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 cycle과 기술적 환상지대
Thursday, September 6th, 2007jwmx님 블로그에서 놀라운 3D프린터 ZPrinter 450 포스트를 읽었습니다. 일단 아래 유투브영상부터 보시죠.
동영상에 나오는 ZPrinter에 사용된 기술을 Rapid Prototyping(RP)이라고 합니다. 기술만 보면 무척이나 간단하죠. 한층 한층 쌓아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죠. CT나 MRI촬영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즉, 사람의 단면을 찍은 CT나 MRI 사진을 한장 한장 붙여서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것과 동일합니다.

source from http://azom.com
위의 그림은 RP공법 가운데 하나다. 용액 상태의 레진(Resin)을 레이저로 굳혀서 단면을 적층하는 방식이다. 즉, 빌드 플랫폼이 아래방향으로 조금씩 내려가면서 굳어진 레진이 한층씩 쌓여 형상이 완성된다.
RP의 장점은 뭘까요? 아래 그림처럼 일반적인 기계가공으로 만들기 불가능한 형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플라모델처럼 접착제를 사용해서 부품을 붙여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RP를 사용하면 여러공정(금형을 파고, 사출을 해서, 부품을 떼어내어, 플라모델 만들 듯이 접착제를 붙이는 일련의 공정)을 걸치지 않고, 한번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RP기술이 막 꽃을 피기 시작했을 때, 기존의 기계가공법을 혁신적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가 학회에 만연했었죠. 우리나라에 RP가 도입되어 여러 시도가 될 때, 저도 RP를 이용해서 논문을 썼습니다. 예전 이야기를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source from http://bvk.nu:8080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많은 사람들이 RP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연구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 고전적인 기계가공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은 약간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게 하는 한계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한계는 RP라는 기술이 나올 때부터 있었지만, 신기술에 대한 환상때문에 진실을 애써 외면했었죠. 즉, RP로 만들 수 있는 형상의 크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재료값도 일반 기계가공보다 비쌌으며, 일반 부품에서 요구되는 강도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기술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시장에 관심이 사라지자… 국내에서 RP를 연구하던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즉, 연구의 맥은 유지되었지만, RP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제가 논문을 썼던 연구실도 제가 졸업하고 나서 이삼년 정도 RP를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RP를 도입했던 박사님이 해외로 나가시면서, RP연구를 접었죠. 박사님의 환송회 때, 연구를 같이 했던 선후배가 모여, 푸념조로 ‘대한민국 RP의 한 획이 사라진다.’는 농담반 아쉬움반을 표현하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시간은 몇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ZPrinter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영상 그대로가 사실이라면, RP는 장족의 발전을 했습니다. 즉, 저의 관심 분야에서 잊혀졌지만, 어느새 RP는 대중화의 단계에 접어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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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너는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소개되고 나서, 사람들이 기술에 미친듯한 열광을 보낸 후에 기술이 가진 한계 때문에 실망을 겪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Hype cycle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소개되면 사람들은 이 기술이 지닌 가치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지닌 한계점과 실제로 기술이 주는 가치가 예상한 것보다 적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죠. 즉, 이 기술이 세상에 알려진 적이 있었냐는 듯이 관심이 급속히 줄어듭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가치를 알아본 소수 연구자들이 기술의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고, 슬슬 기술로부터 가치를 얻게 됩니다. 물론 이 단계를 거치면서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얻지 못하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한 업체들은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고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X축으로 두고 세간의 관심을 Y축으로 두면, 아래와 같은 전형적인 Hype curve를 얻게 됩니다.
Hype curve from gartner
Hype cycle을 지나는 속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기술들이 Hype cycle을 겪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RP도 Hype cycle의 굴곡을 지나 성숙한 시장을 형성하게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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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채굴꾼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다. 에메랄드 하나를 캐기 위해 오 년 동안 강가에서 99만 9천 9백 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마침내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그가 에메랄드를 캐기 위해 돌 하나만, 단지 돌 하나만 더 깨뜨리면 되는 그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아의 신호, 그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노인은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다. 노인은 한 개의 돌멩이로 변해서 채굴꾼의 발 앞으로 굴러갔다. 오 년 동안의 보람 없는 노동에 한껏 화가 나 있던 채굴꾼은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가 던진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혔다. 그리고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루비 온 레일스’가 국내에 소개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초기에 레일스가 국내에 소개될 때 그 뜨거웠던 열기가 생생합니다. 레일스도 기술이기 때문에, Hype cycle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뜨거웠던 열기는 인터넷의 속도처럼 식어버리고, 레일스는 사람들의 뇌리 어딘가에 그 흔해빠진 프레임워크로 기억에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의 열기는 사라졌지만, 영롱한 에메랄드를 찾아 돌을 캐내는 채굴꾼처럼,묵묵히 레일스를 탐구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언제가 루비는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낼지도요.

source from http://johnwlong.com
* 레일스에 대한 세간의 관심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술의 가치를 알기 전에,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두는 제 이야기일 수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