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08


경력의 스태그플레이션

Saturday, January 19th, 2008

스태그플레이션

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

from 네이버

몇 년전 일입니다. 개발자를 아웃소싱해주는 작은 업체가 있었습니다. 다른 아웃소싱 회사처럼, 이 회사도 우수한 인력을 경제적인 비용으로 선발하기란 쉽지 않았죠.

어느날, 이 회사에 3년 정도의 경력을 갖춘 C++개발자를 뽑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새로 뽑힌 개발자가 들어갈 프로젝트나, 이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사장님이 C++를 잘 모르신다며 이력서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가려달라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저는 스무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다섯 분을 선별해 드렸습니다. 이력서를 넘겨 드리며, 다섯 분 가운데 두 분 정도가 실력이 가장 나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물론 실제는 다를 수 있겠지만요). 사장님은 두 분의 이력서를 살펴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익점수가 나빠서 안 되겠는데요.

인력 요청한 회사에서, 토익점수도 보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OOO점 이상은 맞아야 평균이잖아요. 개발실력이야 프로젝트 하다보면 늘지만……

개발을 하다보면 외국자료도 봐야해서 영어가 중요하지만, 실력을 먼저 보셔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요. Hani씨 이야기는 참고할께요.

저는 도움만 드릴 뿐,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것은 사장님의 역할이시기에,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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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취업시장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뉴스나 친척 동생에게서 전해듣는 취업시장은, 무척이나 힘든 듯합니다. 어학연수, 만점에 가까운 토익점수, 자격증 몇 개는 기본이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취업시장에서 경쟁우위에 놓이기 위한 것이죠. 물론 이런 노력들이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수준을 올려 놓을지 모릅니다?

취직 준비생들이 무한경쟁을 뚫고, 회사에 도착하면 취업시장에서 경쟁우위에 놓이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별 도움이 안 되는 기술을 연마한 것은 취업 준비생들의 탓이 아닙니다.

문어발식 경력 확장은, ‘경력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요약됩니다. (제 생각에) 경력의 스태크플레이션이란, 회사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능력의 가지 수와 수준은 높아가지만, 그런 능력들이 회사의 생산성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고 개인의 급여도 보유한 능력만큼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능력을 높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물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능력을 얻기 위해 실제로 들어간 비용’이 개인의 업무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생산성’이 떨어지죠(불황과 생산성 하락은 뉘앙스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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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나 개인이 ‘경력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않기 위해, 자신들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즉,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해 자신들이 달려가는지 모른다면, 이 우물도 파고 저 우물도 파는 헛고생만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파고 계신 우물은 몇 개가요?

가치에 주목하세요!

개발현장에서 개선

Sunday, January 13th, 2008

화장실 속 개선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화장실을 쓰면서, 세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샤워를 할 때마다 바닥, 거울, 변기 등 사방에 물이 튑니다. 뭐 샤워를 했다는 티를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샤워를 하고 그냥 나오면, 제 뒤에 화장실을 쓰는 가족은 기분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튄 물 때문에 기분마저 눅눅해지기 때문이죠.

두 번째, 칫솔과 면도기를 투명 플라스틱 컵에 보관합니다. 문제는 이 컵에 물이 빠지는 구멍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물이 묻은 칫솔과 면도기를 컵에 방치해두면, 물때가 끼고 냄새가 나죠.

마지막 문제는 면도크림이 담긴 캔을 세면대 위에 올려놓고 쓰다보니, 캔의 바닥과 세면대가 접하는 곳에 녹이 생깁니다.

대수롭지 않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몸이 고생해야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샤워를 하고 물이 튀는 것은, 샤워를 끝낸 다음 화장실 곳곳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제거하면 되고. 물때가 끼고 냄새가 나는 문제는, 며칠에 한번 씩 컵을 깨끗이 씼으면 되겠죠. 세면대에 녹이 끼는 문제는, 녹이 묻을 때마다 철수세미로 제거하면 됩니다.

세면대 위에 묻은 녹을 닦아내다, 불현듯 언덕 꼭대기로 영원히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가 떠올랐습니다. 시시포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며 죄를 쌓은 것도 아닌데…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기 위해,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이 무의미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자행되는 무의미한 노동을 지양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궁리했습니다.

샤워 후 물기를 닦아내지 않으려면, 물이 안 튀게 하면 됩니다. 샤워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러면 다른 문제가 생기겠죠. :)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샤워커텐을 다는 것입니다. 간단하죠.

물 때가 끼는 것은, 컵 안에 물이 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플라스틱 컵 바닥에 구멍 몇 개를 뚫어, 물이 고이지 않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면대에 녹이 묻는 것은, 철제로 만든 캔과 세면대가 직접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면대와 캔이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플라스틱 받침대를 깔고 캔을 올려두었습니다.

화장실 속 개선

샤워커텐을 달고, 받침대를 구하고, 컵에 구멍을 뚫는 노동력과 자본을 투자했지만. 이런 작은 투자 덕분에, 무의미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개선안이 대단한 것은 아니죠.

정신 없는 컴퓨터 케이블

어느 집이나, 컴퓨터가 놓인 책상 뒤를 보면 아비규환을 방불케하는 케이블 지옥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론 저희 집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기억 속에서 지우고 살면 인생이 편하지만. 가끔 전원 케이블을 멀티탭에서 뽑거나, 대청소를 하다보면, 여기저기 얽힌 케이블 때문에 쓸데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케이블

이 정도면 양호한 편, 내 책상 밑 케이블

케이블을 깨끗이 정리할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했습니다. Van Mardian이라는 분이 사용한 방법인데, 컴퓨터 책상 아랫면을 활용한 비법입니다. 컴퓨터 책상 아랫면은 보통 죽은 공간입니다. 즉, 서랍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 없는 공간이죠. 책상 아랫면에 벽에 물건을 걸 때 사용하는 pegboard를 붙이고, 철사와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서 모뎀, 공유기, 아답터, 전선 등을 묶어 정리합니다(아래 그림을 참조하세요).

케이블 정리1

Van Mardian씨의 깔끔한 책상, image from http://decluttered.com/

케이블 정리2

책상 뒷면, 여기에 pegboard를 붙여 케이블을 정리했다. 멋지다! image from http://decluttered.com/

이렇게 정리하는 데, Marian씨는 약 33달러, 노동력 조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개발현장

저희 집 화장실에 만연했던 문제점이나 정신 없는 케이블은 무의미한 노동력이나 부단한 인내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즉,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했죠.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진정한 문제 해결은, 고장(failure)을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고장을 일으키는 결함(defect)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에러가 발생하면, 디버깅을 해서 결함을 찾고 제거합니다. 개발자는 능력이 되는 한, 자신이 문제를 발견하는 한 어떻게든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문제해결 의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법을 개선하려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즉, 파일 서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스파일 충돌문제는, 버전관리도구라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만, 개발자의 인내력과 고도의 삽질로 해결합니다. 개발 환경과 실전 환경이 다른 데서 오는, 출시 이후 땜질 개발은, 개발 환경과 실전 환경을 맞추면 해결이 되지만, 이 역시 개발자의 인내심과 출시 후 야근으로 해결합니다.

이런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발한 개선안이 아닌 듯합니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불편함을 진짜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개선하려는 의지입니다. 이런 의지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드는 원동력이겠죠.

여러분의 개발현장은 어떤가요?

Be Agile! :)

플라뇌르 되기(새해 다짐)

Sunday, January 6th, 2008

2007년은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것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위기의 순간을 대처한 덕분인 듯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2007년 다짐이었던 ‘긍정의 힘’은 어느 정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과 뒤에는 삶을 ‘속도전’으로 만들었던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책을 음미하기 보다는 소비했으며, 식사를 즐기기 보다는 허기를 채우기 바빴으며, 일을 즐기기 보다는 끝내는 데 비중을 더 두었습니다. 과연, 이런 ‘속도전’ 속에서 제가 삼키거나 소비한 것들은 제 것이 되었을까요?

나는 그제서야 프랑스 지식인들이 ‘플라뇌르(flaneur, 천천히 걷는 사람, 게으름뱅이)’를 찬미하는 이유를, 우리의 옛 선비들이 뒷짐을 지고 소요하기를 즐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0세기의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그 스스로가 플라뇌르를 즐겼던 창조적 인물인데, 그가 손꼽는 대표 플라뇌르가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 그는 집 밖을 어슬렁거리면서 배회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악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시사IN 제16호, 서명숙 편집위원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스프린터의 속도로 달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걸음마를 뗀 아가의 걸음으로 세상을 즐깁니다. 사람들의 속도 차이를 떠나, 세상의 것을 보고 즐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사색의 속도는 아마도 ‘플라뇌르’라는 프랑스 말처럼, 천천히 걷는 사람에게 어울릴 속도인 듯합니다.

2007년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문제점은, ‘속도전’의 논리에 파묻혀 제 페이스를 잃고, 사색의 시간도 놓쳤다는 데 있습니다. 2007년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플라뇌르 되기’인 듯합니다.

2009년까지 360개 정도의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길입니다. 그 길을 빨리 달려 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플라뇌르의 걸음으로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음미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겸재 정선(1676~1759)의 ‘어초문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