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May, 2008


스피드 레이서, 육체의 한계를 넘어

Sunday, May 11th, 2008

운동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는 있다. 바로 농구다. 농구는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일한(?) 운동이며, 스포츠의 재미, 즉 땀흐림의 기쁨을 알게 되었기에.

처음 농구를 한 건, 슬램덩크가 고등학교 교실을 강타했을 때이다.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는, 사뭇 진지했다. 그 진지함이 어느 정도냐 하면, 친구들과 유니폼 비슷한 것까지 맞춰 입고 코트를 뛰어다닐 정도였으니. 만화 덕분에 처음으로 공을 튀겨보고 나서, 풀코트를 뛰면서 같은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때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대기만성의 기질이 있다는 것을 농구 때문에 다시 한번 느꼈다. 뭐 그렇다고 농구를 평균이상으로 잘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리고 농구를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흔히 필이 꽂히는 날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즉 드라이브인으로 겹겹이 쌓인 수비수를 뚫고 림에 공을 올려 놓고 내려오는 짧은 그 순간, 느껴지는 무아의 느낌. 생각은 존재하지 않지만 느낌이 가는대로 근육세포 하나까지 내마음대로 조정한다는 그런 생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뇌와 육체의 싱크로율이 네가티브일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느낌과 생각은 두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세포 하나하나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스포츠이기에 농구를 좋아한다.

***

버추얼 파이터, 철권 등의 대전게임에 타고난 실력을 보여줬던 대학동기가 있다. 이 친구 덕분에, 잠깐 동안 오락실 죽돌이가 된 적이 있는데, 게임을 하는 것보다 이 친구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는 게 사실 더 재미있었기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름 잘 하고 싶은 욕심에, 이 친구가 하는 플레이를 연구하고, 고수들의 플레이를 보려고 PC통신 자료실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런 연구 분석으로 얻은 결론은, 연습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어느 분야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일반인이 넘을 수 없는 이런 갭을 천재성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대전격투 게임에선 이런 천재성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건, 친구의 고백(?) 때문이었다.

나 : 어떻게 상단으로 공격할지 알았어?

친구 : 눈으로 보고 막았지.

나 : 상단인지, 하단인지 감으로 막는 거 아냐?

친구 : 보통은 그러는데, 컨디션이 조금 좋으면, 동체시력이 좋아지나봐. 그럴 때면 주먹이 나오는지 발이 나오는지 보여.

이 친구는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고, 그 동체시력에 따라서 반응하는 능력까지 뛰어났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농담으로, 이 친구의 시신경은 대뇌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손가락 근육과 연결된 진화가 덜 된 하등동물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갖지 못한 천재성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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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를 봤다. 이 영화는, 대뇌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우고, 엉덩이를 의자에 꽉 붙인채 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독의 명성이 자꾸 떠올라 한 눈을 팔기에, 언리밋의 속도로 달리는 아우토반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비판적 사고란 약에 쓸려고 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냐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그런 것들의 존재감이 엄청난 스피드에 묻혀버린다는 것. 아무튼 이성은 사라지고 동물적 감각만이 존재하는 속도 속에서, 주인공이 트랙에 그려놓는 숨이 멎는 드라이빙을 보고 있자니, 신(?)이 내릴 때 농구를 하면서 내가 받는 그런 느낌이나, 동체시력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그런 날 친구가 받았을 느낌이 떠올랐다.

스피드 속에서 그런 무아의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할 듯.

스피드 레이서

게임 관점에서,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라는 것의 효용성

Friday, May 9th, 2008

프로젝트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정의내릴 수 있지만, 일종의 게임으로 바라본다면, ‘프로젝트 발주사’와 ‘프로젝트 수행사’는 게임 속의 경쟁자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발주사와 수행사 사이에는 권력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라는 게임은 공정하지 않다.

상세한 룰을 도입하지 않고,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프로젝트를 게임이라고 우겨본다면가정한다면, 프로젝트는 ‘협조적 게임’일까? ‘비협조적 게임’일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발주사와 수행사가 협력하는 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상식을 놓고 보면, 프로젝트는 ‘협조적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경험을 놓고 보면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 게임에 참여하는 경쟁자가 협조적인 관계에 있고 싶어도,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요구사항이 불명확하다’는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이놈의 불확실성과 ‘고정금액 계약’방식이라는 룰이 결함되면서, 프로젝트는 판타스틱하고 드라마틱하게 ‘비협조적 게임’으로 밝혀진다.

‘고정금액 계약’방식, 즉 기간과 금액이 정해진 상태에서 무언가를 뽑아내고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각 경쟁자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조금 더 풀어 쓰자면, ‘발주사’는 무엇을 만들지도 모르지만, 주어진 기간 안에 ‘수행사’를 쪼아서푸쉬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만들게 하려는 막가파식 전략을 펼치고, ‘수행사’는 뭘 만드는지도 모르지만, 주어진 기간 안에 무언가를 최대한 적게 토해내기만들기 위해, 무조건 개발하기 난해하다는 BJR*전략을 구사한다.

‘발주사의 막가파식 전략’과 ‘수행사의 BJR전략’은 상대 경쟁자에게 모두 노출되었기에 그렇게 새로운 전략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노출된 전략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SI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신규 기능을 개발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보통 구현은 못하지만 자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는 고객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 if하고 for하고 대충 써서… 이미지로 출력해서… 웹으로 띄우면 되잖아요.” 물론 큰 그림을 보자면 맞고 구현을 한다면 틀린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고객 앞에서, 개발자는 최대한 어렵다는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아무튼 고객이 어설픈 지식으로 개발자를 푸쉬하거나, 개발자가 갖은 엄살을 가져다 변명을 하는 것이나, 이런 전략은 길고 긴 IT역사를 통해서, 상대 경쟁자에게 노출되었다. 즉,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따라서 나의 전략을 펼친다는 점에서 본다면, 일종의 내쉬의 평형이 떠오르는데, 결국 비협조적 게임 속에서 경쟁자들은 전체 관점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고, 프로젝트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심해 속으로 가라 앉는다.

‘비협조적 게임’은 모두에게 불행을 주기에, 행복한 결말을 내려면, 프로젝트를 ‘협조적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 ‘협조적 게임’으로 바꾸는 것은, 우선 ‘요구사항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뭐, 이런 얘기는 초보 개발자도 다 아는 이야기지만, ‘비협조적 게임’이 팽배한 현실에서, 요구사항 정의서에 도장을 찍으려면, 발주사는 무언가를 잔뜩 개발시키려고 하고, 수행사는 요구사항 정의서에 적힌 것을 최대한 바꾸지 않으려 하니, ‘요구사항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사실로써’ 인정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현실에서, 수행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임이지만, 이런 ‘비협조적 게임’ 상태에서 그 결과가 발주사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협조적 게임으로 변환하면 되는데, 협조적 게임을 생각하다 보면, ‘애자일 선언’문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고정금액 계약’과 ‘비협조적 게임’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애자일 선언’을 순진하게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수행사 PM은, 팀원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최악수를 두는 것이다. 고로 이런 게임 관점에서,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라는 것은 ‘협조적 게임’이 기본일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경쟁자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비협조적 게임인 SI 프로젝트’에서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애자일 프로젝트를 관리’를 프로젝트에 도입하는 전체 최적화보다는 효율을 조금 높이는 미시 수준에서 ‘애자일 프랙티스’를 도입하는 편이 낫다.

* BJR = 배째라.

두발 자율화와 광우병 집회

Tuesday, May 6th, 2008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교문을 통과해서 현관에 들어가려면, 시멘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졸업할 때까지 그 길을 따라서 등교하고, 그 길을 따라 별을 보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아무튼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 길에 대해서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기 때문에, 그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고3 때 벌어진 일이란 건 확실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새벽, 6시 50분쯤. 교문에 들어서자 눈앞에 장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대략 150미터가 넘는 비탈길을 따라서

두 발 자 율 화

라는 글자가 시뻘건 락커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월드컵 덕분에, 지금이야 빨간색이 자유대한민국의 색깔이 되었지. 당시만 하더라도 빨간색은 빨갱이라는 인식이 파다했습니다. 어쨌든 ‘두발자유화’ 사건 때문에, 학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3학년은 대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 때문에, 상고머리 스타일로 머리를 기르고 다닐 수 있었지만, 1~2학년은 3센티미터의 스포츠머리라는 두발 제약을 받았습니다. 

사건 전날, 1~2학년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두발 단속이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학교 측에서는, 이런 두발 단속에 대한 분풀이로 1~2학년이 저지른 범죄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신속한 조치 두 가지가 내려졌습니다.

첫 번째 조치는, 두발 단속 다음 날 삭발을 하고 온 1~2학년을 모아서 취조 아닌 취조를 했다고 합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적으로 삭발을 한 얘들 가운데, 이런 짓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아무튼 삭발하고 마음 좀 잡아보겠다는 1~2학년 중에, 이 사건 때문에 누명을 써서 고생했죠.

두 번째 조치로 전교학생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것도 참 희한한 발상인데, 3학년 반장들이 1~2학년 반장들을 모아놓고, 재발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이디어를 내놓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3학년들이야 마음대로 머리를 기르고 다녔기에, 어떻게 보면 교사와 같은 기득권층(?)이었습니다. 평소 전교학생회의와 달리, 교사 vs 학생의 분위기가 아닌, 3학년 vs 1~2학년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회의자리에 앉아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랜전 일이기에 정확하지 않지만, 지금의 사고로 표현을 하자면,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의 대결이랄까요? 두발을 마음대로 기를 수 있다는 기득권을 가진 3학년이, 교사를 대신해서 1~2학년의 두발 자율화 요구를 무마하는 모습. 아마도 그 전교학생회의 자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바라본 자리였습니다.

***

광우병 집회에, 십대들이 주축을 이룬다고 하네요. 놀기만 좋아하는 십대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혹자는 십대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스타가 광우병에 대해서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집회에 참석하는 빠순이 빠돌이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에 돌아 다니는 찌라시에 흥분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십대들의 이런 집회 참여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프랑스의 68세대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요?

정치가 뭘까요? 전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치란 이익, 즉 밥그릇 싸움이고, 혼자서 그 밥그릇을 지키지 못하기에 패거리를 이뤄서 싸우는 것이고, 패거리 싸움이기에 계급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집회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십대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육시스템에서 십대들을 구원해줄 사람들은 십대 그들입니다. 입시학원들의 입장에서 십대는 돈줄이고, 정부입장에서는 국민연금에 돈을 대줄 인적자원이며, 자본입장에서는 코묻은 돈을 훑어먹을 마케팅 대상이며, 부모입장에서는 남의 새끼에 뒤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식입니다. 결국, 이런 사회구조, 교육시스템 속에서, 십대는 영원히 타자일 수 밖에 없죠.

제도권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지 않던 십대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광우병 문제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잠재적으로 십대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집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듯합니다. 물론 십대들의 현실 참여가 일회성으로 끝날지,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사회를 바꾸는 엔진이 될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이런 이유로, 68세대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

‘두.발.자.율.화’라는 치기어린 장난 수준에 머물던 제 고등학교 시절보다, 조금 더 희망이 보입니다.

* 정치이야기는, 이 포스트를 계기로 당분간 자제할 생각입니다. :)

이키가미와 광우병

Thursday, May 1st, 2008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입학시에 특정 감영증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의무이며, 이것을 ‘국가 번영예방접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되는 백신 자체는 썩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사용되는 주사기 중 약 0.1%에 섞여 있는 특수한 나노캡슐입니다.

1000명 중 1명의 확률로 그 캡슐이 주입된 국민… 캡슐은 그들의 몸속을 떠돌다가 이윽고 심장 폐동맥에 정착합니다. 그리고 생명력이 정점에 달하는 18세에서 24세 사이, 미리 설정된 일시에 파열하여 그 생명을 잃게 되죠.

그러나 그 캡슐이 누구에게 주입되었는지 국민은 알 수 없습니다. 국민은 그 시기가 올 때까지 ‘내가 죽는 게 아닐까’하는 위기감을 늘 가진 채 성장합니다. 그 위기감이 바로 ‘생명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높이고 사회의 생산성을 향상시키죠.

사실 이 법률(국가번영유지법)이 시행된 후로 우리나라의 자살건수와 범죄건수가 함께 감소했고, 오히려 GDP와 출산율은 해마다 증가 추세입니다. 이것은 모두 이 법률이 가져온 효과라 할 수 있지요.

이키가미 1권 중에서

일종의 깔대기 이론일까요? 친구나 동료들과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결론이 납니다.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건 쉽지가 않아.

가장 오랜 해외체류 기간이라 해봤자, 2주 정도 출장으로 외국에 머무른 것이 전부인 제가, ‘대한민국에서 삶의 질’과 ‘다른나라에서 삶의 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풍월을 읊으려면, 적어도 서당밥 3년은 먹어야 한다는 선조들의 말씀처럼, 타국의 삶과 대한민국의 삶을 온전히 비교하려면, 제 깜냥으로 부족하죠.

하지만, 88만원세대로 대표되는 20대의 암담한 현실과, K리그 수준에서 프리미엄리그 수준으로 레벨업된 승자독식사회를 놓고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삶의 치열함은 이미 초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듯합니다.

운좋게 70년대에 태어난 덕분에, 80년대생이 겪는 배틀로얄식의 취업전쟁을 피해 회사생활을 하지만. 90년대생이 겪는 무한경쟁식의 영어교육과, 놀이의 즐거움보다 학습의 고단함부터 온몬으로 경험하는 밀레니엄 베이비를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에서 삶은 고담함을 넘어 무너지지 않는 장벽을 향해 돌진하는 참담함이 느껴집니다.

현실의 답답함은, 노래방에서 질러대는 최신가요나 인터넷에 배설해 버리는 욕지거리로 해결되지 않기에. 편히 쉴 세평의 보금자리를 얻지 못한 이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한끼 식사를 위해 끊임없는 노동을 해야 하는 이에게, 대한민국은 희망의 대명사이기보다 절망의 화신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

이키가미라는 만화에서, 국가번영유지법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률을 토대로 국가에서는, 더 많은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번영시키려고, 1000명 가운데 1명의 젊은이에게 나노캡슐을 주입해, 18세에서 24세 사이에 이 젊은이를 심장마비로 죽게 합니다. 나노캡슐이 주입된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지만, 사망 하루 전날 사망 통보가 담긴 이키가미#를 받습니다. 즉, 곧 죽으니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국가의 큰 배려인 셈이죠.

이런 설정을 토대로 이 만화는, 이키가미를 배달하는 ‘후지모토’라는 이키가미 배달원의 눈으로, 이키가미를 받은 젊은이들의 마지막 하루를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가난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1000마력짜리 엔진을 달고 도망가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쫓아오는 개발도상국을 따돌리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쌀나라와 자유무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단, 자유무역을 통해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을 팔려면, 그네들이 키운 소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아울러 그 비싼 소고기를 헐값에 먹을 수 있다니, 꿩먹고 알먹고, 일타에 쌍피를 얻는 재수라고도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버액션이다, 누군가는 또다른 에이즈라고 떠드는 광우병에 잠재적으로 노출된다는 이야기에, ’국가번영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나노캡슐을 주입하는 만화’와 새로운 번영을 위해 ‘싫든 좋든 조상 잘못 만나면 죽을 수 있는, 미친소를 먹어야 하는 대한민국’이 오버랩되는 것은 우연일까요?

# 이키가미는 이쿠(죽다)와 가미(종이)의 합성어입니다.