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February, 2008


영어 못하는 변명…

Wednesday, February 27th, 2008

누군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를, 우리말이 영어와 달리 교착어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린버그 박사는 주어(S) 동사(V) 목적어(O)를 나열하는 어순에 따라 전 세계 언어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VO계열 : SVO(35%), VSO(19%), VOS(2%)
OV계열 : SOV(4%)

영어는 SVO구조 언어이며 한국어는 SOV구조 언어이다. 영어와 반대 어순인 SOV 구조를 가진 대표적인 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영어 못하기로도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스피드 리딩, 신효상/이수영, 롱테일 북스

우리말과 영어가 다르다지만, 모국어를 구사하시면서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본다면, 이런 언어의 차이점이 외국어를 못하는 데 큰 장애는 아닌 듯합니다.

*** 

VMWare를 사용하면 리눅스도 윈도우에서 돌릴 수 있죠. 물론 VMWare라는 게 일종의 가상화 기술이기 때문에, 오리지널 리눅스에서 돌리는 것만큼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뭐, VMWare가 먹는 리소스가 있기 때문이죠.

***

C를 처음 배울 때, 포인터라는 덩치를 만나 고생했습니다. 처음 본 C서적에서, 포인터를 우체통이라고 생각하라는 친절한 도움말 덕분에, 애궂은 우체통을 찾아 안드로메다까지 갔다 왔습니다(이중 포인터, 삼중 포인터, 포인터에 증감 연산자 붙는 경우엔 도저히 우체통으로 해결이 안 됐기 때문이죠).

잔매에 장사없다는 말이 포인터를 배울 때도 적용되더군요. 연습이라는 바디플로우에 C포인터는 링위에 쓰러졌습니다. 포인터보다 더 강한 놈을 찾아, 무림의 세계로 나갔습니다. 길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C++이라는 강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C++를 배우면서 객체라는 요상한 것을 배우기 위해, 동물, 강아지, 호랑이, 사자가 나오는 계통도나, 삼각형과 사각형을 친족으로 만드는 이상한 족보를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구조적인 언어인 C에 기들여진 사고방식을 객체지향방식으로 전환하기란 만만치 않았죠. 제 두뇌는 언어 이식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듯합니다. C++로 프로그램 몇 개를 짜보고 나서야, 객체지향의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

유행 따라 새로운 프래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즉, 이미 습득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도 힘든 데, 외국어 배우기란 오죽하겠습니까?

언어라는 것을 잘 하는 왕도는 없는 듯합니다. 첫 번째 언어인 베이직을 배웠을 때도. 포인터라는 덩치를 만난 C를 배웠을 때도. 그리고 여러 가지 객체 지향 언어를 배웠을 때도. 언어를 잘 구사하는 방법은 그 언어가 담고있는 철학과 특징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뿐이었습니다.

연습이라… 쉽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해버렸네요. :D

‘토씨’야! 힘내라!

Tuesday, February 26th, 2008

예문 하나 보고 시작하죠.

  • 나는 밥을 먹었다.
  • 밥을 먹었다 나는.
  • 먹었다 나는 밥을.
  • 밥을 나는 먹었다.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말은 어순을 고민하지 않고 뒤죽박죽 써도 의미가 전달됩니다. 이번엔 영어를 살펴보죠.

  • I eat a cake.
  • A cake eat I.
  • Eat I a cake.

말이 되는 문장도 있고, 컬트 영화의 대사처럼 읽히는 문장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언어학적으로, 우리말은 교착어의 특징이, 영어는 고립어의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착어에서 어근에 접사가 붙어 문장 속에서 기능을 나타내죠. 즉, ‘나는’에서 ‘나’가 어근이고, ‘는’은 접사가 되는 것처럼요. 고립어에서 어순에 따라서 문장의 뜻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I eat a cake’와 ‘A cake eat I’의 뜻은 하늘과 땅차이가 됩니다.

우리말이 교착어라지만, 고립어의 특징도 있습니다. 즉, ’밥을 먹었다 나는’보다는 ‘나는 밥을 먹었다’가 훨씬 자연스럽죠. 물론 우리말은 조사(접사) 때문에 어순이 바뀌어도 뜻이 통하지만, 이런 예를 본다면 우리말에도 ‘주어+목적어+술어’라는 어순이 존재합니다.

이렇듯이 어떤 언어를 고립어, 교착어, 굴절어로 단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즉,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고 언어를 분류할 따름입니다.

좋은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합니다. 단어를 잘 선택한다거나, 문장구조가 명확하거나, 글 소재가 좋거나… 단순한 몇 가지로 좋은 문장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규정짓기 어렵죠.

하지만

좋은 문장을 구성하는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즉, 앞에서 말씀드린 언어의 특징을 잘 살린 문장을 사용하면 됩니다. 우리말로 의미 전달이 잘 되는 문장을 쓰려면 교착어의 특징을 잘 살려야 하죠. 한마디로 ‘토씨(조사)’를 잘 써야 합니다.

  1. 김과장님은 얼굴이 잘 생기셨죠.
  2. 김과장님은 얼굴도 잘 생기셨죠.

위 예문은 토씨 하나 차이지만, 듣는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기도 하고 기분나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즉, 듣는 이에 따라, 문맥에 따라, 1번은 능력이 없지만 얼굴이 잘 생겼다로 들릴 수 있습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내용으로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이런 글을 쓴 취지는 이렇습니다. 날마다 사용하는 우리말이지만, 우리말에 있는 장점을 살려 글을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물론 제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 :) ). 즉, 회사에서나 인터넷에서 우리말을 사용했지만 구조나 형식은 영문법인 글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보다 개혁적인 관점의 일하는 방식의 개선은 단순한 단위업무의 데이터 통합이 아닌 불필요한 업무의 제거, 기능의 단순화, 중복업무에 대한 과감한 통합을 통해 행정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 문장은 그런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문장에서도 개선할 게 있습니다. 바로 조사 ‘~의’가 남발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의’는 일본어나 영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죠. 네이버 일어사전을 보니, 일본어에서 ‘の(~의)’ 의미는 16가지 정도가 됩니다. 야후 영한사전 기준으로, 영어에서 ‘of(~의)’ 의미도 16가지 정도 되네요. 하지만 우리말에서 ‘~의’ 뜻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외래어의 영향을 받아 위 문장처럼 시도 때도 없이 어디에서나 쓰이게 된 셈이죠.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의’를 문장에 남발하는 것은 생각을 게으르게 했다는 반증입니다. ‘~의’는 압축파일과 비슷합니다. 글쓴이는 ‘~의’라는 조사에 무척이나 많은 것을 담아두기 때문입니다. 잉크를 아끼기 위해, 바이트를 아끼기 위해, ‘~의’를 사용해 축약할 수 있지만. ‘~의’는 글읽는 사람에게 글쓴이가 품은 의도를 파악해내려는 추가적인 연산작업을 요구합니다. 즉, 글을 왜곡해서 해석할 여지를 남기죠.

이런 이유로, ‘~의’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물론 ‘~의’가 우리말에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의’도 토씨죠. 따라서 우리말을 잘 활용하려면 ‘~의’도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게을러서 문장 여기 저기에 흘려놓는 것은 경계해야겠죠.

예전 글에서 언급을 했지만, 영어가 명사에서 힘을 얻는다면, 우리말은 서술어에서 힘을 얻습니다. 서술어가 힘을 내기 위해 토씨가 명사와 명사를 튼튼하게 받쳐주어야 합니다. 즉, 우리말에서 서술어가 다리라면 토씨는 등뼈인 셈이죠. ‘~의’가 남발된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디스크액이 세어나온 디스크환자들의 CT사진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문장은 허리힘이 약하니 달리기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세탁과 소프트웨어 개발

Saturday, February 23rd, 2008

며칠 전에 동료들과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반반씩 살림을 나눠서 하는 부부, 더 많이 일하는 부인, 가사노동에 아예 참여하지 않는 남편들도 있었죠.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삶의 지혜를 얻는 자리였습니다.

여자 동료분이 남편에게 빨래를 부탁하면, 남편은 세탁기에 빨래를 집어넣고 세탁기를 돌린 다음에

여보, 나 빨래 다했어!

라고 말한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 가사노동을 안 해 보신 분들은 대부분,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고백하건 데 저도 가사노동을 해보기 전에,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세탁은, 세탁기를 돌린 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 업무 가운데 하나가 프로세스를 잡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적 소양을 발휘해서 세탁 프로세스를 살펴보죠.

세탁 프로세스

  1. 세탁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는 식구가, 물이 빠지는 새옷을 아무 생각없이 세탁물 바구니에 넣어두기도 하기 때문에, 세탁기에 옷을 넣기 전에 새옷을 골라내야 합니다. 새옷을 세탁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항상 조심해야 하죠. 한번의 실수로, 빨간색 팬티를 입고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세탁물을 분류한 다음, 세탁물을 정리해서 세탁기에 넣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옷을 뒤집어서 벗어놓는(그리고 세탁에 참여하지 않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에 뒤집어진 옷을 원래대로 뒤집어 놓아야 합니다. 옷을 제대로 뒤집지 않고, 세탁을 하면 빨래를 널을 때 뒤집어야 합니다. 젖은 빨래를 뒤집어 보신 분들은 알시겠지만, 뒤집으면서 작금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식구를 미워하게 되죠.
  3. 양말짝을 맞춰서 벗어놓겠다는 선의로, 양말을 벗어 돌돌 말아 공을 만들어 놓는 식구들도 있죠. 좋은 의도로 한 것이지만, 돌돌 말린 양말을 풀어서 세탁기에 넣지 않는다면, 세탁되지 않은 양말을 다시 신어야 합니다.
  4.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은 후 세탁을 시작하죠. 자동화된 드럼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탁이 끝난 다음 섬유유연제를 넣고 다시 한번 돌려주어야 하는 수작업 프로세스가 있습니다(이 작업은 세탁기 종류에 따라서 선택사항입니다).
  5. 빨래가 끝나면, 빨래 널기를 합니다. 이 작업도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죠. 우선 빨랫줄에 내려 앉은 먼지를 닦아내야 합니다. 먼지를 닦아내지 않고, 하얀 속옷을 널면 회색 줄무니가 쳐진 속옷을 입고다녀야 하기 때문이죠.
  6. 빨래를 널면서, 다림질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빨래를 펴서 널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속옷이라도 대충 입고 다녀도 되지만, 주름을 펴지 않고 말린 빨래는 잘 개어지지도 않습니다.
  7. 빨래가 뽀송뽀송 말랐다면, 이제 식구들이 입기 편하도록 갤 차례입니다. 빨래개기 작업을 하기 전에, 다림질을 할 빨래를 선별합니다. 다림질을 안 해도 되는 빨래들는 잘 갭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갠 빨래는 식구들이 입기 편하도록 옷장이나 서럽 속에 챙겨서 넣습니다.
  8. 마지막으로 다림질 프로세스가 남았습니다. 다림질도 상당히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죠. 아무튼 다림질을 끝내고, 옷걸이에 잘 걸어두면 세탁 프로세스는 모두 끝납니다.

적어 놓은 세탁 프로세스를 보니까 어떠신가요? 상당히 많은 작업이 필요하죠.

‘세탁을 안 해본 식구’나, ‘세탁은 세탁기라고 생각하는 식구’가 아는 세탁 프로세스는, 4번 항목에서 ‘세탁기를 돌린다’입니다. 하지만 세탁 프로세스를 다 겪어 본 사람은 ‘세탁기 돌리기’는 세탁의 시작일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통한다고 하죠.

새싹 하나에서 지구를 느끼고, 우주를 느끼기 위해서 앎이 필요합니다. 이런 앎은 경험에서도 얻고, 책을 통해서도 얻습니다. 책을 통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달을 수 있지만, 경험을 하지 않으면 온몸으로 어떤 것을 깨닫는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도 그렇습니다. 이제 막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누군가는 ‘소프트웨어=개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빨래에서 세탁기 돌리기가 전부가 아니듯이, 소프트웨어 만들기에서도 개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뻔한 이야기일까요?

새싹

image from http://kmt24.cafe24.com

고도비만 사회 속에서 독서왜소증

Saturday, February 16th, 2008

잉여가 넘치지 않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살려고 밥을 먹었습니다. 좋은 음식의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즉, 배고픔을 채워줄, 몸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할, 또다른 한끼를 얻기 위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음식이라면 그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잉여가 넘쳐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즉, 모자름보다는 넘침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

넘침보다 모자름이 주류였던 시기엔,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악이었습니다. 음식의 남김과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모자름이 넘치던 사회에서 먹거리를 보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모자름의 사회에서 넘침의 사회로 전환하는 변곡점 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음식을 남길 때마다 밥상머리에 앉아 계신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음식 남기지 마라. 벌 받는다!

잉여의 시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기울어짐이 심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비만에 대한 공포증으로 먹었던 것을 게워내는 사람들. 한끼 식사를 다른 사람의 온정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 주말마다 벌어지는 종교행사처럼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냉장고에서 비워내고, 또다른 일주일치 먹거리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향하는 사람들.

의미를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버린 율법처럼, 음식남김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지만. 현대인들은 한끼 식사를 끝내고 밥상 위에 남겨진 잔반 찌꺼기를 보고, 아버지의 불호령을 기억해 내지 않습니다. 소아비만을 걱정하고. 칼로리를 계산해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해야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완소남, 완소녀가 되는……

바야흐로 우리는 고도비만의 사회속에 살고 있습니다.

***

인풋과 아웃풋 조절에 실패해서, 저도 뱃속에 약간의 잉여자본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내장지방이나 게으름의 상징이라고 말로 비난하기도(?) 하지만. 저는 당당히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식량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괴변은 게으름이나 넘침에 대한 변명거리이지만. 확실히 음식을 남기거나 몸에 잉여를 축적하는 데 예전보다 관대해졌습니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관대함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맛있는 밥이라도 잔반을 남기기 마련이며. 누군가는 맛있다고 한 반찬이 내 입에 맞지 않는다면 젓가락 한 번 가지 않습니다. 맛있겠다고 시킨 음식이 황이어서 몇숱가락 뜨고 만다고 해도 맛없는 음식을 탓하지 까다로운 내 입맛을 탓하지 않습니다.

잉여의 시대이자, 고도비만의 사회입니다. 음식에 대해서 관대해 지듯이, 우리는 책소비에 대해서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읽던 책도 흥미가 없으면 과감히 덮어버리고. 유명한 책이라 해도 읽다 내입맛에 맞지 않으면 내평겨칠 수도 있으며. 지식쓰나미에 휩쓸려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를 대비해,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듯이 서재에 언제가 읽을 잉여서적들 비축하는 것은 어떨까요?

영희도 타락했고 철수도 타락했으니 우리 모두 타락하자는 괴변처럼 들리지만. 잉여의 시대 속에서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잉여는 철저히 금욕적인 현실을 보면 뭔가 아쉽습니다.

나도 아쉽다. 캐스트어웨이

* 온갖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현대사회라지만, 첨단장비로 무장한 소방대원들 앞에서 전소해버리는 문화재를 생각해본다면, 여러분 누군가도 무인도에 표류하는 영화속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같습니다. :)

** 다른 형식의 자본논리 때문에 이것들을 죄악시하는 메카니즘이 새롭게 탄생했지만, 이것은 논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