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8


남이 만든 음식, 내가 하는 서빙 그리고 땜빵

Wednesday, January 30th, 2008

저는 발표를 할 때, 꼭 지키려는 원칙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발표자료는 꼭 발표자가 만들자!

이런 원칙을 지키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자료가 일치하지 않아, 제대로 된 발표를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원칙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즉, 상사가 자신이 발표할 자료의 초안을 만들어 오라고 시킨다면, “제 원칙은, 발표자료는 발표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를 만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휴~

사정이 생겨 다른 사람이 만든 자료를 발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제 원칙대로 한다면, 제가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5분 후에 발표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예는 극단적이지만, 동료가 성의있게 만든 자료를 자신의 기준에 안 맞는다고 다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발표자료를 대신 만들어 주거나, 남의 발표자료를 대신 발표하는 것은, 논문 대필이나 대리 번역처럼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가끔 뻘쭘한 상황이 연출될 때가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서빙을 받는다고 해보죠. 웨이터가 가져온 음식이 이상했습니다. 당연히 손님 입장에서, 음식이 이상하다고 웨이터한테 불평하겠죠. 그런데 불평을 들은 웨이터에게서 나오는 말이

이 음식은 주방보조가 만들었는데, 제가 볼 때도 음식이 이상하더군요. 그런데 다시 만들기에 시간도 부족해서 대충 가져나왔습니다.

라면, 손님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추락

image from http://airwar.hihome.com 

웨이터 입에서 듣는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발표시간에 듣기도 합니다. 누군가 발표자료에 이상한 점이 있어, 자료가 좀 이상하지 않냐고 물으면,

이 자료는 제가 만들지 않았거든요. OO씨가 만들었는데, 조금 이상하게 만들었내요. 일단 발표를 해야 돼서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청중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음식점을 찾는 손님이, 웨이터와 주방장을 따로국밥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내 발표를 들어주는 청중도, 발표자료와 발표자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최악의 컨디션이지만, 감독의 지시 때문에 억지로 타석에 들어선 대타자. 프로는 결과를 떠나 투수와 최고의 한판 승부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삼진아웃을 당했다고, 인터뷰 때 감독 탓을 할 수 없으니까요.

* 발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팀으로서 결과를 내야할 때,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로 접근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될 때, 진정한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합니다.

위대한 성공은 무모함의 씨앗에서 자란다.

Monday, January 28th, 2008

만약 콜럼버스가 지구와 바다의 실제 크기를 정확히 알았다면 그는 그처럼 무모하게 서쪽으로 향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예측에 의하면 서유럽 혹은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일본까지의 거리는 2400해리, 중국의 항저우까지는 약 3550해리였다. 이것은 당시의 항해 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 거리는 실제로 1만 600해리, 1만 1766해리였다. 18세기, 유럽의 한 지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착오가 실로 위대한 발견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대국굴기, 왕지아펑 외 7인, 크레듀

제가 지금까지 시도했던 것들 가운데, 결과가 좋았던 것(혹은 개인적으로 의미있던 것)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무모함입니다. 즉, 일을 끝내고 뒤돌아 봤을 때, 도전했던 과업이 시작할 때의 능력에 비해 너무나 창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죠.

아울러

무모한 과제에 도전할 때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도 있습니다. 바로 자기비하입니다. 과연 내가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일까? 내가 그 일을 제대로 끝낼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어떤 과업을 시작할 때 자기비하에 한동안 시달리죠. 물론 이런 자기비하에는 합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가끔은? 자기비하에 압도당할 때 일을 시작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주저앉고 나면, 자기합리화氏가 찾아와 도전하지 않은 아쉬움을 달래며 술 한잔 건네지만. 술에서 깨어날 때면 자아비판의 숙취에 한동안 시달립니다.

3할대의 뛰어난 타자도, 열번 가운데 세번 밖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란 말처럼. 자기비하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후회를 하지만. 희망이라는 감정으로 오늘도 무모하게 타석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지만, 코끼리를 먹어 치우겠다는 무모함 뒤에는, 하루에 한번씩 코끼리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지겨움을 이겨낼 열정이 필요하겠죠.

열정과 무모함이 있다면, 무엇을 못할까요?

열정

영어에 중독된 나라

Sunday, January 27th, 2008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 하거나 영어를 못한다.

앞선 문장은 배중률에 의해 항상 참입니다. 위 문장은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한다’라는 명제와 이 명제의 부정인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못한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명제가 참이면 부정인 명제가 거짓이 되고, 부정인 명제가 참이면 원래 명제가 거짓이 되죠. 즉, 예문은 항상 참이 되는 항진명제가 됩니다.

머리 아픈(?) 논리학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예를 더 살펴보죠.

너는 공산당이거나 아니다.
인간은 백인이거나 백인이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자이거나 아니다.

예전 포스트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지만, 항진명제 속에는 화자의 이데올리가 스며들기 때문에 항진명제를 들을 때는 화자의 의도에 주의해야 합니다. 즉, 항진명제는 논리적으로 맞지만, 화자의 생각을 듣는 이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처음에 예를 든 명제를 말한 화자의 관점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으며, 위의 세가지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을 색출하려는 공안당국의 이데올로기가, ‘백인’이 모든 인종에 우선한다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가,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한 편견이 항진명제의 모습으로 청자를 강요합니다.

우리사회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영어로 사업을 하고, 영어로 외국 지인들과 교류를 합니다. 영어에 많이 노출된 사람의 관점에서, (어쩌면 모국어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언어보다 영어가 우월한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영어가 중요하다는 색안경 프레임으로, R발음과 F발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을 보면 안쓰럽기에, 온 국민이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추도록 커리큘럼을 데일리 잉글리시로 꾸며, 국민의 영어를 향상시키려는 노블리스 오브제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관점에서, 영어를 잘 하면 좋죠. 실용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잉글리시를 사용하는 비지니스맨과 트레이드를 할 때도 무척이나 도움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를 잘 하거나 영어를 못한다’라는 항진명제가 우리사회의 아젠다가 되고, 전국민을 영어교육의 광풍에 휩싸이게 하기 전. 우리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즉,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다섯번만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민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원이 투여되야 하는 일종의 사업입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사업에, ROI가 얼마나 될지 궁리하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항진명제’ 아래 무모한 투자를 감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잠을 쪼개가며, 무한반복 오토리버스 기능으로, 전철에서, 버스에서, 화장실에서, 회사에서 연습한 회화 실력을, 여름 한철 동남아시아 휴양지에서 체크인할 때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뻘쭘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뻘쭘함도,한국말 잘하는 현지인 덕분에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뻘쭘

image from http://www.somers.k12.ct.us/

이메일 오버로드에서 탈출하기

Saturday, January 26th, 2008

이메일은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되었습니다. 제 경우, 일이 한가하거나 메일을 적게 받으면 메일을 천천히 읽고 처리하지만, 일이 많거나 메일이 한꺼번에 몰려 올때면 빨리 훑어 봅니다.

가끔이지만, 메일을 훑어보다 낭패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 특징 때문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야 한다지만, 가끔은 장황하거나 내용을 종잡을 수 없는 메일을 읽다가 ‘별 거 아니겠지’라고 지나가면 여지없이 구멍이 생기더군요. 메일을 잘 읽지 않은 사람, 그리고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을 보낸 사람에게 잘못이 있지만.

메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메일 한통에 기울일 수 있는 관심의 양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 이메일 피로증후군의 원인이겠죠. 반복되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메일을 효과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는지 검색해봤습니다. 구글링을 하다 Mark Hurst가 쓴 Bit Literacy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Bit Literacy

이 책의 핵심내용 가운데 하나는 ‘받은 편지함에 아무 것도 남겨두지 말라’입니다. 왜 그럴까요? 궁금하시죠. 저도 아직 책을 읽지 않아, 정확한 이유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 책과 함께 검색되는 http://www.gootodo.com에서 실마리를 발결할 수 있었습니다.

gootodo.com은 받은 메일을 To-do list 항목으로 관리해주는 사이트입니다. 어떻게 생긴 사이트인지 궁금해 가입해 사용해봤습니다. 잠깐 사용했지만, 아이디어가 무척 좋더군요.

사용방법은 간단합니다.

‘고객사에서 3일 후에 회의를 하자’는 메일을 보냈다고 가정하죠.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런 메일을 받으면 포스트잇, 다이어리, 업무수첩 등에 회의가 있다고 표시하거나. PDA를 사용하시는 분이라면, PDA에 이런 내용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물론 소프트웨어로 일정을 관리하시는 분도 있고요.

gootodo.com

gootodo.com의 간단한 GUI

gootodo.com을 사용한다면, 고객사에서 메일을 받자마자 받은 메일을 d2@gootodo.com으로 보내면 됩니다. 회의가 오늘이라면, today@gootodo.com으로 메일을 보냅니다. 즉, 이 사이트는 메일주소와 To-do list의 마감일을 연동시켜 놓았습니다. 아이디어가 반짝입니다! :)

정리하자면,

  • 마감일이 일주일 후라면, w1@gootodo.com
  • 마감일이 한달 후라면, m1@gootodo.com
  • 마감일을 직접 지정할 수도 있죠. 바로 이렇게요, july30@gootodo.com

마감일을 정해서 받은 메일을 gootodo.com으로 보내버리고, 메일을 지워버리는 거죠. 이렇게 하면, 받은 편지함을 비워있는 상태로 유지하고, 이메일 피로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Bit Literacy의 요지인 듯합니다(아직 읽지 않아 추측입니다).

gootodo.com을 사용해 본 느낌은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업무메일은 보안사항이 많기 때문에, gootodo.com과 같은 외부 사이트에 보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웃룩을 사용해서 gootodo.com처럼 메일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봤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미 이렇게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웃룩을 gootodo.com처럼 사용하는 방법을 공개합니다.

아웃룩에서 일정관리하기

아웃룩에서 일정관리하기

아웃룩에서 일정관리하기

아웃룩에서 일정관리하기

아웃룩에서 일정관리하기

같은 방법으로, 작업영역으로도 메일을 옮기실 수도 있습니다. gootodo.com을 사용하면서 비슷한 사이트가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더군요). 아니면 이미 나왔는데, 제가 모르고 있을 수도요.

작은 팁이지만, 이메일 홍수에서 빠져나오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Be Agile!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