠다. 사심을 버리고 본다면 얻을 것이 많지만, 부푼 기대를 채울만한 것이 많은 영화는 아니다.

황교수 사건 2막의 시작일까?

Sunday, March 26th, 2006

KBS의 간판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추척 60분”이 황우석 사건의 또다른 측면을 취재했다고 한다. 인터넷을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MBC 경영진이 PD 수첩의 방영을 막았듯이, KBS 경영진도 해당 프로그램의 방영에 대해서 고민(?) 중이란다. 물론 경영진과 테스크 사이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논의의 핵심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마전 형태로 흐르는거 같다. 이와 관련된 읽을 거리를 모아 두었으니 각자 읽어보고 주관을 가지고 판단하길 바란다.

추적60분, “황우석 사태 뒤집는다”
서프라이즈 황우석 사건 관련 게시판
문형렬 PD도 박수받을 자격있다(한겨레 게시판)
왜, 문형렬 PD는 각인검사를 서정선에게 확인 의뢰 하였을까?
KBS 정연주사장에게 보내는 공개장 - 고준환
사장은 ‘MBC 좀 더 비판’ 주문하고 국장은 ‘돌아서야 한다’는 건의 묵살
“황우석 신용카드로 고급술집 드나든 기자 있었다”

일단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해야할거 같다. 언론의 자유는 어떤 상황 속에서 보장이 되어야 한다. MBC 사태 때에는 황교수의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PD 수첩이 여론의 십자 포화 속에서 방영 안되었다면, 이번 KBS의 추척 60분은 황교수의 지지도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수준이기 때문에 KBS 경영진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언론은 Fact에 기본한 보도를 하면 된다. Fact를 조작하여 자신의 이익에 맞게 보도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 할 수 없다. 그러나 Fact에 기초한 보도라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도 보도 금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Fact의 진위 여부다. 진위 여부는 2차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Fact의 사실 여부는 다른 언론 매체에서 검증하면 된다. 언론이 검증할 수 없다면 서울대 조사위가 그렇듯이 말 그대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검증해 주면 된다.

솔직히 KBS의 보도가 Fact에 기초한 것인지, 날조에 기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추적 60분이 날조된 Fact를 기반으로 보도를 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임을 알것이다. 그것은 보도 이후의 문제이다. 그러나 보도를 원척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근본을 없애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황교수 연구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황빠와 황까가 있다. 황빠는 황교수에 미친 사람들, 황까는 황교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일반 국민이 있다. 5:5의 완벽한 균형잡힌 시선을 갖춘 사람은 없다. 황교수 논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대 다수의 국민은 황까 혹은 황빠 쪽에 미세하나마 가깝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황까나 황빠가 아니다. 황까도 황빠가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며, 황빠도 황까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언론은 그 누가 독점할 수 있는 사유 재산이 아니다. 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 누구의 독점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공재이다. 태양 아래 모든 진실이 파헤쳐지기 위해서 그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