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7


번역의 즐거움

Tuesday, November 13th, 2007

제가 번역을 틈틈이 한다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Hani씨! 번역하면 수입이 괜찮은가요?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 한권을 번역했을 때 얻는 수입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번역으로 얻는 수입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에 조금 아쉽습니다. 아쉽다기보다는 다소 밋밋하다는 것이 맞겠죠.

괜찮은 돈벌이라고 표현할 때, 기준은 단위시간 당 투자한 노력 대비 뽑아내는 수익이 높을 때를 말합니다. 즉, 조금 일하고 많이 버는 돈벌이가 괜찮은 셈이죠.

그렇다면 번역은 투입된 노동력 대비 뽑아내는 수익이 괜찮은 일일까요?

전문번역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제 경우를 봤을 때 한장 정도를 번역하는 데 빠른 경우 30분 오래 걸리는 경우 1시간이 걸리죠. 더 심할 때는 2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최초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이 이 정도입니다.

저는 공동작업을 하기 때문에 제가 맡은 부분이 끝나면, 공역자인 태중씨가 번역한 부분을 검토하죠. 검토라고는 하지만,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보기 때문에 초벌번역과 비슷한 시간이 들어갑니다.

교차 검토가 끝나면 다시 상대 공역자가 검토한 원고를 살피는데, 이 때는 초벌번역이나 검토보다 더 적은 시간이 들어갑니다(물론 적은 시간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정리하자면, 초벌이 완성되기 위해서 

최초 번역 → 공역자 검토 → 검토결과 확인 → 초벌 완성

대략 4단계의 공정을 마칩니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는 출판사에 넘어가고 출판사에 따라서 후반작업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지만, 2-3번의 교정 교열 작업을 거치죠. 이 때도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됩니다.

여기에 베타리딩까지 더해진다면, 베타리더분들과 메일교환을 한다거나, 검토해주신 원고를 읽고 수정작업 등이 추가됩니다.

번역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생각보다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실겁니다. 본문을 번역하는 데 이 정도 작업이 필요하고, 이외에도 색인작업, 역자서문, 인터넷 마케팅 자료 등등 여러가지 부과적인 작업을 출판사와 같이 진행합니다.

번역을 떠나서 어떤 전문분야든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복잡다단한 프로세스가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만이 어려운 작업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문직업에는 존경받을만한 전문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번역작업도 전문성이 존재하는 작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긴 글을 할애했습니다

다시 오늘 포스트를 작성하게된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과연 번역은 괜찮은 돈벌이인가요?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번역에 투입되는 노동력은 무척 많습니다. 즉, 분모가 큰 돈벌이입니다. 그렇다면 번역을 통해 얻는 수익이 높아지기 위해서 분자가 커져야겠죠?

'번역가 숫자-번역 실력' 그래프

번역가 실력에 따른 번역가 숫자를 제 마음대로 그려본 그래프입니다. 전형적인 정규분포 그래프죠. 통계학적으로 의미있는 그래프는 아니지만, 자연현상은 대개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수학정석’에 기초해서 그린 그래프입니다.

'번역가 숫자-번역 수입' 그래프

위의 그래프는 번역수입에 번역가 숫자를 대응시킨 것입니다.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X축인 번역수입은 번역실력에 밑이 100인 Log를 취한 것입니다. 즉, 실력이 100배 뛰어나더라도 수입에서 봤을 때 뛰어난 번역가나 그저그런 번역가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 그래프가 대한민국 전문번역가의 처우를 나타냅니다.

자! 이 정도면 ‘번역을 하면 돈벌이가 괜찮나요?’라는 질문에 어느정도 대답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돈’이 모든 가치척도의 기준인 자본주의에 살지만, ‘돈’을 중심으로 놓고 보았을 때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번역작업도 ‘돈’을 놓고만 보았을 때 가치가 떨어지는 작업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수많은 번역가들은 적은 경제적인 보상에도 불구하고 번역작업을 하는걸까요!

무척이나 주관적인 해답이지만 다음 그림이 이런 질문에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번역을 하면 좋은 점

아름다운 한글로 좋은 책을 읽게 해준 번역가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포스트를 마칩니다.

명품, 그리고 아쉬움

Tuesday, November 6th, 2007

에스프레소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를 말한다… 에스프레소(Espresso)의 영어식 표기인 ‘익스프레스(express)’는 ‘빠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 에스프레소 전용 기계로 커피를 추출한다. 이 기계는 1906년에 발명되었는데, 압력은 9기압(bar) 정도이며 20초 안에 30㎖의 커피를 뽑아낸다.

from 네이버 백과사전

지인 가운데 한 명은, 에스프레소를 20초의 미학이라고 불렀다. 잘 갈아놓은 원두커피에서 영혼을 울리는 에스프레소 한잔이 나오는데 20초가 걸린다는 의미였다.

음식에 미학이라는 표현이 과한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른 아침에 환상지대를 넘나드는 그의 영혼을 현실 세계로 불러들이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남다른 그의 에스프레소 사랑이 한편으로 수긍이 갔다.

에스프레소 한잔

영혼을 깨우는 에스프레소 한잔(http://www.francisfrancis.com/)

난 지인처럼 에스프레소 사랑이 지극하지도 않고, 하루에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지 못하면 금단현상이 일어나 손이 떨리지도 않는다. 다만, 번역이 막히거나 그냥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 에스프레소에 거품을 낸 뜨거운 우유를 섞은 카푸치노 한잔이 그립다.

먼 거리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갈 정도로 커피사랑이 넘치지도는 않지만, 그렇다고 얼마 안 되는 식욕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다. 가끔 생각나는 카푸치노 때문에, 수백 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집에다 모셔둘 수도 없다.

검색을 해보니, 나처럼 에스프레소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모카포트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증기압이 생명이다. 당연히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에는 여러가지 기능이 있겠지만, 9기압에 달하는 증기압을 쏴줘야지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만원 이하의 에스프레소 머신들은 증기압이 약하기 때문에 제 맛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없다.

Bialetti Brikka

비알레띠사의 브리카(http://www.bialetti.com)

그런데 비알레띠(Bialetti)로 대표되는 모카포트는, 몇 만원 대의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4기압 정도의 증기를 쏴준다. 즉, 저렴한 가격이지만 커피전문점에서 내놓는 에스프레소에 근접한 맛을 낸다.

당분간, 이 모카포트가 불현듯 찾아오는 카푸치노 지름신을 막아줄 것이다.

사용방법은 다음 사진처럼 무척 간단하다. 즉, 위아래로 분리된 모카포트 사이에 원두커피를 넣은 다음 모카포트를 돌려서 닫고 불위에 올려두면, 그윽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만들어진다.

모카포트 사용법
모카포트 사용법2

source from http://www.caffemuseo.co.kr

이 모카포트는 사용방법이 매우 간단해서, 사용자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멋진 모카포트에도 사용성(Usability) 구멍이 있었다.

처음으로 모카포트에 원두커피를 담아서, 가스렌지 불위에 올려두었을 때 일이다. 시간이 지나자 물끓는 소리가 더욱 더 크게 들렸다. 어릴적 뻥튀기 아저씨의 ‘뻥’소리처럼, ‘푸욱~’하는 소리와 함께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질 기대에 마음도 점점 부풀어 올랐다.

피익~

설명서와는 달리 ‘피익~’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상단과 하단의 모카포트를 결합시키는 부분에서 검은색 커피물이 가스렌지 주위에 튀었다. 황급히 가스렌지의 불을 껐지만, 심술맞은 어린애처럼 모카포트는 불꺼진 가스렌지 위에서 여전히 침을 뱉고 있었다.

모카포트의 상단과 하단을 꽉 조이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첫 번째 실수를 거울삼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온힘을 주어 모카포트를 돌려 불위에 올렸다. 물끓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첫 번째 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흥분이 밀려왔다. :D

푸욱~

모카포트의 밸브 사이로 들리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황금빛 에스프레소가 포트 위로 올라왔다. 에스프레소를 재빨리 잔에 붓고 미리 거품을 낸 뜨거운 우유를 섞었다. 실패를 극복한 뒤여서 그런지, 카푸치노는 더욱 달콤했다. 향긋한 카푸치노를 한모금 마시면서, 조금 전에 겪은 실패를 떠올렸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모카포트를 꽉 잠그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느낀 점은 모카포트를 꽉 잠그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4기압의 증기압을 만들 정도로 모카포트를 꽉 잠그는 일은 성인남자에게도 쉽지 않은데, 힘이 약한 사용자라면 어떨까?

모카포트를 사용할 때마다, 가스렌지를 대청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용자들은 검은 커피물을 지워내면서 이렇게 멋진 모카포트를 불량품이라고 생각할테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반대로 모카포트를 충분히 잠글 수 있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까지 이 모카포트를 조여야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오랜시간 동안 모카포트를 사용하면, 경험치가 올라가 원두커피가 없어도 에스프레소를 만들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모카포트를 사용하는 사람 가운데 일부는, 나처럼 쓰디쓴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모카포트에는, 사용자의 완력과는 상관없이 잠그는 행위가 완료되었다고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다. 즉, 핸드폰과 충전기를 연결할 때 들리는 ‘달깍’ 소리나, 지퍼가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하듯이…포트를 잠근다는 행위 결과를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만약, 다음 사진처럼 모카포트가 완전히 닫혔을 때 상단과 하단이 만나야 하는 지점을 표시 정도만 해두었더라도. 이 모카포트는 사용자에게 훌륭한 피드백을 주었을 것이다.

개선된 피드백의 모카포트

피드백이 개선된 모카포트

힘이 약한 사용자라면, 이 선을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여 무모하게 가스렌지 위에 4기압짜리 폭탄을 올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힘이 무척 센 사람이라면, 과도하게 모카포트를 잠궈서 나중에 청소할 때 모카포트를 열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점만 빼고 본다면, 이 모카포트는 훌륭하다.

물론 모카포트가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 가운데 사용성을 조금만 더 고려했다면, 명품의 반열에 올랐을 것들이 많기에 이렇게 긴 글을 할애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를 울리는 사용성은 어디서 나올까?

다음 포스트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