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6


예전에…

Thursday, November 16th, 2006

예전에 철이 안 들었을 때…

前직장의 같은 부서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했던 선배 사원에게 S/W 쪽에는 본받을만한 Role model이 없다고 불평했다. 한마디로, 前직장에서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는 뜻도 포함했던거 같다. 이렇게 말하니 돌와오는 한마디.

Hani씨가 그런 Role model이 되면 되잖아!

띵~ 나의 불평이 짜증나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선배 사원의 피드백 한마디 덕분에 작지만 여운이 깊은 반향이 내 마음에 울렸다.

그렇다! 없으면 하나 만들면 되지…

그러고 나서,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그 때의 결심대로 난 가고 있을까? 내 인생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의미 없는 삶이 아니지만, 예전에 이런 고민을 했던 나 자신과 같은 누군가에게 약간의 실마리도 제공해 주면 나름 의미있는 삶의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먼 미래… 자아 계발

Wednesday, November 15th, 2006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 TV 서핑을 하다, 어릴 적 재미있게 시청했던 Star Trek: The Next Generation이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추억에 풍덩 빠지자는 생각에 시청을 결심했다. 그런데… 피카드 선장과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가수(한 때 유명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간부터 봤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사이의 대화 덕분에 잠이 달아났다!?

가수 : 지구에 돌아가서 뭘하죠?
선장 : 그게 무슨 소리죠?
가수 : 이미 수백년 전에 제가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죠.
선장 :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가수 : 그리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 필요도 없는데, 뭐 때문에 일하죠? 인생이 허무하군요.
선장 : 뭘 모르시는군요. 바로 당신이 있잖아요. 끊임없는 자기 계발… 평생 자신을 탐험할 수 있잖아요. 즉, 바로 당신이 인생의 목표죠.
가수 : ^________________^

(대략 이런식의 전개였다.)

이 대화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을 집필할 때, 당시 상황은 가진 것이라고 몸뚱이 하나뿐인 무산 계급자들이 만연한 사회 모순 때문에 폭동 직전의 상황처럼 보였을 것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감명받은 마르크스가 유토피아를 얼음 송곳같이 냉철한 마르크의 논리로 풀어낸 것이 자본론이지만… 어쩌면 마르크스나 토머스 모어가 본 과잉 생산과 불평등의 계급 사회는 지금이 아닐까 한다. 물론 푸코가 말하는 미시 권력이 유비쿼터스하게 삶의 곳곳에 숨겨져 있어, 현실적인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의 부재일 뿐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24세기, 지구인은 더 이상 좁아터진 지구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관두고 공공의 적을 향해, 아니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서 우주로 떠난다. 아~ 더 이상, 생계를 위한 노동은 사라진 시대. 인간의 육체 노동은 기계가 대신하고…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킬 자원은 우주 식민지에서 얻는구나. 결국 마르크스의 꿈은 사상의 힘이 아닌 과학의 힘으로 해결되니. 지하에 잠든 마르크스가 좀 섭섭하겠군. 지상 낙원이 지구이니. 이제 진정한 탐험은 우주와 자기 자신으로 향하고. 그렇다면 우주적인 그리스 시대가 펼쳐져야 인간은 육체적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인가?

이런 雜생각 때문에, 수면 시간만 짧아졌다.

대단한 포스가 느껴지는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 멎지다!

블로그 1주년

Tuesday, November 14th, 2006

정신없이 한 주를 시작하고 보니, 어제(월요일)가 블로그를 만든지 1주년이었습니다. html 파일 하나를 가지고 블로그라고 우기면서 블로깅을 한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KTX보다 더 빨리 달려서 1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블로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소재만 바닥이 나지 않는다면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그럼 2주년을 기약하며~

위선과 위악

Monday, November 13th, 2006

위선과 위악으로 구글링 해보면 심도 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위선과 위악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이들은… 종교적이거나, 진보 진영이거나, 봉사 단체에 속한 이들이 많다. 아니면 삶의 진정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거나.

위선은 선하지도 않으면서 선한 척 하는 것이다.

위악은 악하지도 않으면서 악한 척 하는 것이다.

위선이나 위악이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기에 50보 100보 수준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나름의 논리로 위선이 위악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더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효용성이나 도덕적 논리를 떠나서 위선이나 위악 모두 참되다는 개념으로 투영해 보았을 때, 그다지 진정하지 못한 개념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한 때 위선이 위악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고 아직까지도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심성이 곱지 않은 이가 다른 이에게 착하게 보이고 싶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이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위선을 떠나서… 위선적인 사람이 베푸는 자선 행위에 적어도 어려운 누군가는 혜택을 받으며, 세상에 악이 넘쳐나는데 위악으로 새로운 악을 하나 더 보태 무엇하겠냐는 누군가의 말에 한편으로 수긍하기 때문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 세상이 조금 씩 좋은 곳으로 향하는 것은 누군가의 작은 실천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물론 위선과 위악을 떠나 진정성이 넘치는 세상이길 바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