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6


바벨탑

Thursday, November 30th, 2006

ISP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PDM(Product Data Management, 제품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 단계인 셈이다. 컨설팅하고 있는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기구[주1], H/W, S/W로 구성된 제품이다. 따라서 기구, H/W, S/W 도메인의 컨설턴트가 참여하고 있다. 다들 각 분야에 저마다 전문성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S/W 분야의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ISP 프로젝트의 성격 상, 일의 절반은 회의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Communication Cost(CC)가 무척 높다. 그런데 이 CC가 높아지는 결정적인 원인은 각 도메인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회의의 가장 큰 논쟁거리였던, “Issue”라는 말이… 각 도메인에서 온 컨설턴트마다 달랐다. 따라서 이 “Issue”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맞추는데 회의의 2/3 시간을 보냈다. 결국 국어를 말하고 있지만, 각 도메인의 컨설턴트는 서로 다른 바벨탑의 층에 있었다.

바벨탑의 층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맨 아래는 분석가, 그 다음은 설계자, 개발자, 테스터 순… 그리고 탑의 맨 꼭대기에는 신의 나라로 가는 문이 있다. 이 문에 도달하기 위해서 분석가, 설계자, 개발자, 테스터가 마음을 모아서 탑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저마다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이 달랐어도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 조금만 있었다며, 탑을 쌓는 일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두번의 대화 실패는 마음의 벽을 쌓고, 전체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탑을 쌓게 한다. 그러나 균형이 맞지 않은 탑은 천국의 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만다.

내가 애자일 방법에 매료된 이유는, 이런 대화의 장벽을 없애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바벨탑을 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자일 방법을 진실로 적용한다면, 자연스럽게 팀원을 모니터 앞에서 Communication 자리로 나오게 한다. 여기서 진정한 팀웍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Communication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은 다른 층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내심과 진짜로 열려 있는 귀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땅위에서 세상을 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1 : 일반적으로 기계가공으로 만들어 내는 부품, 핸드폰 커버같은 제품의 외형을 기구품이라고 부른다.

그림 그리기… 계획의 비법

Monday, November 27th, 2006

도덕적 상상력이라는 게 있다.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겠다.

장면 1 : 철수가 길을 가다가, 천원을 주웠다. 길에 떨어진 돈을 발견하면 경찰서에 갖다 주라는 말을 늘상 들었던 철수는 아무 생각없이 천원을 경찰서에 갖다 주었다.

장면 2 : 영희가 길을 가다가, 천원을 주웠다. 길에 떨어진 천원을 보자,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보았던 케로로 피규어가 떠올랐다. 영희는 케로로 피규어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 돈을 잃어버려서 안타까워할 주인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똘망똘망한 케로로 피규어가 눈에 선했지만, 가슴 아파할 주인 생각때문에 영희는 천원을 경찰서에 갖다 주었다.

결과적으로 철수와 영희, 두 어린이 모두는 착한 어린이다. 그러나 차이라면… 철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떨어진 돈을 아무 생각없이 경찰서에 갖다 줬다. 이에 반해 영희는 케로로 피규어를 사고픈 욕망이 들었지만, 돈주인의 애달픈 마음이 떠올라서 천원을 경찰서에 갖다 줬다. 영희처럼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 상상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올바른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련의 심리적 기제를 쉽게 말하면 도덕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물론 철수처럼 철저한 도덕교육을 시켜서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철수같은 사람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러기 위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한다는 작업 지시”식 교육을 해야하기 때문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희처럼 도덕적 상상력을 키워 준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개인은 도덕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윤리 수준이 높아진다.

이 도덕적 상상력의 핵심은… 바로 그림 그리기다. 도덕덕 상상력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구체적인 이미지는 결국 현재의 행동 양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 상사는 그림 그리기라는 말을 좋아하셨다.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그림이 파워포인트의 그림을 뜻할 때가 더 많았지만, 어떤 일을 할 때 일이 끝났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고, 그 상황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라는 뜻이었다.

연말이다. 물론 올해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슬슬 내년 농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직장에서 사업부 단위나 부서 단위로 내년도 사업 계획을 이미 끝냈을 시점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의 내년 목표가 정해진 이 시점이, 자신의 내년도 목표를 정하기 적당한 시점이다. 가장 이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은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이 일치하는 것이다. 비전이 일치할 때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비전과 회사의 비전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내년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아무튼 앞서 말한 이유로, 내년도 계획을 세울 시기가 슬슬 다가왔다. 도덕적 상상력과 회사의 사업 계획을 들먹이면서, 오늘 post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개인의 신년 계획 세우기를 도와줄 팁이다. 신년 계획을 세울 때 보통은 아이템 기반으로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자면, 어학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토익 900점이상 달성”,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 “매일 30분 운동” 등을 목표로 세운다. 그러고 나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첵적인 실행 방안을 계획한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지난 날에 수 많은 목표를 설정했지만, 20%정도 모자라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신년 계획 세우기 방법은… 내년 이맘 때의 구체적인 하루 일과를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서 그려보라는 것이다. 특히, SI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면 내년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어떤 개발자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코딩과 버그 잡기 때문에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고, 이런 일상이 지겹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현실을 탈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직이나 전직이라는 목표로는 뚜렷한 실천 방법을 얻기 힘들며, 달성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의 하루 생활을 그려 본다면, 이직의 방향성과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개발자가 이런 그림을 그린다면 어떨까?

아침 9시 경쾌한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온다.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과 오늘의 일정을 확인한다. 10시에 개발팀과 새로운 기획안에 대한 회의가 잡혀 있다. 이 기획안은 일주일동안 시장 조사와 고객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만든 기획안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개발될지 무척 기대가 크다. 이 회의가 끝나면 영어회화 스터디 그룹과 점심 약속이 잡혀있다. 일주일에 한번 스터디 그룹 사람과 점심에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 식사를 한다. 이 스터디 그룹은 6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 스터디 그룹 덕분에 영어 실력이 상당히 늘었다. 2시부터는 협력업체의 개발 진척 상황을 확인할 예정이다. 조인트 프로젝트 형식이어서 기획안만 회사에서 만들고, 개발은 협력업체와 진행 중이다. 주도적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들어서 브레인스토밍이라던지, 여러 회의를 주재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회의를 끝내면 5시부터 한 시간정도 온라인 MBA 과정을 듣는다. 기획을 하다 보니 MBA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린 개발자는 자신이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기획자로 전직”이라는 목표보다 더욱 현실적이며, 달성하기가 용이하다. 이런 그림 그리기는 365개의 벽돌이 쌓여서 집이 되는 설계도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존경

Tuesday, November 21st, 2006

나이를 먹으면서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존경하는 인물이 하나씩 사라질 때가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 잣대나 윤리 의식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아름답던 세상의 이면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어렸을 적, 그다지 중요한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무척 소중한 것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크게 보았던 것은 하찮아지고, 작았던 것을 다시 발견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아껴 쓰기에도 모자라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나를 잘 알아서 어쩔 때는 귀찮게도 하지만 그런 이해가 흔하지 않다는 사실에, 늦은 근무를 마치고 천근같은 발걸음을 옮길 때 건강의 소중함에… 그리고 돈 벌기가 공부하기보다 더 어렵고 가끔 치사한다는 생각이 들 때, 어릴 적 쳐져있던 아버지 어깨 위에 내가 느끼는 만큼의 삶의 무게가 놓여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남자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시기는 아버지를 한 남자가 아닌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즉,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단지 상상력이 뛰어난 것만으로 타인의 삶을 가늠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따라서 걸어 봐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서야 난 아버지가 걸어오신 인생길을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반대로 내가 십칠년 전에게 걸어왔던 길 위에 아버지가 계신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아버지에게 더블 클릭을 알려드리느라 고생했던 일이 엊그제인데, 오늘은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아버지 : Hani야. 블로그가 뭐냐?
나 : 블로그요? 왜 그러시는데요?
아버지 : 블로그에 글 같은 거 올린다고 하는데, 맞니?
나 : 내… 맞죠. 글 올리실려고요.
아버지 : 그래. 블로그 만드는데 돈 안 들면 하나 만들어 줘라.

컴퓨터를 만지는 젊은 사람들도 관심을 두지 않는 블로그 세계까지 아버지는 어느새 오셨던 것이다.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 보고 있으면 진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다는 생각이 든다. 패배주의에 빠져서 자신과 타협할 때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시는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을 다잡곤 했다. 이럴 때마다 내 마음 한 곳에는 존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곤 한다.

자동차 전자기술 워크샵

Thursday, November 16th, 2006

15-16일, 이틀간 현대-기아자동차와 전자공학회가 주최한 자동차 전자기술 워크샵에 다녀 왔다. post를 더 풀어가기 위해서 자동차 도메인 용어 두 가지를 정의하겠다.

OEM :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 OEM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현대-기아자동차, GM 대우, 르노 삼성이 OEM에 속한다.

Tier1 : 일종의 1차 협력회사라고 보면 된다. OEM에서 사양을 내려주면 Tier1에서 사양에 맞는 부품을 개발한다. 따라서 Tier2, Tier3… 이런 식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Tier1이 OEM보다 더 큰 경우가 있다. 지멘스와 보쉬가 여기에 속한다.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ECU(Engine Control Unit)의 경우, 안전도가 무척 중요하다. 즉, 차가 달리는 중간에 ECU 안에 들어간 S/W가 윈도우처럼  뻗어 버린다고 상상해 보자. 끔찍하지 않은가? 따라서 ECU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만든 Tier1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왠만한 OEM보다 보쉬나 지멘스 같은 회사가 더 크다.

이번 워크샵은 국내외 OEM(물론 HKMC, Hyundai Kia Motors Company만 참가했지만…), Tier1, 대학, 연구소, 반도체 업체 등 자동차의 전장 부품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워크샵의 발표 내용은 소개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자동차 쪽의 HW와 SW의 놀라운 성장을 알리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기계, HW, SW 순으로 발전한 다른 산업 분야의 동향을 반추했을 때, 지금 자동차 산업은 SW의 발전 사이클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