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07


괴변이지만.

Friday, August 31st, 2007

내가 아는 어떤 부장님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네 진정한 엔지니어가 갖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나?

언뜻 보면 쉬운 질문 같지만, 이십년 가까운 회사생활을 한 부장님이 녹녹한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잔머리를 굴린 신입사원들이 다양한 답을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부장님의 썩소뿐이었다.

내가 이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질문 뒤에 나오는 부장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기발하신 괴변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엔지니어는 고자질을 잘 해야 해. 왜 그러냐면…

2부에서 계속됨…

괴변론자 #1

괴변론자 #2

‘판도라의 상자’와 ‘행동유도성’ 2부

Tuesday, August 28th, 2007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인에게 제우스는 판도라(Pandora, 모두의 선물을 받은 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런 다음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예쁘게 생긴 조그만 상자 하나를 건네주면서 절대로 열어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거듭 다짐을 받은 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데려다 주었다.

일찍이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받으러 코카서스산으로 끌려가기 전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받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빠져 앞뒤를 재지 못하고 덥석 그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다. 그리하여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되어 지상에서 살게 되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판도라는 제우스가 절대로 열지 말라던 조그만 상자가 생각났다. 그녀는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궁금했다. 참다 참다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여 그 상자를 살짝 열어보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그때까지는 없었던 온갖 재앙과 질병이 쏟아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재빨리 상자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상자 속에 들어있던 것은 다 날아가고 단 하나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어릴 적,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말세 직전의 현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현상에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판도라 여사’가 떠올랐다. 이런 고민은, 호기심 많았던 ‘판도라 여사’가 제우스가 준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젓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상상으로 끝나곤 했다.

상자를 든 판도라

***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란, 사물의 지각된 특성 또는 사물이 갖고 있는 실제적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속성을 말한다. 의자는 받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그러기에 앉을 수 있다. 물론 의자는 운반할 수도 있다. 유리란 들여다볼 수도 있고 깨트릴 수 있는 것이다. 

… 

행동유도성은 사물을 어떻게 다루면 될 것인가에 관한 강력한 단서를 제공한다. 문에 붙은 편편한 금속판은 밀기 위한 것, 손잡이는 돌리기 위한 것, 홈은 물건을 끼워넣기 위한 것이며 공은 던지고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과 인간심리, 도널드 노먼, 학지사

위대한 도널드교수님께서 잘 정리해 놓으신 것처럼, 행동유도성은 사람의 행동을 자극하는 사물의 속성이다. 밤하늘을 장식하는 폭죽에 ‘사람에게 겨냥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아도, 푹죽이 지닌 자태가 인간 깊숙히 자리 잡은 ‘지향사격’이라는 행동유도성을 일깨워 동료에게, 친구에게 폭죽세례를 하게 만든다.

이쯤에서 ‘상자를 연 판도라’와 ‘폭죽을 동료에게 쏘는 사람’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행동유도성’이다.

제우스의 원래 의도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했다. 첫째, 판도라가 안전하게 상자를 운반해야 한다. 둘째, 적당한 시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판도라가 상자를 열기 쉬어야 한다. 만약 제우스가 편집증이 걸린 디자이너라고 해보자. 즉, 안전성만을 고려하여 ‘지문 인식’에 ‘홍채 인식’이 가능한 금고에 질병을 담았다면, 백치미 가득한 ‘판도라 여사’는 아무리 궁금해도 금고를 열지 못했을 것이다.

지문인식 금고, 열기 쉽지 않다!

반대로 질병과 악이 쉽게 퍼지도록 깨지기 쉬운 유리함 비슷한 것에 담았다면, 아무리 백치미 가득한 판도라라도 유리함을 받지도, 받았더라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좋은 디자인의 단초 하나를 얻는다. 설계자가 의도한 기능성과 이 기능성에 맞는 행동을 사용자가 하게 만들기 위해서,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행동유도성을 내포해야 한다. 뻔한가?

그러나 간단한 폭죽 조차도 인간이 남용하거나, 오용할 수 있는 행동유도성이 숨어 있는데,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어떨까? 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나 우리 팀원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어보지 못해서 안달날 정도로 사용하기 편하고 기능성이 높길 바란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이렇게 단순한 것이 쉽지 않았다. 즉, 단순한 것과 쉬운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주식투자 전성시대!

Sunday, August 26th, 2007

금요일에는 오랜만에 옛동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연령대도 비슷해서, 오랜만에 만나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식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주식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 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옛동료들도 조금씩 투자를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밀레니엄 때처럼 주식투자를 요란스럽게 하지는 않지만, 브릭스니, ELS니, 주식형펀드니 다양한 투자용어가 그다지 낯설지 않게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투자(특히 주식투자)가 일반화된 듯합니다.

***

‘종합주가지수 2,000이라는 여의주’를 물고 욱일승천하려던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쌀나라에서 날아온 해괴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돌’에 맞아 정신을 잃고 요며칠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다행히 땅에 충돌하기 직전에 정신을 차린 주식시장은 기운을 차리고 재도약의 몸짓을 합니다.

전대미문한 폭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주식시장 속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식지 않은 것을 보면, 바야흐로 주식투자 전성시대가 열린 듯합니다. 이런 주식시장의 열기 속에서 저도 조금은 주식을 해볼까라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내가 주식을 안하는 이유 1/2‘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저는 2004년말을 기점으로 약 4년간의 주식투자를 정리했습니다.

주식도 예술 작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주식 차트를 보고 언제 매매를 했어야 수익을 올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즉, 후행적인 판단은 주식의 수 많은 지표와 매매 거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적이고 놀라운 수익을 기록하는 주식 거래는 단순히 지표와 매매 거래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주식 지표와 수 많은 이론들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 주식 거래자의 천부적인 능력에 의해 그 매매 타이밍을 예측하는 것에 좌우된다.

에디슨은 “천재는 2%의 영감과 98%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단순히 이 금언을 듣고 있으면 노력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더 뒤집어 생각해 보면 2%가 없는 일반인은 아무리 98%의 노력을 들여도 천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보면 2%의 영감을 가진 천재가 98%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반인이 된다. 하지만 영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노력을 통한 천재의 가능성이 있지만, 피나는 노력을 하는 일반인은 천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물론 98%의 노력이 2%의 영감보다 얻기 힘든 가치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력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천재성은 노력보다는 영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박경철氏 는 주식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구에게나 선동렬처럼 공을 던지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고, 이해시킬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선동렬처럼 공을 던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선동렬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돈 버는 방법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있고, 이해시킬 수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말한 주식 시장에서 천재성, 내지는 예술적 감각의 중요성과 일맥상통한다.

From 내가 주식을 안하는 이유 2/2

위의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간단히 말해 저는 천재에게 필요한 2퍼센트의 영감이 없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손을 털었습니다. 즉, 제가 주식투자로 돈을 잘 벌었다면 아직도 주식투자에 빠져서 대망의 종합주가 2,000의 시대를 다른 개미들과 즐겼겠죠.

어찌보면 모자른 투자실력에 대한 변명이겠지만,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지 못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천재적인 실력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밥벌이의 주식투자 실력이 있었다면, 철부지 시절(?) 지금보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번역이라는 새로운 세계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그리고 talk-with-hani.com이라는 나만의 세계도 구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상상을 합니다.

이런 글을 쓴다고 주식투자가 의미없으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라는 말처럼, 투자가 어떤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그 책임은 개인에게 있습니다. 즉, ‘주식투자’라는 가치중립적인 행위는 개인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는 여백의 도화지인 셈입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고, 투자하시는 분들!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앞으로의 주식시장을 가장 잘 분석한 글 한편 소개드립니다. 시골의사님의 ‘가치주와의 이별’이라는 글입니다. 제가 읽은 시황분석 글(?) 가운데 이처럼 장기적이면서 핵심을 짚은 글은 없는 듯합니다.

황소야 미쳐라!

아가랑 아이폰이랑

Wednesday, August 22nd, 2007

1살짜리 아기가 아이폰을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