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February, 2008


개발자의 자아

Friday, February 15th, 2008

이름에는 힘이 있다. 마틴 파울러가 비교적 평범한 기술 하나에 이름을 부여하자. 프로그래밍 세계는 ‘의존성 주입’이라는 프레임워크로 갑자기 뜨겁게 달구어졌다. 의존성 주입의 원리는 단지 컴포넌트들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상호작용해야 하고…

Release it!, 마아클 나이가드, 위키북스

인상파, 야수파가 처음 등장했을 때. 평론가들은 당시 기준으로 발로 그린 듯한 혁명적인 그림을 초벌그림(impression,인상파)이나 ‘야수들의 우리에 갇힌 도나텔로 꼴’(야수파)이라는 말로 비꼬았습니다. 평론가들의 야유 속에 탄생한 사조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웃음 섞인 이름은 대중들에게 그림의 특징을 더욱 잘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뱉어놓은 말에 영향을 받습니다. 말과 생각을 분리할 수 없지만, 말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을 볼 때면, 말이 생각보다 우선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IT동네를 살펴볼까요? 누군가 우리에게 직업을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개.발.자.(developer)라는 세자를 발음하겠죠. 어떤 사람은 개발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웃 주민들은 우리를 개발자라고 부릅니다.

확실히 말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테.스.트.라는 세자를 들으면, 우리네 개발자들은 옆동네나 윗동네 사는 QA나 테스트 부서의 아무개씨 걱정부터 합니다. 개발자라는 이름은 우리의 사고의 범위를 개.발.이라는 단어에 묶어두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아집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테스트주도 개발’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일부는 듣보잡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간극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개발’과 ‘테스트’의 간격을 ‘주도’라는 두자 사이로 좁혔습니다.

‘테스트주도 개발’을 하지 않아도 우리네 개발자들은 테스트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발로 코딩을 짜도 찰떡같이 코드가 돌아가면 좋겠지만. 키보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입력해서 프로그램을 짜도 버그는 바퀴벌레 마냥 기어나옵니다. 바퀴벌레를 초강력 살충제로 쓸어버릴 수 없듯이. 우리가 양산해내는 버그도 초강력 개발방법으로 박멸할 수 없습니다.

개발에 앞서 테스트를 어떻게 할지 더 고민하며. 테스트에 앞서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피는 데서. 무한 컨티뉴의 버그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의 동네 울타리는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요?

내가 좋아하는 그림

image from http://news.media.daum.net

경력 계단

Tuesday, February 12th, 2008

1~2년차 작가는 돈이 없다.
2~3년차 작가는 시간이 없다.
4~5년차 작가는 친구가 없다.
5~6년차 작가는 애인이 없다.
7~8년차 작가는 (간혹) 싸가지가 없다.
10년차 작가는 감이 없다. 그리고 가끔은 철이 없다.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 이정란 외, 부.키

방송작가의 예처럼, 어느 전문분야든 일정한 경력이 쌓이며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특징이 달라지기 때문에, 경력 계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떤 전문분야는 경력 계단 주위에, 하늘을 찌르는 장벽을 쌓고, 선택받은 소수만이 계단을 올라가게 합니다. 반면 어떤 전문분야는 토담이라고 부를만한 담조차 없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몇 계단쯤은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IT동네라든지, 방송작가 등이 여기에 속하겠죠.

IT경력 계단은 처음 몇 계단은 쉽습니다. 야근 수십 번하고(?), 프로젝트 달력 몇 번 바뀌면 계단 3-4개는 올라갈 수 있죠. 

힘들 게 올라왔지만, 그 곳에서 바라 본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만큼 허탈한 것은 없겠죠. 즉, 노력한 것만큼 대가도 적고, 그렇다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도 아닌 듯하고요. 실망한 일부 동료들은 다른 경력 계단을 찾아 내려갑니다. 어떤 동료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현상유지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왜냐면,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잠깐! 생각해보세요~

생각해봐!

image from http://www.scu.edu.au/

우리가 올라온 계단은 처음부터 존재했을까요?

이름도 모를 선배 개발자가 쌓아놓은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계단이라는 게 없어, 계단쌓기 일감이라도 있었다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선배 개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늘에 닿을 계단을 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이 곳은, 계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계단을 쌓는 초석이랍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선택의 프레임

Monday, February 4th, 2008

某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했습니다.

점원 : 고객님, OO햄버거 세트 주문하신 것 맞으시고요?

나 :

점원 : OO햄버거에 치즈가 안 들어가는데, 치즈 넣으시겠어요?

나 : (치즈라? 치즈가 들어가면 맛이 더 깊어지겠지) 그러죠.

점원 : 고객님 치즈 넣으신다고 말씀하셨고요. 치즈 넣으시면 600원이 추가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나 : (세트가 5,600원인데, 치즈 한 장에 엄청 비싸군. 맛있을테니 넣지) 네.

주문한 햄버거 세트를 들고 멀리 가기 귀찮아, 카운터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햄버거 포장을 벗겨내니, 황금색 치즈가 패트 위에 맛있게 녹아 있더군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갔습니다.

황급히 햄버거를 베어 물었습니다. 쇠고기 패트와 녹아붙은 치즈는 깊은 맛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씹어넘긴 햄버거가 굶주린 위를 채우자. 맛있는 포만감 때문에, ‘치즈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칭찬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맛있는 햄버거 먹기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여자 손님이 저와 똑같은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더군요. 점원은 저에게 그랬듯이, 여자 손님에게 치즈를 넣겠냐고 질문했습니다. 여자손님은 (제가 그랬듯이) 서슴없이 치즈를 넣겠다고 말하더군요. 마음 속으로 여자 손님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D 여자 손님의 대답을 듣고, 점원은 치즈 추가 시 600원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뒤에도 손님 2명이 비슷한 햄버거 셋트를 주문했고, 그때마다 점원은 치즈를 넣겠냐고 질문하더군요. 나머지 손님들도 치즈를 넣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헉!

비슷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한 손님이 모두 치즈를 넣는 것을 목격하자. 햄버거 체인점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점원이 이렇게 물었다면, 치즈를 선택한 손님이 100퍼센트에 가까웠을까요?

손님, 치즈를 추가하시면 600원을 더 내셔야 하는데요? 추가하시겠어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 질문을 들은 손님 일부는 ‘치즈는 600원이다’라는 비용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먼저 그립니다. 즉, ‘치즈가 맛있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치즈 한장에 너무 비싸다’라는 이미지를 그리기 때문에 치즈를 추가하지 않겠죠. 저도 이렇게 질문을 받았다면, 치즈를 포함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점원의 질문 방식대로 사고를 하면. ‘치즈는 맛있다’라는 그림을 먼저 그리겠죠. 그 다음으로 치즈 추가하는 데 600원이 더 든다고 들으면, ‘맛있는 치즈를 추가하는 데 600원밖에 안 들잖아. 추가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손님들이 치즈를 추가로 주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질문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당연히 판매단가를 높이려는 햄버거 체인의 상술입니다. 싼 가격으로 고객을 유인한 뒤, ‘맛있는 그림’을 떠올리게 해서 더 비싼 가격에 햄버거를 파는거죠.

햄버거 가게에 당했지만, 한수 잘 배웠다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

조직원의 영어실력을 높여야 된다고 생각한 관리자가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부서원들의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 다음 두 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를 실시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선택해서 답장 주세요.

  1. 회의를 영어로 진행함. 주간회의 시 부서원마다 영어로 5분씩 발표할 것
  2. 연초, 연말에 공인된 기관에서 회화실력을 평가받아, 실력이 향상된 만큼 인사고과에 반영하겠음

제 생각에, 대다수의 부서원들이 2번 항목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이 관리자는 어떤 의도로 이 메일을 보냈을까요? 관리자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2번 항목입니다. 이런 식의 메일을 보내지 않고, 관리자가 부서원들에게 2번 항목을 실시할테니 찬반 의견을 물었다면, 부서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대다수가 2번 항목에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2번 항목에 대한 반감을 들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리한 관리자는 난이도가 높은 선택항목을 비교대상으로 제시함으로써, 부서원들이 자연스럽게 2번 항목에 동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번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두 가지 사례처럼, 선택의 프레임이 교묘하게 감춰져, 선택을 강요받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로

미시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말은 쉬우나, 실천은 역시 어렵습니다.

푸르다~

image from http://webzine.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